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광고의 정부가 들어섰는데 안 바뀔 수 있나요”
“새로운 광고의 정부가 들어섰는데 안 바뀔 수 있나요”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19.04.1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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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창립 30주년 맞은 한국광고학회 김병희 신임 회장

[더피알=강미혜 기자] 교과서 같은 이야기 말고 지금 업계에서 일어나는 변화, 실무 고민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광고회사에서 일에 미쳐 살았던 경험이 있는 그 역시도 교수라는 계급장 떼고 새롭게 ‘위장 취업’을 해야 할 정도로 지금 광고계는 변화의 한 가운데 서 있다. 업계와 학계를 넘나들며 광고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살아온 지가 올해로 꼭 30년째인데, 마침 30주년을 맞은 한국광고학회의 회장직을 4월부터 맡게 됐다. 할 말도, 할 일도 많을 수밖에 없다.

한국광고학회 신임 회장을 맡게 된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에서 석사학위를, 한양대에서 광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단에 서기 전 광고회사 선연에서 카피라이터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했다. 한국PR학회 15대 회장을 역임했다. 사진: 안해준 기자
한국광고학회 신임 회장을 맡게 된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에서 석사학위를, 한양대에서 광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단에 서기 전 광고회사 선연에서 카피라이터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했다. 한국PR학회 15대 회장을 역임했다. 사진: 안해준 기자

작년에 국내 디지털 광고비가 처음으로 4조원을 넘어서며 방송광고 규모를 추월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습니다. 상징적 의미가 큰 것 같아요. 

광고 권력이 기존 4대 매체에서 디지털 미디어로 옮겨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하나의 이정표 같습니다. 매체비만 놓고 보면 저는 ‘새로운 광고의 정부’가 들어섰다고 봐요. 지상파방송과 같은 전통 매체들은 아직까지 채널 영향력이나 아젠다 설정에서 큰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광고 측면에선 (권력 이동을) 늦추기 위해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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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광고시장의 팽창이 학계에도 많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가령 과거엔 광고의 크리에이티비티, 카피라이팅 능력을 육성하는 데 집중했다면 지금은 애드테크, 퍼포먼스 마케팅 등 기술과 결합한 교육에 대한 니즈가 클 듯합니다.

많은 교수들이 변화를 절감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 변화를 따라가질 못해요. 그리고 사실 학계 특성이 업계에서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기도 하고요. 업계 분들은 실무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실용적 인재를 양성해주길 원하지만, 대학의 존재 이유나 사명은 학문에 있잖습니까. 디지털 미디어나 첨단기술이 광고계의 따끈따근한 주제이긴 해도 그것만으로 모든 교과과정을 짤 순 없습니다. 커뮤니케이션 이론도 알아야 하고, 마케팅이나 PR이론, 광고이론 등 베이직한 소양과 지식이 뒷받침돼야 응용력도 생깁니다. 실제 그런 내용들이 대학 전체 커리큘럼의 3분 2 정도를 차지해요.

나머지 3분의 1이 새로운 변화에 해당하는 스마트 미디어, 디지털 환경 쪽인데 문제는 기존 교수들이 이 생태계를 잘 모른다는 겁니다. 그래서 외부 전문가를 수혈해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려 하는데요, 최근 새로운 패턴 중 하나가 바로 산학협력 교수제도입니다. 현장에 있던 실무감각이 뛰어난 젊은 크리에이터들, 기획자를 산학협력 교수로 영입해 강의를 맡기고 대학 프로그램 기획에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밀레니얼 세대인 제자들과 디지털 격차를 없애기 위해 요즘은 교수님들이 휴일이나 방학을 이용해 ‘개별 과외’를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저를 포함한 많은 교수들이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공부한 세대다 보니 그런 과정이 필요하죠. 이른바 수용자 지향적 교육을 위한 노력이라고 할까요. 학생들이 원하는 건 디지털인데 맨날 신문·방송에만 주력할 순 없잖아요. 저 역시 ‘위장 취업’을 한 적이 있어요.(웃음) 친구가 디지털 광고회사를 운영하는데 3년간 방학 동안 가서 디지털 광고 실무를 배웠죠. 일주일에 사흘씩 출근하는 대신 직원들 점심은 내가 사겠다 했어요. 교수라고 밝히거나 사장 친구라고 말하면 직원들이 부담스러워할 게 뻔하니 신분을 속이고 ‘밥 잘 사주는 아저씨’로 포지셔닝했습니다.(웃음) 그 경험을 통해 지금 학교에서 스마트 미디어 과목을 가르치고 있어요.

요즘 온라인 광고 시장에서 유튜브 부상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광고적으로 특별히 새로운 방식이나 기법이 있는 건 아니지만 워낙 플랫폼 자체가 각광 받으니 디지털 광고물량을 엄청나게 빨아들이고 있어요. 국내 광고계엔 어떤 영향이 있을까요.

