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한민철 기자 ㅣ 영풍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등을 상대로 제기한 자사주 취득 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기각했다. 영풍 측이 공개매수 가격을 기존보다 올려 제시한 것이 발목을 잡은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부장판사 김상훈)는 2일 오전, 영풍이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과 박기덕·정태웅 대표, 한국투자증권을 상대로 제기한 자기주식 취득 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 결정했다.
앞서 영풍과 사모펀드(PEF) 운영사 MBK파트너스는 고려아연의 경영권 확보를 위한 공개매수 기간(9월 13일~10월 4일) 동안 고려아연이 자사주를 취득할 수 없도록 해 달라며 지난달 19일 법원에 이번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자본시장법 제140조(공개매수에 의하지 아니한 매수 등의 금지)에 따르면, 공개매수자와 그 특별관계자는 공개매수 기간에 공개매수 대상 회사의 주식을 공개매수 외의 방식으로 매수할 수 없다.
영풍 측은 고려아연이 자사의 계열사인 특별관계인으로, 자사주 매입을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최윤범 회장 등 고려아연 관계자들은 영풍이 적대적·약탈적 인수합병(M&A)을 하고 있다고 판단한 만큼, 더는 영풍의 특별관계인이 아니기 때문에 매수 금지 규정에 적용받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영풍과 고려아연이 특별관계자 관계에 있지 않다고 봤다.
우선 올해 3월 고려아연의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영풍이 고려아연의 배당·정관 변경에 반대 의사를 밝힌 점, 이어 영풍이 고려아연을 상대로 신주발행 무효의 소송을 제기해 현재 법원에서 관련 심리가 진행 중인 점, 무엇보다 이런 일련의 갈등이 이어져 두 회사가 현재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점 등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두 회사가 주식의 공동취득과 공동처분, 상호양수, 의결권 공동 행사 등에 대해 합의한 사실이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특수관계인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재판부는 영풍 측이 제기한 최윤범 회장 등 고려아연 이사진들의 충실의무 및 선관주의 의무를 위반 여부에 대해서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영풍 측은 공개매수 기간 중 고려아연의 주가가 정상 시세보다 훨씬 높은 상황이고, 이 상황에서 자기주식을 취득하게 된다면 고려아연 이사들의 충실의무 및 선관주의 의무를 위반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MBK파트너스도 “고려아연의 자사주 매입 공개매수 관련, 정상 주가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자기주식을 취득하는 것은 배임이므로 금지돼야 한다”며 “고려아연의 자사주 매입 공개매수는 배임, 시세조종, 자본시장법상 별도매수 금지의무 위반에 해당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채권자(영풍) 측도 공개매수 가격을 기존 주당 66만 원에서 75만 원으로 높여 제시했다”라며 현재 고려아연의 정상 주가가 시세보다 훨씬 높다는 영풍 측의 주장이 타당하지 않고, 정상 주가조차 명확하지 않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이번 법원의 결정으로 고려아연은 경영권 방어 수단 중 하나인 자사주 매입을 계속 추진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영풍은 이날 고려아연의 자기주식 취득 목적 공개매수 절차를 중지하라는 취지의 가처분 신청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고려아연이 이사회를 열어 자사주 매입에 나서겠다고 결의한 것이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배임에 해당하니 이를 막아달라는 취지다.
또 법원은 영풍은 최윤범 회장이 회사에 재무적 손실을 끼친 의혹 등을 따져보겠다며 제기한 회계장부 열람 등사 가처분 신청 사건에 대해서도 같은 날 오후 첫 심문을 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