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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속 대박 상품들의 공통점[가성비를 말하다] ②가격 믿고 덤비면 ‘쓴맛’

사치의 시대가 가고 가치의 시대가 열렸다. 경기 침체 장기화로 주머니 가벼워진 소비자들이 가성비를 꼼꼼히 따지는 것은 익숙한 트렌드가 됐다. 생필품 하나를 사더라도 검색은 필수다. 싸다고 무조건 지갑을 열지도 않는다. 관건은 ‘적절한 가격과 품질의 교집합’을 공략하는 것이다.

① 소비자를 움직이는 단어, ‘가성비’의 비밀
② 불황 속 대박 상품들의 공통점 
③ 가성비 시대 마케팅 방향성은
④ 전문가 인터뷰 - 이준영 상명대 소비자주거학과 교수

[더피알=박형재 기자] 과거 소비자들은 브랜드를 신봉했다. 가슴에 박힌 로고와 청바지 뒷주머니에 새겨진 브랜드 스펠링은 자존심의 상징이었다. “이거 왜 샀어?”라는 질문에 “좋아하는 브랜드라서”라고 답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오늘날 가성비가 핵심 구매 기준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가격은 보급형인데 스펙은 프리미엄급, 굳이 100만원짜리 휴대폰 살 필요 없다.” 지난해 9월 스마트폰 ‘루나’가 출시된 이후 SNS에서 공유된 이용후기다. 루나는 5.5인치 풀HD 디스플레이, 1300만 화소 카메라, 풀메탈바디 등 고사양에도 출고가는 44만9900원에 불과해 출시 3개월 만에 15만대 이상 팔리며 돌풍을 일으켰다.

아이폰 협력업체인 대만 폭스콘이 생산해 가격 거품을 뺐고, 인기 광고모델 설현을 내세워 마케팅에 성공했다. 100만원대 프리미엄 폰과 큰 차이가 없는 스펙에 저렴한 가격으로 젊은 소비자들에게 어필했다.

   
▲ SK텔레콤은 저렴하지만 고스펙으로 인기를 끈 스마트폰 '루나'에 이어 올해는 '쏠'을 출시하며 계속해서 설현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TG앤컴퍼니 관계자는 “루나는 가격이 저렴하지만 하드웨어 성능은 밀리지 않는다”며 “사용자 관찰과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얻은 인사이트를 제품 기획과 마케팅에 반영한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올해 SK텔레콤은 루나의 뒤를 잇는 두 번째 자체 기획 스마트폰 ‘쏠’을 출시하고, 설현 마케팅도 계속하고 있다.  

쌍용자동차가 지난해 1월 출시한 소형 SUV차량 ‘티볼리’도 세련된 디자인에 1606만원부터 시작하는 저렴한 가격으로 호평 받고 있다. SUV는 일반적으로 동급 세단보다 비싸지만 티볼리는 비슷한 가격을 책정하고 젊은 층을 공략했다. 티볼리의 2015년 국내 시장 판매량은 4만5201대로 출시 당시 목표 3만8500대를 크게 넘어섰다.

국내 저가항공사들의 약진도 두드러진다. 제주항공과 진에어 등 5개 저가항공사들은 지난해 3분기 기준 국내선 점유율 51.7%를 기록해 대형항공사(48.3%)를 넘어섰다. 국제선 점유율 역시 곧 대형항공사를 따라잡을 것으로 보인다.

고정관념을 깨고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제품들도 눈길을 끈다. 편의점 CU의 ‘빅 요구르트’는 일반 요구르트 4.5개 분량인 270mL 제품이다. 기존 요구르트는 “많이 마시면 질린다”는 속설이 있어 소용량 제품만 나왔다. 그러나 CU는 최근 3년간 매출 분석을 통해 요구르트의 주 구매층이 어린이나 청소년이 아닌 20∼30대 여성이며, 한꺼번에 여러 개를 마신다는 점을 알아냈다. 큰 요구르트를 원하는 흐름을 찾아낸 게 주효한 것이다.

발상의 전환으로 숨은 소비자 발굴

LG전자 세탁기 ‘트롬 트윈워시’는 속옷이나 이염 우려가 있는 옷, 운동화 등을 따로 빨기 원하는 주부들의 바람에 맞춰 개발됐다. 드럼세탁기 밑에 통돌이 세탁기를 붙여 두 대 모두 쓰거나 한 대만 사용 가능하도록 만든 것. 주부들 사이에 편리하다는 입소문이 나며 200만원 넘는 고가에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세탁기 사용 과정에서 소비자들이 불편해하는 것들을 살펴보니 소량 세탁과 속옷 세탁, 다른 옷과 섞였을 때 오염 위험이 있는 옷 등을 따로 빨고 싶어 하는 욕구가 많았다”며 “소비자의 요구에 부합하는 제품을 만든 게 인기 요인”이라고 말했다.

‘브랜드 이름값’이 먹히던 시대도 저물고 있다. SPA브랜드 유니클로는 옷에 브랜드 로고를 넣지 않는 대신 고품질 소재로 승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질 좋고 편한 옷’을 강조하는 이들은 고급 원단을 사용하면서도 주요 제품 가격은 2만~4만원대에 불과해 불황에도 꾸준히 20%대 매출 신장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국내 패션 브랜드 중 최초로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반면 화려한 로고를 앞세운 명품 브랜드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명품의 대명사로 통하던 샤넬은 2015년 3월 일부 제품 가격을 20%까지 인하하며 ‘샤넬쇼크’를 일으켰다. 지난해 5월에는 구찌가 이례적인 반값 세일을 진행해 ‘구찌대란’이 일어났다.

