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 매거진

라부부 열풍에 힘입은 연말연시 ‘블라인드 박스’ 전면전

[브리핑 지] 도파민 소비, 루트박스, 언박싱이 뒤섞인 새 홀리데이 게임

라이프스타일·경험 소비로 확장되는 ‘놀라움의 경제학’
도파민 자극하는 블라인드 박스, 소비 심리 혁신

  • 기사입력 2025.11.24 09:56
  • 기자명 박주범 기자

더피알=박주범 기자|올해 북미 연말 장난감 매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로 채워졌다. 열기 전까지 내용물을 알 수 없는 블라인드 박스가 2025년 크리스마스 쇼핑 한복판을 차지하면서, 놀라움(surprise)과 즐거움(delight)을 지불할 만한 가치로 인식하는 소비 심리가 또 한 번 증명되고 있다.

미니소 매장에 장난감 블라인드 박스가 쌓여있다 (사진 = 로이터 보도)
미니소 매장에 장난감 블라인드 박스가 쌓여있다 (사진 = 로이터 보도)

블라인드 박스는 라인업은 공개하지만 실제 캐릭터는 숨기는 구조다. 구매자는 세트를 완성하거나 희귀 아이템을 뽑기 위해 반복 결제를 하게 되고, 이 도파민 유도형 소비가 장난감 시장의 공식처럼 굳어졌다.

시장조사기관 서캐나(Circana.com)의 줄리 레넷(Juli Lennett)은 “블라인드 박스의 핵심은 하나만 사는 게 아니라 10개, 30개를 사도록 한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중국산 장난감에 대한 관세로 가격이 전반적으로 오르는 와중에도 상당수 블라인드 박스가 15달러 미만으로 유지되며 ‘부담 없는 선물’이라는 위치를 굳힌 것도 상승세에 힘을 더했다.

라부부는 이 흐름을 폭발적으로 상징한 제품이다. 희소성과 재판매 시장의 과열 덕에 ‘올해의 바이럴 장난감’으로 떠올랐지만, 대형 소매업체의 연말 장난감 리스트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수분 만에 매진되고, 이베이에서는 몇 배 가격에 거래되기 때문에 공급 예측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신 월마트와 타깃은 라부부식 구조를 모방한 더 저렴한 블라인드 박스를 대량으로 매대에 채우며 수요를 흡수하고 있다.

팝마트는 올해 3분기 미국 매출이 전년 대비 1,200%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구글 홀리데이 100에서는 라부부가 10위에 올랐으며, '블라인드 박스’ 검색량은 최근 5년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공급이 제한된 라부부 자체보다, 그로 인해 강화된 ‘미스터리 소비’ 인식이 전체 수요를 끌어올리고 있다.

'블라인드 박스' 검색량이 라부부 열품에 힘입어 올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사진 = explodingtopics.com)
'블라인드 박스' 검색량이 라부부 열품에 힘입어 올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사진 = explodingtopics.com)

트렌드 분석회사 익스플로딩토픽스(explodingtopics.com)는 블라인드 박스의 설계가 게임업계 루트박스(전리품 상자)와 동일한 심리 메커니즘을 따른다고 설명한다.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상태가 기대·실망·보상 예측을 반복시키며 결제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도박 요소로 규제 대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다수의 게임이 이 모델을 수익 구조로 삼는다.

블라인드 박스 역시 같다. 팝마트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0%가 “원하는 피규어를 위해 세 개 이상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중국은 8세 미만 아동에게 판매를 금지하고, 8세 이상은 부모 동의를 요구하는 규제를 도입했다. 구조적 중독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커지는 배경이다.

틱톡과 유튜브의 언박싱 문화는 이 트렌드를 가속시킨 핵심 동력이다. 언박싱 영상은 수년간 플랫폼 전반에서 성장해왔고, 블라인드 박스는 이 포맷에 거의 최적화된 상품이다. 크리에이터 본인조차 결과를 모르기 때문에 즉흥적 반응이 그대로 콘텐츠가 되고, 시청자는 타인의 개봉 순간을 통해 유사한 도파민 자극을 경험한다.

라부부 언박싱 영상은 유튜브에서 월 수십만 건의 검색량을 기록하며 구매욕을 부추긴다. 최근 조사에서는 “선물 아이디어를 틱톡 언박싱에서 얻는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다. 콘텐츠 소비가 구매로 직결되는 전형적인 구조다.

다른 사람이 언박싱 하는 것만 봐도 두근두근 도파민이  분비된다는 사람들이 많다 (사진 = 틱톡 언박싱 검색)
다른 사람이 언박싱 하는 것만 봐도 두근두근 도파민이  분비된다는 사람들이 많다 (사진 = 틱톡 언박싱 검색)

블라인드 박스는 이제 장난감 코너를 넘어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확장 중이다. 전통적으로 초콜릿을 채워 넣던 어드벤트 캘린더는 최근 뷰티·향수·굿즈 상품을 담는 고가 버전이 주류로 떠올랐고, 사실상 ‘24칸 블라인드 박스’로 기능한다. 틱톡에서는 관련 영상이 수백만 단위로 소비된다.

프리미엄 브랜드도 이 방식에 뛰어들었다. 르크루제는 시즌 재고를 묶은 ‘공장에서 식탁까지(Factory to Table)’ 미스터리 박스를 출시해 “50달러에 300달러 상당 구성”이라는 메시지로 가성비 기대감을 자극한다. 스타벅스의 ´럭키백(Lucky Bag)´ 역시 재고 처리 논란에도 매년 빠르게 완판된다.

영국·북미의 청산업체들은 브랜드 잉여 재고를 범주별 미스터리 박스로 구성해 판매한다. 소비자는 ‘득템 가능성’과 ‘싸니까 손해는 아니다’라는 자기합리화로 반복 결제를 이어간다.

미스터리 박스가 청산전문업체들의 재고처리 방법으로 각광 받고 있다 (사진 =liquidation.store)
미스터리 박스가 청산전문업체들의 재고처리 방법으로 각광 받고 있다 (사진 =liquidation.store)

이제 블라인드 박스식 사고방식은 서비스 산업으로까지 확장되는 중이다. 캐나다 영화관 체인 시네플렉스는 ‘월요일 깜짝 프리미어(Monday Surprise Premieres)’를 도입했다. 관객은 할인된 가격으로 미개봉 영화를 예매하지만, 제목도, 예고편도 없어 어떤 영화인지 상영 직전까지 알 수 없다.

팬데믹 이후 관객 수가 2019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상황에서, 시네플렉스는 이 방식을 평일 관객을 끌어오기 위한 실험으로 삼았다. CBC 뉴스는 영화학자들의 표현을 인용해 이를 극장판 블라인드 박스, 라부부의 영화버전이라고 보도했다.

대량의 엔터테인먼트가 다양한 출처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되는 상황에 극장이 관객들을 흥분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예측 불가능한 순간을 경험화해 ‘특별함’을 제공하고, 이것이 소셜미디어 공유로 이어져 확산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향후 미스터리 콘서트, 비공개 전시, 정체를 숨긴 팝업스토어 등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소비자는 큰 지출보다 반복 가능한 작은 도박에 더 쉽게 마음을 연다. 브랜드와 유통업체는 재고 리스크를 줄이면서 구매 횟수를 극대화 한다. 라부부 열풍은 정점을 지났다는 분석이지만 시장은 미스터리 소비라는 문을 활짝 열었다. 이 문은 당분간 닫히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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