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허원순|‘전체적으로 영호남, 충청권의 숫자 균형이 어떤가?’ 정부의 각종 위원회 활동을 비교적 오래하면서 자주 듣고, 부딪쳐온 ‘비공식 잣대’다.
경제 신문의 논설위원이라고 십수 년을 해 오다 보니 몇몇 부처에서 다양한 종류의 자문 심의 심사 등 정책 관련 위원으로 위촉돼 업무를 보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이것이다. 일종의 보이지 않는 룰 이랄까, ‘지역 간 균형 맞추기’가 있다. 담당 부서 공무원들의 일반적 관점이기도 하다.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같은 곳은 더욱 그렇다.
‘공항 천국’처럼 돼 가는, 마치 붐처럼 경쟁적으로 추진돼온 한국의 지방공항 건설에도 그런 관점이 작용한다. ‘저 지역에 공항 짓는다니 이곳에도 국제공항 세워야 한다’는 식이다. 안 그래도 ‘호남 영남 다 세우는 데 충청권은 왜 빠지나’라는 여론이 꽤 먹히는 게 한국 사회다.

정치권이 개입하면 상황은 대개 나빠진다. 때로는 막무가내식 기계적 균형 다툼의 선봉에 정치꾼이 서 있다. 다선이라며 무게 잡는 국회의원도 지역에 가거나 지역민을 의식하면 동네 의원이 되곤 한다. 그렇게 중앙 정부 돈을 따내면 대문짝만한 플래카드를 곳곳에 내걸며 치적이라고 자랑한다. 이게 먹히는 게 한국 정치다.
공항 건설도 그런 과정을 거치며 가히 난립 수준에 달했다. 한국의 관문 격인 인천국제공항 외에 지방공항이 14개가 있다. 그런데도 추가로 8개나 신설이 확정됐거나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부산의 가덕도 신공항을 둘러싼 논란은 대표적 논란 사례다.
그런데 다소 이색적인 일이 생겼다. 그래서 말 그대로 뉴스, 기사 거리다. 대통령실이 무분별한 지방공항 건설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내부의 수석 보좌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신설 추진 중인 8개 지방공항에 대해 지방 정부가 부담할 몫, 즉 지방자치단체 예산 비중을 재산정하자면서 현재 운영 중인 각 지역의 적자 공항의 수익성 개선 필요성까지 역설했다.
대통령실이 부대변인을 통해 이런 사실을 기자들에게 자세하게 브리핑까지 한 것을 보면 일단 정책적 의지가 있어 보인다. 여론의 움직임과 공론화를 통해 경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공항 건설 붐에 제동을 걸어보겠다는 의지로 읽힐 만한 대목이다.
강 실장은 “지방 정부가 공항 개설로 인한 혜택은 누리지만 건설이나 운영과정에서 책임은 부담하지 않는다”고 했다. 왜 이제야 이런 말을 당국자 입에서 듣게 됐나, 싶지만 사실 지극히 온당한 말이다. 국회와 정치권, 행정 부처에서 그간 누구도 좀체 하지 않았던 지적 아닌가.
그는 또 “지방공항이 지방 정부의 책임성을 전제로 추진될 수 있도록 중앙과 지방 정부 간 비용 분담 개선안을 보고하라”고 관련 비서진에 지시했다. 해당 부처로도 지침이 내려갈 것이다. 이것 또 의당 필요한 일이다. 역시 만시지탄이다. 한번 지나가는 지적, 면피성 지침이 아니길 바란다. 그만큼 향후 후속 조치들에 미리 관심이 간다.
국내에는 인천국제공항 외에 지방공항이 14개나 있다. 이 중에는 국제공항도 적지 않다. 국제공항에는 기본적으로 법무부 출입국 심사, 세관 통관 업무를 포함하고 있어 여러 정부 부처 공무원이 상주한다. 그래서 국제공항은 규모를 떠나 ‘축소판 정부 청사’라고 부를 정도다.

하지만 이용객은 많지 않다. 전국이 고속철로 연결되어 가고, 지방의 위축으로 국제 항공 노선은 많지 않은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갈수록 심해진다. 지방공항들이 연간 적게는 수십 억원, 많게는 이백 억원씩 적자를 내는 이유다.
민간 시설 같으면 벌써 문을 닫았겠지만 ‘공공시설’이라는 명분 아래 혈세 투입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지난해 대규모 적자를 낸 무안공항의 경우 이용 항공기가 없어 한때 활주로에서 고추 말리는 공항이라는 냉소 어린 비판도 받았다. 경비를 절감한다며 청사의 전등까지 끄고 터미널 밖에는 택시도 끊어져 공항이 제구실을 못 한다는 고발성 기사도 곳곳에서 줄을 잇기도 했다. 무안공항과 멀지 않은 곳에 적자의 군산공항이 있는데도 그 인근에 새로운 새만금국제공항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새만금공항만 해도 입지와 중복성, 경제적 타당성 부족, 환경과 안전 리스크 과다 등의 다양한 이유로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한 마디로 건설 결정과 착공을 쉽게 하지 말라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반대는 어디서나 드러내놓고 하기가 쉽지 않다. ‘지방의 소외’, ‘수도권과 격차’, ‘지역발전의 불균형’ 같은 구호를 들이대면 어떤 전문가나 식견가도 목소리를 크게 내기 어려운 게 우리 현실이다. 부산의 가덕도 신공항을 둘러싼 무수한 논란과 문제 제기만 해도 너무도 많이 반복됐지만, 착공 수순으로 가고 있다.
어떻든 선거철 표 확보에 유리하다 싶으면 특별법까지 만들어 경제성 기반의 타당성 조사를 무력화시키는 게 그간 한국 정치의 고질적 행태다. 그렇게 김해공항을 두고 부산에 새 공항을 만들기로 하니 대구경북 통합신공항도 추진된다.
공항 건설만의 현상이 아니다. 하지만 누구도 비판을 쉽게 못 하게 된다. 그러는 사이 이제는 흑산도, 울릉도 공항까지 8개가 신설을 확정했거나 건설 중이다. 공항 건설의 타당성 규명 문제가 지역 차별 이슈로 바뀌어버린 결과다.
이런 문제를 뒤늦게나마 대통령실이 제대로 인식한 것인가. 문제 제기는 좋다.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이번 발표에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향후 처리 결과도 공개적으로 내놔야 한다.
난립하는 지방공항에 대한 구조조정이라고 해도 좋겠다. 이른 시일 내에 의미 있는 군살 빼기 내지는 조정안을 제대로 내놓으면 박수받을 것이다. 사실 차제에 국가적 SOC 건설 전체에서 중복과 과다 여부를 종합 점검해보면 좋겠다. 그렇게 실행으로 이어진다면 의미 있는 행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