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피알=최기영 | 벌써 30년이라는 긴 세월이 무색하게 오늘날까지도 치열하게 싸움을 벌이고 있는 두 맥주 브랜드 ‘카스’와 ‘하이트’, 아이러니하게도 한 브랜드의 탄생과 다른 한 브랜드의 리뉴얼에 모두 참여했던 필자는, 두 브랜드의 기구했던 운명의 반전을 지나칠 수 없어 이 기막힌 사연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1992년은 우리나라 맥주 시장과 그 역사에서 큰 변화의 징조를 품고 있던 한 해였다. 1년 전 조선맥주 박경복 회장의 둘째 아들 박문덕이 영업담당 부사장에서 조선맥주 사장으로 취임했다.
마케팅부를 신설한 박 사장이 40년 만에 2위 자리를 박차고 오비(OB)맥주를 추월할 신제품 개발 특명을 내린 1992년 5월, ‘소주의 역사가 곧 진로의 역사’라고 할 만큼 국민기업 반열에 올라 서민들의 오랜 동반자로 성장했던 진로그룹이 미국 쿠어스 양조(Coors Brewing)와 합작해 진로쿠어스맥주(Jinro Coors Beer)를 설립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3년 조선맥주는 ‘크라운’이라는 오래된 브랜드 명을 벗어던지고 ‘하이트’라는 새 브랜드를 론칭했다. 비로소 오비맥주를 따돌리고 업계 1위의 숙원을 이루게 될 획기적인 전환점이 바로 이 시기였던 것이다.

서울대 법대 출신 문상목과 카스
‘카스’(Cass) 맥주의 역사를 생각하면, 잘생긴 아들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명품 반열에 올랐으나 아버지 진로그룹이 아들이 태어나고 3년 만에 역사의 장막 뒤로 사라지는 비극을 겪었고, 그로부터 8년 뒤 어머니 ‘진로’가 숙적 ‘하이트’와 재혼을 한다는, 기막힌 운명의 반전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런 아이러니보다, 카스를 세상에 내놓은 진로쿠어스맥주를 말하려면 문상목(文相穆) 사장의 이야기를 빠뜨릴 수 없다.
서울대학교 법대에 재학 중이던 21세에 제7회 행정고시에 최연소 합격할 만큼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지만, 그런 경력보다 더 값진 점은 당시 그가 보였던 결단력과 자신감, 그리고 열정이었다.
소주 역사가 곧 진로의 역사라고 할 만큼 소주의 제조와 판매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맥주에 대한 축적된 기술과 노하우가 없었던 진로로서는 관련 기업과 합작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미국 콜로라도주 골든(Golden)에 본사와 공장을 둔 150년 전통의 쿠어스 양조와 합작해 법인을 설립했고, 공장을 지을 때도 맥주공장 설비에서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는 독일의 시거와 스타이네커, 크로네스와 영국 APV 그룹이 참여했다.
문 사장은 특히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맥주 맛을 찾기 위해 1992년 5월 회사 설립과 동시에 소비자 조사에 착수했다.
맥주 애호가들이 선호하는 기존 제품을 대상으로 수없이 맛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소비자 대부분이 상쾌하지 않으며 약간 쓰고 시금털털한 맛을 싫어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그리고 조사를 거듭한 끝에 기존 열처리 과정에서 산화로 인해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에 엄청난 투자비에도 불구하고 비열처리 맥주를 택하게 됐다. 출시를 앞두고 문 사장은 “기존 비열처리 맥주보다 훨씬 완벽한 비열처리 공정을 거쳤기에 소비자의 냉철한 심판을 받을 각오가 되어 있다”며, 품질로 기존 맥주와 승부하겠다고 선언했다.

