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 매거진

"AI도 노동의 가치는 대체 못 해요"

[인터뷰] 운송수단 복합공간 '파발역' 윤진영 대표

청년 로컬 창업자가 말하는 지역과 청년의 상생 해법
“로컬 이슈, 청년 만이 아니라 모든 세대 함께 나서야”

  • 기사입력 2023.09.11 08:00
  • 최종수정 2023.09.11 13:51
  • 기자명 김병주 기자
사진제공=파발역.
사진제공=파발역.

더피알=김병주 기자 | 16세기 말 조선에서는 횃불과 연기를 피워 상황을 전하는 봉수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직접 말을 타고 소식을 전하는 새로운 통신 제도인 ‘파발(擺撥)’이 도입됐다. 파발꾼들이 말을 갈아타고 재정비하는 중간기지 격인 역참(驛站)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전국 곳곳에 설치된 역참은 점차 조선시대 정보 전달 체계의 중심으로 거듭났다.

파발역은 지금도 살아있다.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 영동고속도로 근처에는 윤진영 대표가 2021년부터 운영하는 운송수단 복합공간인 ‘파발역’이 있다.

과거 응암리(구 파발막)에 있던 조선시대 파발역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각종 세차·정비 서비스 외에도 부품과 용품 판매, 식품 제조와 판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운송수단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이동과 만남을 제한받았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운송수단의 활용은 역설적으로 더 중요해졌다.

이 시기, 석유차의 비율이 줄어들고 전기차와 자율주행차의 약진이 두드러지면서, 자동차를 둘러싼 기술의 패러다임도 바뀌기 시작했다. 단순히 운송수단이라 여겼던 자동차는 사용자의 삶의 질 향상에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매개라는 점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윤 대표가 그리는 파발역은 ‘다음을 모색하는 공간이자, 다음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이들의 공간’이다.

자동차문화복합공간 파발역의 윤진영 대표
자동차문화복합공간 파발역의 윤진영 대표

노동의 가치로부터 탄생한 파발역

로컬 크리에이터로서 윤진영 대표는 서울에서 고향으로 ‘유턴’한 케이스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이천에서 다니고,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며 어떤 사업을 해야 좋을지 비전을 세웠다. 어릴 때부터 지켜본 아버지의 자동차 정비업과 대학에서 태양광 자동차를 직접 만들 때 쌓은 비즈니스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

“LG전자나 한국3M같은 기업에서 직접적으로 돈을 따오는 역할을 맡아서 기업의 전무·상무님들과도 대면하고, 호스피탈리티와 코디네이션을 배웠죠. 
제가 대학에서 배운 것은 서비스를 어떻게 고객에게 전해줄 것인지에 대한 기술이에요. 대학에서는 돈을 받아서 뭔가를 만들 수 있었지만, 현실적으론 제게 수익을 안겨주는 캐시카우(Cash cow)가 없으면 이상에 그칠 뿐입니다.”

코로나가 심해질 때 그는 파발역 구상을 현실로 옮기기 시작했다. 법인 설립부터 건축까지 모두 그가 직접 했다. 앞으로 전기차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 판단한 그는 소모품이나 내연기관이 없어지면 어떤 서비스가 필요해질지를 고민했다.

윤 대표는 AI도 대체할 수 없는 기술인 노동의 가치에 주목했다. 세차와 정비, 외장관리 등을 올인원으로 제공하는 서비스가 결론이었다. 차량 관리를 전문가에게 일임하고 싶어 하는 바쁜 사람들을 위한 솔루션 제공이 뒤따랐다. 곳곳에서 셀프 세차가 생겨나도 결국은 힘이 드는 노동을 피하고 싶어 하는 수요를 포착한 것이다.

파발역에서는 다양한 세차 방식을 원하는 고객 수요에 맞춰 셀프 세차와 자동세차 외에 손세차까지 선택 가능하다.

윤 대표는 지금도 고객이 손세차를 예약하면 왁스와 세정제를 들고 나와 차량 종류별로 적합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30분에서 2시간 동안 고객은 1층에서 음료를 사서 2층 라운지에서 쉬거나 업무를 볼 수 있다.

