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김민지 기자 | 의료개혁 문제를 놓고 의사단체와 정부가 ‘서로 존중하며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했지만 결국 입장차는 좁히지는 못했다.
의·정 갈등이 8개월 이상 치닫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사-국민의 첫 대화 시도로 볼 수 있는 공개토론회의 결과로, 정상적인 소통 면에서 갓 첫 걸음을 뗀 만큼 갈 길은 여전히 멀어보인다.
의료개혁 논의를 위해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는 10일 서울대 의대에서 ‘의료개혁, 어디로 가는가’를 주제로 공개토론회를 열었다. 정부 측은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비서관, 정경실 보건복지부 의료개혁추진단장과 비대위측은 강희경 비대위원장과 하은진 비대위원이 참석해 첨예한 논쟁을 이어나갔다.

비대위는 누가 옳은지 따지는 토론보다 ‘숙론의 장’을 만들고자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정부 측도 의대정원 증원을 두고 여야의정협의체를 제안했지만 첫 발도 떼지 못하고 있어 접점을 찾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일단 양 측은 지역·필수의료 살리기에 있어 모두 동의한다는 입장이었다.
정부는 상급종합병원의 환자 쏠림현상을 줄이겠다는 약속과 함께 하위급부터 상급까지의 환자전달체계를 수정해나가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비대위 역시 시스템 개선으로 충분히 환자 맞춤으로 정상적인 의료체계 구축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의사 수 증원에 대한 논의에서는 평행선을 달렸다. 정부는 초고령사회 진입 대비를 위해 의사 수 증원은 불가피하다고 당위성을 호소했지만, 비대위는 강한 반대의사를 내비치며 체계 개선이 의료 개혁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를 맡은 유미화 녹색소비자연대 상임대표가 ‘국민은 어떤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며 토론을 진행한 만큼, 진정 국민을 위한 의료개혁이 이뤄질 지는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각 관계자가 주장하는 해법과 근거를 정리해봤다.
의대 2000명 증원, 필요한가?
과학적 근거 vs 인력난 과목 처우 개선 먼저
정부 측은 2000명 증원 수 결정은 과학적인 근거를 토대로 정해진 것이라는 설명을 이번 토론회에서도 재차 언급했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비서관은 “장내 인구 추계화 같은 기초 데이터를 토대로 의사 인력 수급량을 매우 정밀하게 예측할 수 있고, 그 결과 2035년에는 약 1만명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과가 나온다”고 말했다.
“이 또한 90세까지 똑같은 생산성을 가지고 일한다는 등의 비현실적인 가정을 배제하면 필요 의사수가 2배 이상 늘어나는데, 즉 2000명 증원이 필요한 것이 아닌 4000명 이상 증원이 필요한 것이며 정부는 최소한의 숫자를 제시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 증원에 의한 의사의 경제적 처우는 크게 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향상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의사 단체를 안심시키는 모습이었다.
장 비서관은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65세 이상 인구가 매년 50만명씩 증가해 의사의 손길이 더 필요하다”며 “또 소득이 늘어날수록 의료 수요가 증가하는 것도 모든 나라에서 경험적 수치로 일관되게 확인된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비대위 측은 의사 수는 이미 충분하나 산부인과·흉부외과·소아청소년과 등의 과목은 본인 전공과목 진료를 하지 않는 전문의 비율이 높은 것이 문제고 이는 증원이 해법이 아니라는 주장을 강하게 밝혔다.
또 지난 상반기에 비대위에서 시행한 국민 대상 조사를 바탕으로 국민이 진정으로 바라는 의료개혁은 환자의 질병을 더 세심하게 케어해줄수 있는 주치의 제도, 1차 의료 강화로 대학병원과의 차별화, 필수의료 보상 강화, 소송 여건 개선 등이라고 설명했다.
강희경 비대위원장은 “의사 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비해 적은 건 사실이나 이것을 ‘부족’하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OECD 대비 우리나라의 기대수명이 3년 더 길고 질환에 의한 사망률도 낮은 점 등 우리나라의 의료 서비스 질은 이미 타 국가 대비 훌륭한데, 정부가 OECD 평균 대비 데이터로 근거를 드는 증원 주장에 논리성이 부재하다는 설명이다.

의사 수 부족과 관련해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리는 사례인 ‘응급실 뺑뺑이’의 해법을 찾는데 있어서도 양측의 의견은 팽팽했다.
