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 매거진

랩드(wrapped) 마케팅, 고객의 ‘겸손한 자랑’은 공짜 광고 기회

[브리핑 지] 연말 SNS는 향수의 시간

지난 1년 간 삶에 영향 준 디지털 발자국 돌아보기
정체성 드러내는 데이터 공유,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

  • 기사입력 2024.12.27 08:00
  • 기자명 박주범 기자

더피알=박주범 기자 | 2016년 스포티파이가 시작한 연말 ‘랩드(Wrapped, 사용자가 1년간 가장 많이 들은 노래, 아티스트, 장르, 팟캐스트 등 청취습관 데이터 요약)’가 매년 이맘때쯤 소셜미디어에 바이럴 되고 있다.

최근 BBC뉴스는 애플이나 아마존 뮤직 등 다른 음악 스트리밍 앱은 물론, 독서, 게임 등 취미생활, 은행의 지출 데이터, 슈퍼마켓/커피전문점 구매내역, 교통 이동내역 등 분야를 막론하고 다양한 기업들이 ‘연말 리뷰’ 마케팅에 뛰어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1년 가장 좋아했던 곡 다섯곡을 보여준 스포티파이 랩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 1년 가장 좋아했던 곡 다섯곡을 보여준 스포티파이 랩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다. 

킹스 칼리지 런던(King's College London)의 전략 마케팅 교수인 질리언 브룩스(Gillian Brooks) 박사는 “스포티파이 랩드의 성공은 개인적 취향인 음악에 대한 것으로 사람들이 지난 1년간 자신의 삶에 영향을 준 노래를 돌아보는 향수를 즐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리젠트 대학 런던(Regentś University London)에서 브랜드 전략 및 문화를 가르치는 조나단 윌슨(Jonathan Wilson)교수는 피트니스나 교육 등 ‘바람직한 활동’과 관련된 연말 리뷰 데이터 공유에는 숨은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내가 올해 얼마나 활동적이었는지 스트라바가 자세히 알려준다.
내가 올해 얼마나 활동적이었는지 스트라바가 자세히 알려준다.

셀카 올리기를 쑥스러워 하거나 ‘자기애’라고 꺼리는 사람들도 할 수 있는 ‘겸손한 자랑(humblebragging)’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중에게 보여주고 싶거나 지지하고 싶은 이미지를 강화’하는 정보를 소셜미디어에 공유한다는 분석이다.

스트라바는 올해 얼마나 달리거나 자전거를 탔는지 계산해주고, 듀오링고는 다른 언어를 배우는 데 몇 시간을 보냈는지 알려준다. 굿리즈는 읽은 책의 평균 페이지 수와 가장 좋아하는 장르에 대한 세부 정보를 소셜미디어에서 공유할 수 있도록 이미지로 제공한다.

“나에 대한 (이러한) 데이터를 보여주는 것은 제일 좋은 옷을 입고 비슷한 주변 사람들과 고가 물건에 둘러싸여 찍은 셀카를 공유하는 것과는 반대로 은근히 과시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윌슨 교수는 덧붙였다.

시티런던대학교(City, University of London)의 캐롤라인 위어츠(Caroline Wiertz) 마케팅 교수도 “자랑이라기 보다 데이터에 근거한 것”이라면서 동의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사용자가 알아서 소셜미디어에 공유해주니) 회사나 제품을 홍보할 좋은 기회이기 때문에 너나 할것 없이 따라하고 있다고 윌슨 교수는 분석했다.

브룩스 박사 말대로 “그들에게는 무료 광고”인 셈이다.

테스코는 클럽카드 고객들에게 가장 많은 구매 품목 등을 결산해준다(BBC 보도)
테스코는 클럽카드 고객들에게 가장 많은 구매 품목 등을 결산해준다(BBC 보도)

이에 따라 회사들은 어떻게든 고객이 더 재밌어하면서 많이 공유할 수 있도록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소셜미디어에 재정 상황에 대한 정보를 게시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영국의 인터넷 뱅크인 몬조(Monzo)는 누가 그렉스(Greggs, 프렌차이즈 베이커리)에서 가장 많이 지출하는지 같은 정보를 제공해 공유하고 싶게 만든다.

슈퍼마켓 세인즈버리(Sainsbury’s)는 사용자가 사는 동네에서 특정 제품을 가장 많이 구매했는지 여부를 보여준다.

레딧은 1년간 스크롤한 거리를 바나나 단위로 알려준다. 
레딧은 1년간 스크롤한 거리를 바나나 단위로 알려준다. 

폭발하는 연간 리뷰 데이터 마케팅에 대해 기업들이 지나치게 많은 정보수집으로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것이 아닌지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은 없을까? 앱이나 웹사이트가 마케팅 목적으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수집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브룩스 박사는 “사람들이 온라인 개인 정보 기본 설정을 맹목적으로 수용한다”고 지적하면서 웹사이트에서 요구하는 내용에 동의하지 않으면 계속 진행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데이터 개인정보 보호가 예전만큼 큰 문제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취미와 여가 활동을 온라인에 공유하는 것에 대해 거리낌 없는 듯한 사람들에 대해 윌슨 교수도 “역설적이게도 자신에 관한 데이터 게시는 셀카 공유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주는 것인데도 사람들은 더 편하게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물론, 자기가 원하는 정보를 원하는 범위 내의 사람들에게 공유하는 것에 대해 괜찮다는 의미일 것이다.

다른 사람의 취미활동 공유를 너무 편하게 생각했다가 논란이 일기도 했는데, 뉴스위크(18일 보도)에 따르면 최근 레딧에서 회사가 직원들에게 (스포티파이)랩드를 팀과 공유해달라고 요청한 것에 대해 사생활 침해 여부를 두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굿리즈 연말 리뷰로 검색한 틱톡 화면
굿리즈 연말 리뷰로 검색한 틱톡 화면

레딧의 한 사용자(U/halentecks)가 올린 게시물에는 고용주가 약 30명으로 구성된 팀에 1년 간의 스트리밍 기록을 제출해달라고 요청한 내용이 나와 있다. 이 요청이 개인 정보 침해라고 주장한 게시물은 1만1000개 이상의 추천을 받으며 직장 내 경계에 대한 광범위한 대화를 불러왔다.

취미 활동 공유 즐기지만 정체성 드러내는 것엔 불편 느낄 수도

에델 리더십 심리학 센터 (Edel Center for Leadership Psychology)의 산업 및 조직 심리학자인 홀리데이-퀸(Holliday-Quinn)은 “표면적으로 팀원들에게 랩드 공유를 요청하는 것은 동료애를 키우는 재미있는 방법처럼 보일 수 있지만 개인적 삶과 직업적 삶 사이의 선을 넘으며 불편함, 스트레스, 배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음악, 팟캐스트 및 기타 듣기 습관이 정체성의 개인적 측면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신건강, 종교적 신념 또는 정치적 성향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에 “동의 없이 이러한 측면을 드러내면 개인이 노출되거나 판단 받는다고 느낄 수 있으며, 이는 포용적 직장 환경에 중요한 요소인 심리적 안전을 훼손한다”고 홀리데이-퀸은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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