유튜브를 통해 이제는 광고도 전문가뿐 아니라 누구나 만들고 유통하는 시대가 됐어요. 소위 UCC(User Created Contents)가 광고영상을 대체하면서 편당 제작비를 낮추는 데도 기여했고요. 그건 유튜브가 가져다준 장점이에요.

하지만 광고산업 측면에서 보면 분명 위협이 되고 있어요. 저는 사회에서 하나의 업이 전문직으로 인식되려면 기본적으로 세 가지가 갖춰져야 한다고 늘 주장해 왔어요. 서비스의 전문성과 적합한 보상체계, 그리고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의 철저한 윤리의식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나 영상을 만들어 올리는 지금과 같은 디지털 환경에서 과연 전문적인 콘텐츠를 논할 수 있을까요? 심지어 성과측정도 제대로 안 되고 있습니다. 조회수 몇 번, 좋아요 몇 개를 광고나 PR의 효과라고 절대 말할 수 없어요. 그렇게 말해서도 안 되고요. 그런데 초보적 수준의 지표들이 성과로 포장돼 보고되는 실정입니다. 유튜브가 영상을 대중화시키는 데는 기여했지만 광고의 전문성을 약화시키는 위협 요인이 된다고 생각하는 이유에요.

바라건대 앞으로 유튜브에 올라가는 광고영상에 대해 최소한의 평가등급이 적용됐으면 합니다. 내용의 독창성, 제품 및 브랜드와의 적합성과 상관성, 표현의 명료성 등이 기준이 될 수 있어요. 지금은 너무나도 많은 광고가 그저 웃고 즐기는 데 그치고 있는데,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따져봐야 해요.

제작 측면에선 그렇고 광고 집행에서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습니다. 바로 브랜드 세이프티(safety) 문제인데요. 예전처럼 광고주가 원하는 시간대, 원하는 채널, 프로그램에 정확하게 꽂아 넣을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 보니 갈등을 조장하는 혐오성 콘텐츠에도 광고가 붙고 있어요. 광고주 입장에선 돈 쓰고 되레 욕 먹는 상황을 맞게 되는 거고요.

광고주, PR주가 현명해지는 수밖에 없습니다. 좀 더 부지런해져야 해요. 디지털 광고가 알고리즘에 의해 자동으로 집행되는 시스템이라고 해도 진짜 원치 않는 곳엔 광고가 못 올라가게 하는 방법이 왜 없겠어요. 더욱이 인터넷을 기반으로 수많은 채널과 미디어가 있고 지금도 생겨나고 있어요. 국내 인터넷신문만 해도 7000여개에 달합니다. 이런 복잡다단한 환경에서 무조건 광고가 많이 노출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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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선 광고노출도를 높이는 게 더 중요하냐, 광고회피율을 낮추는 게 더 중요하냐를 두고 연구도 했다고 하더라고요. 광고도달률과 광고효과가 반드시 긍정적 상관관계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죠. 실제 광고 노출을 올리기보다 회피를 방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어요. 충성도 높은 사람들, 소비자를 공략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는 거죠. 우리도 이제 과거의 접근방식에서 벗어나 달라진 환경에 맞게 새로운 논의를 해야 합니다.

광고계 현안 중에서 지상파 중간광고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사실상 ‘다 된 밥’이었는데 최근 문체부 쪽에서 이견을 제시해 다시 보류 상태에 놓였습니다. 어떻게 보세요?

제가 2017년에 관련 연구를 했어요. 지난 30년 간 국내 광고비 흐름을 추적해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 이후를 예측하는 통계적 논문 2편을 발표했습니다. 결과를 보니 중간광고를 도입하면 지상파 3사 통틀어 광고비가 1년에 약 200억 늘어나는데, 신문과 잡지의 타격이 제일 큰 것으로 나타났어요. 디지털 광고예산이 늘어나는 추세에 지상파 중간광고 빗장이 풀린다고 해서 광고주들이 추가로 중간광고용 별도 예산을 책정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기존 파이 안에서 재분배가 일어나는데 제일 많이 빠지는 것이 신문·잡지 광고로 분석됐습니다.

물론 개인적 연구결과가 그렇다는 것이지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에 대한 저의 찬반 견해나, 광고학회를 대표하는 장으로서의 입장은 아니라는 점을 밝혀두고 싶습니다. 지상파 중간광고에 대한 결론이 차제에 어떻게 나든 학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해 학자로서 객관적 데이터를 갖고 정책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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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계 인력난도 심각하다 들었습니다. 과거에 비해 지원자 수도 크게 줄었고, 이런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인력 수준(?)도 많이 떨어졌다고 하던데요.

