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피알=이승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Mens Sana In Corpere Sano)
고대 로마 시인 유베날리스(Juvenalis)가 쓴 시의 한 소절로 잘 알려진 격언이다. 이 격언의 의미를 풀어보면, 아플 때 신체적으로 힘들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질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우리가 아플 때 방문하는 곳이 병원이다. 병원의 절대적인 목적은 아픈 사람의 신체가 원래 기능을 찾아가도록 돕는 기능적인(Functional) 역할이다. 하지만 앞의 격언을 되새겨보면, 아픈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줘야 하는 곳 역시 병원이다.
최근 디지털 전환 시대에 혁신 병원들이 앞다투어 다양한 기술과 데이터를 활용해 병원 내의 고객 경험을 혁신시켜나가려는 이유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디지털 전환 시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목적을 가지고 탄생한 혁신 병원들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상대적으로 환자 치료와 관련된 법규가 까다롭지 않은 미국의 경우, 특히 이전의 전통적인 목적과 다른 혁신 병원들이 앞다투어 생겨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2017년 샌프란시스코에 문을 연 포워드(Forward) 의료서비스센터다.
이 병원은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애플스토어(Apple Store) 같은, 내부 운영적 측면에서는 넷플릭스(Netflix) 같은 병원을 만들어내겠다는 야심을 가진 IT 개발자들이 주도해 만들어졌다. 병원 인테리어가 군더더기 없이 심플하게 디자인된 IT 스토어처럼 구성되었고, 각종 기술과 데이터를 활용해 사람들의 건강을 유지해주는 데 목적을 둔 병원이다.
이 병원은 월정액제의 멤버십으로 운영된다. 한마디로 넷플릭스를 구독하는 것처럼 월 149달러만 지불하면 횟수 제한 없이 언제나 간단한 예약 방식을 통해 담당의사를 만날 수 있다.
오프라인 서비스뿐만 아니라 자체적인 모바일 앱을 개발해, 병원을 방문하지 않더라도 원격으로 언제든 의사에게 질문을 보내고 자신의 건강 상태를 체크할 수 있다.
이러한 아프기 전 단계에서 건강을 관리해주는 서비스뿐만 아니라, 아픈 사람들이 방문하는 대형 병원들 역시 다양한 데이터와 기술을 이용해 혁신적으로 병원 내부의 고객 경험을 향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불쾌한 고객 경험은 무엇일까
우리가 병원에 갔을 때 고객 경험 차원에서 가장 참기 힘든 것 중 하나가 바로 기다림이다.
실제 보건복지부가 2017년 발표한 ‘의료 서비스 경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병원에서 외래 진료를 기다리는 시간은 평균 21분이다.
대부분의 환자가 대기 시간 10분까지는 ‘적절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를 넘어가면 인내심이 급격히 떨어지고 불쾌감을 느낀다고 한다. 결국 이 기다림의 시간을 줄일 수 있다면 병원 내부에서 환자들이 겪는 불쾌한 고객 경험이 급격히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기다림을 줄이기 위해 더 많은 의사를 투입하면 비용이 급격하게 늘어나므로 서비스 질 향상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문제다. 그런 이유로 최근 대형 병원에서는 고객이 느끼는 ‘기다림’을 어떠한 기술을 통해 간접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 다양한 방식으로 테스트가 이루어지고 있다.

고객 경험 전문가들이 오랫동안 연구한 바에 따르면, 우리가 기다리는 동안 느끼는 상대적인 불편함을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법칙, 즉 ‘기다림의 원칙’(Principle of Waiting)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불확실한(Uncertain) 기다림을 정해진 시간 동안의(Known) 기다림보다 더 길게 느끼는 경향이 있다. 정확하게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그 정보만 전달해줘도 기다림에 대한 불쾌함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는 말이다.
동시에 설명되지 않은(Unexplained) 기다림은 설명된(Explained) 기다림보다 길게 느껴진다. 왜 대기 시간이 길어지고 있는지 정확하게 설명해주는 것이 더 좋다는 말이다.
감정적인 비용(Emotional Cost) 줄여주는 콘텐츠 제공
이런 이유로 최근 들어 대형 대학 병원들은 외래 진료에서 예상보다 대기 시간이 지체될 때마다 기다리는 환자들에게 얼마나 더 지체될지, 왜 어떠한 이유로 대기시간이 길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자체적인 문자 서비스나 병원 앱 시스템을 이용해 비교적 상세하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주고 있다.
그냥 대책 없이 기다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시스템을 통해 정보를 전달해주는 것만으로도 기다림으로 인한 불쾌한 고객 경험이 어느 정도 줄어들 수 있다.
이러한 기다리는 시간과 관련된 영역에서도 이제는 고객의 손안의 휴대폰을 통해 끊임없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한 고객 경험 혁신을 일으키려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앞으로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환자들을 단순히 기다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동안 정서적 안정을 제공해주는 일종의 감정적 비용(Emotional Cost)을 줄여주는 콘텐츠들을 제공하는 디지털 플랫폼들이 생겨나리라 본다.