“지방에는 복합공간의 개념이 아직 생소하지만, 복합공간의 장점은 하나의 공간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천은 골프 인구와 골프장도 많은 곳입니다. 저희 고객의 상당수가 골프 라운딩이 끝나고 서울로 올라가는 중장년층 이상의 분들입니다. 
여기서 제가 그걸 하나의 루틴으로 만들 수 있죠. 골프, 식사, 손님 대접에 모두 좋은 곳이니 비즈니스 카페로도 적격이고요. 
인근의 하이닉스 관련업체 분들, 소상공인 대표님들도 여기서 모여 회의를 하곤 합니다. 자연히 좌석도 모두 단체좌석으로 마련했죠.”

파발역에서 세차를 하기 위해 줄을 선 차량들. 사진제공=파발역.
파발역에서 세차를 하기 위해 줄을 선 차량들. 사진제공=파발역.

휘둘리지 말고 안정적인 자립을 추구하라

물론 로컬 크리에이터에게 공간 사업의 부담은 만만치 않다. 투자비용도 크고, 마음에 들지 않아 리뉴얼하는 비용도 크다.

공간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인건비, 전기료, 수도요금부터 계속 올라가고, 매출이 높아져도 영업이익은 떨어지기 쉽다. 지방은 사람을 쓰기 어려운 만큼 시공간을 더 적절히 안배하여 최대의 업무 효율을 추구해야 한다.

대부분의 로컬 크리에이터는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사업에 응모하는 식으로 자금 동원에 나선다. 정책적인 면에서 크리에이터들이 처음 창업할 때 제공되는 지원에 비해 꾸준한 사후 지원은 부족한 상황이다.

일회성 지원만이 계속되면 크리에이터의 비즈니스 자립이 어려워지면서 이들이 타성에 젖게 된다는 문제점도 있다. 단순히 지역적·문화적 가치 한두 가지를 보고 브랜드만 만들어내는 사업은 경계해야 할 이유다.

“이 점에서 로컬 크리에이터는 치고 빠지는 일회성 사업이 아니라 꾸준히 가져갈 수 있는 아이템을 기반으로 삼아야 합니다. 로컬 크리에이팅을 기획하는 시점부터 비즈니스가 자립할 수 있는 방안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어야죠.”

그 말대로 그는 꾸준하게 돈을 버는 사업 하나를 기본으로 놓고 안정적으로 수익 파이프라인을 구축할 수 있었다. 현재 윤 대표는 사업을 더 크게 확장하기보단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제일 중요한 건 신뢰 구축입니다. 고객이 저를 믿게 하려면 A부터 Z까지 제가 직접 할 필요가 있겠더라고요. 
똑같이 세차를 하러 온 고객이어도 제가 더 잘해드리면 커피도 사드시고 방향제도 구매하는 등 더 깊게 관여를 하기 마련이니까요. 
자본의 움직임에 휘말리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다 같이 살지 않으면 시너지는 일어나지 않는다

비용 절감과 더불어 창업자 자립과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촉진할 방안은 모두가 같이 생각해야 할 사안이다.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국가에서 사업을 따고 지방에서 받아내는 구조가 유지되면 한계를 돌파하기 어려우니, 사업을 실제로 운영하는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통해서 자유로운 토론을 하며 정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어야 된다는 의미다.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문화권 속담처럼, 윤 대표는 로컬 크리에이팅이 청년에 국한하지 않고 지역의 전 구성원들이 나설 일이라 믿는다.

사업을 시작하는 크리에이터가 초점을 맞출 부분은 자신의 사업이 얼마나 확장성이 있는지, 지역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 여부다. 소상공인과 로컬 크리에이터가 같이 성장을 하고 직접적인 투자나 지원을 유도할 수 있다면 선순환이 가능하다.

이천은 ‘한 다리 건너면 다 안다’고 할 정도로 지역사회가 끈끈하지만, 지역 민심을 잡는 소통도 결국 로컬 크리에이터가 직접 나서야 한다.

윤 대표는 이천 지역 소상공인 협회, 청년 정책발전소 외에도 온·오프라인에서 지역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버팀목이 될 방법은 많다는 점을 강조했다.

“구성원들이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는 같이 일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로컬 크리에이터도 4~50대 분들과 지속적으로 같이 비즈니스를 해야 됩니다.
처음 사업에 뛰어드는 청년들은 직접 노동의 가치를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정량적인 평가만을 보고 자신이 모두 순조롭게 오퍼레이션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크리에이터들이 직접 현장에서 발로 뛰지 않으면 계속 사회적 비용만 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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