40년 2위 자리 박차고 1위 고지 점령한 ‘하이트’
한편 하이트가 출시될 때의 첫인상은 지하 150m 암반 천연수가 바위를 뚫고 솟구치는 영상 때문인지 ‘강력한 신선함’(Powerful Freshness)과 ‘뚜렷한 대비’(Obvious Contrast)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골드 바탕에 장식적인 패턴과 빨강, 검정으로 채웠던 이전 레이블과 비교할 때, 거의 흰 바탕에 신전의 기둥처럼 서 있는 진한 녹색의 ‘HITE’ 네 글자와 초콜릿색 병에서 느껴지는 강한 명암·색상 대비가 그런 느낌을 주었으리라 추측한다.
‘하이트’ 론칭 3개월 뒤 회사에서는 초기 구매 실상을 파악하고 중간 수정 전략 수립에 필요한 기초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소비자 구매 실태조사에 나섰다.
결과는 재구매 및 재음용률이 90% 이상으로 하이트의 시장진입이 매우 성공적인 것으로 조사됐다. 하이트 맥주는 기록적인 매출 신장을 올리며 정상궤도에 올랐다.
지속적인 판매 호조에 힘입어 1993년 출시 당시 30%선이었던 시장점유율이 이듬해 35%, 1996년 43%. 드디어 업계 1위, 최정상에 올라섰다. 이후 2000년 53%, 2009년 59%를 돌파하며 우리나라 맥주 시장 구도의 판을 바꾼 새로운 역사를 쓰기에 이른다.
하이트의 성공과 함께 박문덕 회장은 1998년 사명을 조선맥주에서 하이트맥주로 변경한 데 이어, 2005년에는 첩보전을 방불케 한 인수전을 벌여 ‘국민 소주’라 일컫던 진로를 인수하고 ‘하이트진로그룹’을 출범시켰다.

‘카스’ 주인이 된 ‘오비’(OB)의 다사다난
‘오비’라는 브랜드가 오랜 기간 변함없이 지탱해왔던 것과는 달리, 오비맥주의 주인은 여러 차례 바뀌었다.
원 소유주였던 두산그룹이 동양맥주를 매물로 내놓은 것이 그 출발점이었다. 두산그룹은 IMF 외환위기 여파가 몰려오던 1998년 벨기에 ‘인터브루’(현 AB인베브)에 동양맥주 지분 50%와 경영권을 넘겼다.
동양맥주를 인수한 인터브루는 상호를 ‘오비맥주’로 변경했고, 2001년 인터브루 측에서 두산그룹이 보유한 잔여 지분 중 45%를 추가 매입하는 절차가 뒤따랐다.
오비맥주의 지배구조는 2009년 다시 한번 요동쳤다. 이 무렵 AB인베브는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 컨소시엄’에 2조 3000억 원을 받고 오비맥주를 팔았다.
KKR-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 컨소시엄은 사모펀드라는 특성 그대로 5년 뒤 오비맥주를 M&A 시장에 매물로 내놓았다.
2014년 오비맥주는 6조 1000억 원에 매각됐는데, 놀랍게도 매수자는 이전 주인이었던 AB인베브였다. 5년 전 오비맥주를 매각하면서 손에 쥔 금액보다 4조 원 가까이 더 들여 오비맥주를 다시 품에 안은 것이다.

‘하이트’ 오랜 숙적 ‘오비’의 제품 라인이 된 ‘카스’
한편 1994년 출시된 진로쿠어스맥주의 ‘카스’는 우리나라 맥주 시장에서 선두를 놓치지 않았던 오비맥주와 하이트맥주를 무서운 속도로 쫓아왔다. 출시 2년 뒤인 1996년 상반기 전체 국내 맥주 시장 점유율 19.7%를 달성하며 20% 문턱까지 쫓았고, 6월에는 호주 국제맥주대회(AIBA)에서 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러나 이듬해인 1997년 모기업 진로가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1999년 진로쿠어스맥주가 1998년 인터브루와 지분 합작한 오비맥주에 인수되면서 자연스럽게 오비의 제품 라인이 되었다. 하이트맥주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던 오비맥주로선 카스가 구세주 같은 존재였다.
이로써 몇 년간의 ‘삼두 경쟁 구도’는 다시 ‘양강 구도’로 자리 잡았다.

표음어 ‘카스’ 장점 극대화한 강한 독일풍 로고 탄생
“카스(Cass)!” 시원하고 진한 맥주 한 모금 마시면 자연스레 목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 바로 그 소리를 닮은 브랜드명의 특징을 극대화하면서 단 네 글자의 영문 ‘Cass’에 보다 강력하고 전통적인 유러피언, 특히 독일풍 분위기를 주기 위해 올드 잉글리시(Old English) 타입의 서체로 로고를 디자인했다.
그리고 두 마리의 유니콘(Unicorn)을 이용한 장식용 엠블럼을 만들어 클래식한 느낌과 함께 맥주 머천다이징(Merchandising)에 꼭 필요한 부수적인 그래픽 요소 역할을 부여했다.
출시와 동시에 곳곳에서 “카스(Cass)!”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릴 때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카스’ 소리만 들어도 빙긋 미소가 지어지며, 문득 프로젝트가 끝날 무렵 롯데호텔 멤버스 바에서 론칭 파티를 열어주었던 문 사장의 자신감에 찬 모습이 그리워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