정부 측은 질환의 경·중증 분류체계를 수립해 9월부터 활용 중이고, 전문가의 판단 하에 비응급 경증 환자는 중소병원이나 동네 의원 응급실 이용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증원을 결정하게 된 계기가 응급의학과 또는 필수의료 과목의 전문의 부족이라고 강조하면서 증원의 불가피함을 설명했다.
장 비서관은 “응급실에서 일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나 배후 진료를 담당할 필수의료 전문의급 인력이 수도권에서도 부족하고 지역에서는 더더욱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물리적인 숫자가 적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하은진 비대위원은 “응급실 뺑뺑이를 생각해보면 시스템의 문제지 의사 수의 문제가 아니다”며 일본의 의료 개선 사례를 근거로 들었다.
하 위원은 “일본과 한국 OECD 평균 대비 의사 수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데 일본은 병원 분류체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서 응급실 뺑뺑이가 발생하는 빈도수를 대폭 줄였다”고 설명했다.
강 위원장은 “응급의학과 전문의 수는 굉장히 많은데 응급실 진료를 더 이상 안 하는 게 문제”라며 “이를 해결해주면 되는데, 그 답은 소송 문제와 수가에 있다”고 말했다.
하 위원도 “정부에서 내세운 정책을 보니 전공의 월급만 올려줬는데, 야간에 당직비조차 제대로 받지 않아 이들의 급여를 올려주는 건 맞지만 전공의 끝나고 근무하는 전문의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상급종합병원 중환자 중심으로…1차 의료 이용 늘리자
상급종합병원에서 중증환자의 긴 대기 등 큰 병원으로 환자들이 쏠리는 현상으로 인한 문제 해소 토론도 이뤄졌다.
정부는 여러 과목의 협진으로 통합적 건강관리가 되는 3차 의료기관과 달리 1차 의료기관에서는 이를 수행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음을 인지하고 체계 수정, 재정 투입 등 방침을 세웠다.
정경실 보건복지부 의료개혁추진단장은 “환자가 큰 병원을 이용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들어보면 동네에 어느 병원을 가야할 지와 어느 정도의 질환 상태일 때 큰 병원을 가야하는지 몰라하는 것”이라며 “환자의 상태를 가장 잘 아는 의사가 전문적인 판단으로 상급종합병원으로 보낼 수 있는 의료제도”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어 “전문의들이 단과 위주의 의원을 개설중이라 건강의 예방과 통합적 관리를 하는 진정한 의미의 1차 의료가 현재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현재 여러가지 만성질환 관리와 관련한 시범사업, 장애인 주치의 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나 확신이 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정부 측은 1차 의료에서의 다각적 진료 인력 양성, 심층적인 진료를 보게 하는 수가 구조 변경, 2차 병원과 3차 병원과의 진료 협력, 중증이 된 후 대형병원 이송 시 ‘패스트트랙’으로 빠르게 진료를 보도록 하는 제도 등을 갖춰야 할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으며 이를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비대위 측 또한 의료전달체계 정상화를 요구하며 제도 구축에 찬성했다. 하위급 병원에서 만성질환 관리가 잘 이뤄져 환자 분배가 적절히 이뤄진다면 상급종합병원 쏠림도 줄고 의사 수 증원도 불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은진 위원은 “1차 진료의 가장 큰 맹점은 진찰료가 굉장히 낮아 환자의 이야기를 오래 들어주며 진찰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고 비급여 진료를 더 열심히 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라며 “1차 진료영역에서 다학적으로 진료할 수 있게 수가를 만들어주면 된다”고 짚었다.
그렇기에 의대 정원 증원이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하 위원은 “국내 의사들은 OECD 평균 대비 3배에 이르는 의료 이용과, 2배에 가까운 입원을 커버하고 있는데 아까운 돈을 의사 늘리는데 쓰지 말고 시스템을 개선하는데 먼저 쓰는 것이 어떨까 싶다”고 제안했다.
강 위원장도 “가까운 지역에서 건강 관리를 하면 1차 의료가 살아날 수 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증원이 필요할지 다시 한 번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청중석에서는 “의대 증원 문제를 차치하고 전공의는 환자 곁으로 돌아오는 게 현재 대다수 국민의 여론”, “증원된 의대생을 어떻게 전문의로 키워낼 것도 중요한 문제” 등 각기 다른 시각도 제기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