요즘 학생들은 주로 광고주나 PR주가 되는 일반 대기업에 가려 해요. 에이전시 가면 힘들다는 인식이 만연해 있어요. 저도 실무에 있어 봤지만 에이전시는 에이전시만의 일하는 맛, 재미가 있는데 말이죠.

전공생들도 회피하는 상황이면 그야말로 광고학의 위기 아닌가요?

위기죠. 그래서 학회에서도 교과과정에 변화를 주면서 여러 발전적 방향을 모색하려 하고 있어요. 상황이 이렇게 된 건 저를 포함한 기성세대, 선배들의 책임도 커요. 97~8년 IMF 이후로 평생직업이란 말이 사라지면서 광고업계에서도 신입사원을 안 뽑기 시작했어요.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경력직을 선호하는 거죠. 어디서 3년, 5년 열심히 키워 놓으면 스카우트라는 그럴싸한 명목으로 포장해서 쏙 빼가요. 그러니 인재풀이 두터워질 수 있나요. 중견·중소업체 사정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요.

김병희 학회장은 광고 효과 측면에서 높은 노출보다 낮은 회피율이 더 중요할 수 있다며 "과거의 접근방식에서 벗어나 달라진 환경에 맞게 새로운 논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가 광고학회 30주년인데 의무감이랄까 책임감이 더 크시겠어요.

무엇보다 광고나 PR이 전문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지성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제 임기 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광고지성’으로 대접받을 수 있도록 담론을 주도하고 싶어요. 그래야 젊은 학생들에 ‘광고인=전문가’로서 새로운 비전도 심어줄 수가 있을 거고요. 공교롭게 저 역시 업계와 학계를 통틀어 30주년이 되는 해를 맞기에 더욱 감회가 새롭습니다. 어깨도 무겁고요. 운 좋게 큰 탈 없이 30년간 잘 지나왔으니 올해는 정말 순수하게 학회장으로서 100% 봉사할 생각입니다.

광고계 30년사와 커리어를 같이 한 격인데 실로 격세지감일 것 같습니다. 너무 먼 얘기인 것도 같은데 3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 봤을 때 어떤 변화가 가장 크게 와 닿으세요?

미디어가 급변했고 광고시장 자체도 많은 부분에서 달라졌지만 제가 느끼기에 가장 큰 변화는 업에 대한 열정, 다른 말로 표현하면 혼(魂)이 많이 퇴색한 것 같습니다. 저는 광고회사 선연에서 카피라이터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요, 힘들어도 일 자체가 좋았어요. 광고나 PR은 상품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잖아요. 그게 너무 재미있어서 어떻게 보면 미쳐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 친구들을 보면 스스로를 직업인으로 여기기보다 직장인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커요. 물론 이런 얘기를 하면 반론도 상당하겠지만요.

산업적 측면에서 가장 크게 느끼는 큰 변화는 아무래도 미디어 분화에 있습니다. 과거엔 4대 매체 중심으로 시장이 좀 고요하게 흘러갔다면, 지금은 한 달 앞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미디어를 모르면 크리에이티브를 생각할 수도 없게 됐어요. 과거엔 한 우물을 파는 단순성·단일성이 중시됐다면 지금은 하이브리더티(hybridity) 즉, 혼종성·잡종성이 훨씬 중요해진 시대가 됐습니다. 쉽게 말해 갈수록 공부해야 할 게 더 많아지는 거죠.

앞서 올해 학회장으로서 1년간 봉사하겠다 말씀하셨는데, 봉사의 구체적 플랜을 이야기하는 걸로 인터뷰를 마무리 할까요?(웃음)

광고학회가 이번에 직선제로 회장을 선출했어요. 덕분에 학창시절 반장선거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직선제에 뛰어들었습니다.(웃음) 지금껏 남의 브랜드 캠페인만 하다가 제 캠페인을 하려다 보니 머리가 아프더라고요. 생각 끝에 키워드를 ‘체·인·지’로 잡았습니다.

우선 학회 30년이 됐으니 여러모로 변화(change)해야 한다는 뜻이고요. 새로운 환경에 맞게 체질을 바꾸지 않으면 자칫 10년 내로 문 닫을 수도 있겠다 싶어 체(體)력을 강화해 나갈 생각입니다. 두 번째로는 인(人)화입니다. 학회가 성장하면서 1150여명으로 회원수가 늘었는데요, 사람이 모이다 보니 어떤 식으로든 갈등이 생겨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올해는 섬과 섬을 연결하듯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연육교 프로그램을 만들 겁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지(知)성이에요. 아까도 언급했지만 광고가 사회 속에서 지성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관련 세미나를 개최하고 광고지성 주제에 맞게 단행본도 한꺼번에 열 권을 낼 계획입니다. 한 책당 열 명의 필자가 참여해 총 백 명의 전문가가 참여하는 대형 프로젝트가 될 것 같습니다. 기대해 주세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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