곧 만날 의사 선생님과 관련된 정보를 간단한 클릭만으로 휴대폰을 통해 사전에 볼 수 있는 형태의 정보 전달 혜택 역시 이루어질 것이다.

환자로부터 확보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화된 고객경험 시도 늘어난다
환자로부터 확보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화된 고객경험을 전달하려는 시도도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 플로리다에 있는 올랜도 병원(Orlando Health)의 출산센터(Birthing Center)의 경우, 산모들로부터 획득한 환자 데이터를 사용하여 개인화된 커뮤니케이션을 제공하며 고객 경험을 혁신한 사례가 있다.
한 가정에서 아기를 갖고 출산하는 것은 아주 큰 변화다. 이 병원 센터의 서비스를 이용하면 산모는 센터에서 제공하는 출산과 관련된 다양한 절차에 대한 정보를 얻고, 스스로에게 가장 최적인 출산 경험을 개인화된 형태로 선택할 수 있다.
자연 분만을 할 것인지, 제왕절개를 할 것인지 같은 기본적인 옵션부터, 신생아를 돌보는 방식, 함께 병원에 머무는 가족들이 어떻게 병원 내에서 생활할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옵션이 제공된다.
출산 예정인 산모들의 몸 상태는 끊임없이 변할 수밖에 없다. 보통 몸 상태가 안 좋아지면,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 신뢰할 수 없는 정보의 영향을 받는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다.
이 센터가 제공하는 모바일 앱을 깔고 ‘마이차트’(MyChart)라는 기능을 이용하면, 실시간으로 센터에 질문을 할 수 있고 전문 지원팀으로부터 실시간으로 대답을 얻을 수 있다. 이 센터는 이러한 고객들로부터 확보된 데이터를 활용해 서비스를 끊임없이 개선해나가고 있다.
일리노이의 칼레 재단병원(Carle Foundation Hospital)은 환자들과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에게 병원에 머무는 동안 해당 병원을 좀 더 잘 알고, 내부 시설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디지털 전자교육 플랫폼을 제공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앞으로 대형 병원들은 각자의 병원에 장기간 머무르는 환자들에게 병원 내부 모바일 앱을 통해 예약한 진료 장소에 좀 더 빠르게 도착하도록 도와주고, 자신이 입원한 병동 방의 온도를 조절한다든지, 방의 시스템을 해당 앱을 통해 조절하는 형태의 고객 경험을 제공하리라 본다.
병원의 고객 경험이 진화하고 있다
환자뿐 아니라 환자 가족들이 느끼는 불편한 경험을 개선하려는 노력도 끊임없이 시도되고 있다.
뉴저지의 리버뷰 메디컬센터(Riverview Medical Center)는 갑작스럽게 자신의 큰 병을 알게 되어 예상하지 않았던 입원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 경우 환자는 운이 좋다면 병원 안 병실에 머물지만, 환자 가족들이 문제가 된다. 환자 가족들이 장기간 불편한 형태로 환자와 함께 병실의 좁은 침대에서 지내는 것은 환자나 가족 모두에게 좋지 않은 고객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리버뷰 메디컬센터는 특별한 컨시어지 서비스를 론칭했다. 환자가 갑자기 병실에 입원할 경우, 환자 가족들을 지원해주는 서비스를 강화해서 제공하는 것이다. 병원 근처에 환자 가족들이 머무를 만한 숙박 시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환자 가족들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켜주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병원에 오래 머물다 보면 몸도 마음도 지칠 수밖에 없다. 이런 환자와 가족들을 위해, 병원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고객 경험을 전해주려고 시도하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미시간에 있는 헨리 포드 웨스트 블룸필드(HenryFord West Bloomfield) 병원의 목표는 환자가 병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럭셔리 스파에 머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그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 병원 치료 시설 이외에 쇼핑과 다이닝을 위한 공간에 힘을 주었다.
이곳 병원 식당은 현장 온실에서 재배한 신선한 농산물을 사용한 식사가 제공되고, 방은 호텔처럼 디자인되어 있다. 병원 메인 거리(Main Street)를 의도적으로 미시간 중심부에 위치한 세련된 쇼핑타운에 온 것처럼 꾸몄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공연 전문가들이 음악을 연주하고, 현지 농부들을 중심으로 한 파머스 마켓이 빈번하게 열리기도 한다. 곳곳에 편안하게 쉴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들이 놓여 있고, 다채로운 스낵 바들이 있다.
병원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치료다. 이제는 신체의 치료를 넘어 방문자들의 마음을 읽어내 더 나은 고객 경험을 전달하고, 치료를 더 높은 수준으로 완성하겠다는 혁신적인 병원이 늘어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