   
▲ 이마트가 지난해 선보인 노브랜드 상품.

이마트가 지난해 선보인 ‘노브랜드’ 상품 매출이 급증하는 것도 가성비 앞에 브랜드가 밀려난 사례다. 노브랜드는 상품 브랜드를 없애고 포장을 간소화해 가격 경쟁력을 최대로 끌어올린 이마트 자체 상품이다. 가격이 기존 브랜드 상품 대비 최대 67% 저렴하다.

이마트에 따르면 노브랜드 상품의 매출은 지난 7월 20억원에서 12월에는 55억원으로 2배 넘게 급증했다. 감자칩의 경우 노브랜드 제품(80.9원/10g)이 타 브랜드 제품 최저가(198.7원/10g)보다 59% 저렴하고, 물티슈는 노브랜드(8원/1매)가 타 브랜드 최저가(16.7원/1매)보다 52.1% 저렴하다.

이마트 관계자는 “노브랜드는 꼭 필요한 기능만 남겨 사용하기엔 충분한 스펙이지만 포장, 디자인, 이름까지 최소화해 초저가를 실현한 것이 고객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며 “지난해 208억원 어치를 판매했고, 올해에는 1000억원 판매를 목표로 상품 개발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중고도 괜찮아”

버려지던 중고품이나 못생겨서 외면 받던 B급들도 효자 상품으로 재조명받고 있다. 일명 못난이 상품으로 불리는 B급 상품은 품질에 큰 하자가 없지만 정상적인 유통이 불가능해 30~70%까지 할인된 가격에 판매되는 제품이다. 온라인 쇼핑몰 옥션에서는 낙과 또는 흠과(못난이 과일)를 30% 가량 저렴하게 판매하며, 다리가 몇 개 떨어졌거나 몸통이 찢어진 ‘파품 오징어’도 매출이 늘고 있다.

가전제품 및 가구 시장에서는 ‘리퍼브 매장’에 소비자들이 몰려든다. 리퍼브(refurbish) 매장은 제품에 미세한 흠집이 있거나 구매자의 변심으로 반품된 상품, 혹은 상설매장에서 전시됐던 제품을 40~70% 가량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는 곳이다.

중고품 거래도 급증하는 추세다. 온라인 쇼핑몰 11번가는 작년 1월부터 12월 3일까지 중고 거래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48% 성장했다고 밝혔다. 11번가의 중고거래는 2012년부터 매년 50% 이상 증가했다.

유통기한 임박 식품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온라인 쇼핑몰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떠리몰, 임박몰, 이유몰 등이 대표적인데, 유통기한이 최소 2주에서 최대 2년까지 남은 제품을 40~70% 할인 판매한다.

떠리몰을 운영하는 신상돈 핌아시아 대표는 “제조업체는 재고 부담을 줄일 수 있고 소비자들은 빨리 소비할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사업을 시작했다”며 “2013년 5월 쇼핑몰 출범 당시 90명에 불과했던 회원이 현재 14만명까지 늘어나는 등 달라진 분위기를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 유통기한 임박 식품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떠리몰의 관계자가 쇼핑몰에서 유통되는 B급 상품에 대한 안전성 검사를 하고 있다.

불황에도 잘 팔리는 상품들의 성공비결을 보면 공통적으로 ‘가성비’란 키워드가 엿보인다. 가격 대비 성능을 충족시키거나 고정관념을 깨고 시장의 숨은 수요를 발굴한 혁신 제품들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았다.

이같은 흐름은 다양한 시사점을 준다. 우선 소비자는 점점 똑똑해지고 있다. 생필품 하나를 살 때도 검색하고 비교해보고 산다. 소셜커머스와 해외직구는 이제 마트에서 물건 사는 것처럼 흔한 일이 됐고, 소비자들의 커뮤니케이션이나 제품 이용후기 등 정보 열람도 손 안에서 가능해졌다. 초연결시대가 되면서 제품 수용 패턴과 속도가 능동적으로 변하고 있다.

‘저렴한 대안’ 찾는 소비문화

반면 충동적·과시성 소비는 크게 줄었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체면이나 외부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실리적인 소비를 한다. 예전엔 싼 제품을 쓰면 ‘쪽팔려’ 했지만 이제는 가성비를 내세워 합리화한다.

가성비가 유행하면서 핵심 가치만 제공되는 저렴한 대안을 찾는 움직임도 자연스러운 소비 문화로 정착됐다. 저가항공이나 B급상품 등에 대해 싸구려라는 인식을 갖기보다 “좀 불편해도 싸니까 괜찮아”라며 다양한 선택지 중 하나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더 나아가 가치소비에 예민해진 소비자들은 합리적 선택을 못하면 “호갱(호구+고객)됐다”고 자책하는 분위기마저 생겨났다. 인터넷에서 A를 샀는데 뒤늦게 알게 된 B가 가성비가 높다면 멍청한 짓을 했다고 느끼는 것이다. 안승호 숭실대 경영대학원장(한국유통학회장)은 “손쉽게 값싸고 질 좋은 제품을 찾을 수 있게 되면서 쓸데없이 비싸게 사면 분노를 느낄 정도로 소비자들의 인식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다만 불황기 소비 패턴을 가성비로만 설명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은 “가성비가 유효한 영역은 어디까지나 일상 소비재”라며 “늘상 소비하는 물건, 먹거나 입거나 하는 건 가성비가 중요한데 반해 자신이 평생 꿈꿔왔던 물건은 브랜드나 욕망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모든 물건을 가격 대비 성능 기준으로 따져서 좋은 제품-나쁜 제품으로 나누는 건 무리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형재 기자  news34567@the-p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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