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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을 나온 피아노[현장 Talk Talk] 달려라피아노 정석준 대표
승인 2015.11.21  14:45:20
조성미 기자  | dazzling@the-p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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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관객 삼아, 바람을 스피커 삼아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들. 멋진 교향곡이 아니어도 좋다. 뚱땅뚱땅 피아노를 두들기며 꺄르르르 웃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이 자체로도 훌륭한 음악이기에…

   

[더피알=조성미 기자] 거실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피아노를 떠나보낸다. 아이들이 어릴 적 고사리 같은 손으로 닿지도 않는 건반을 누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씨름하던 그 피아노. 한해 두해가 지나도 열릴 일 없던 피아노 뚜껑을 열어 깨끗이 닦아 다른 이의 손에 넘긴다.

예술로 더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비영리민간단체 ‘달려라피아노’에 오는 대부분의 피아노들은 이런 사연을 갖고 있다. 아이들의 성화에 커다랗고 비싼 피아노를 들여놨지만, 몇 해 전부터인가 찾는 이 없이 거실 한 켠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것이다.

달려라피아노는 이러한 피아노를 기증받아 페인팅 과정을 통해 새 생명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그렇다고 단지 업사이클링 작업만 하는 것은 아니다. 새롭게 태어난 피아노를 들고 길거리로 나와 세상 모든 곳을 연주장으로 만드는, 우리의 평범한 생활을 예술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왜 하필 피아노야?

달려라피아노의 정석준 대표는 다양한 문화재단에서 축제를 기획하고 홍보한 이력을 갖고 있다. 늘 문화와 함께 일하던 정 대표는 ‘예술은 어떠한 구분도 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것이기에 좋은 작품을 만들어 공연장에 올리면 사람들이 향유하고 세상을 조금 더 좋게 바꿀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하지만 바람과 달리 공연장을 찾는 사람들은 비슷비슷한 모습이었다. 처음 생각과 다르게 공연장이라는 곳에서 시민들이 예술을 즐기는 것에는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고민에 빠졌다.

   
▲ (왼쪽부터) 채정은 기획팀장, 이유선 홍보팀장, 정석준 대표. /사진:이윤주 기자

“그 즈음 눈에 띤 것이 ‘팝업피아노(Pop-up Piano)’예요. 2011년에 뉴욕에서 진행된 팝업피아노 공연 영상을 보면서 ‘피아노가 거리에 나와 있다’는 것과 음악과 시각예술이 결합된 장면을 보며 ‘해볼만하겠다’란 생각이 들었죠.”

사실 뉴욕의 팝업피아노에 앞서 거리 피아노의 원조는 2008년 영국 설치미술가 루크 제럼(Luke Jerram)의 ‘스트리트 피아노(Street Piano)’였다. 자신이 다니던 빨래방에서 아무도 대화하지 않는 것을 본 제럼이 소통의 매개체로 피아노를 길거리로 가지고 나왔다. 이렇게 시작된 거리 피아노는 영국 50곳을 누비고, 뉴욕을 거쳐 달려라피아노로 왔다.

그렇게 2012년 탄생한 달려라피아노는 현재 국내 이곳저곳을 달리고 있으며, 캘리포니아·밀라노 등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왜 하필이면 피아노일까? 이에 대해 정 대표는 바로 모두가 생각하는 그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모두들 ‘왜?’라고 느끼기에 피아노를 가지고 나온 거예요. 성장에 따라 교체해줘야 하는 바이올린은 중고품이 많기도 하고, 본래 휴대가 가능한 악기라 실제 거리공연도 많아요.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의외성을 지니고 있진 않죠.”

축제가 되거나 사건이 되고 사람들에게 인식되려면 생각지 못한 것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거실 밖으로 나온 피아노’라는 것이다.

“무게가 200kg이 넘는데다가 워낙 고가이기 때문에 피아노는 야외에 오래 두면 안 되고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는 인식이 있어요. 이러한 피아노를 가지고 나온다는 의외성이 달려라피아노와 사람들이 함께 달릴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역설적인 매력 덕분에 프로젝트의 이름도 달려라피아노가 됐다. “사람들은 피아노가 무거워서 한 번 놓으면 어디에도 갈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피아노가 어디든 갈 수 있고 또 음악도 어디든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어요.”

재능기부로 꾸며지는 종합예술판

달리는피아노는 세상으로 나오기 전, 예쁜 옷으로 갈아입는다. 미술 작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피아노에 페인팅을 하는 것이다. 공모를 통해 참여하고픈 작가들을 찾기도 하고 직접 섭외에 나서 권기수, 권희수 등 중견작가와 개그맨 임혁필, 웹툰작가 김양수, 패션디자이너 윤춘호 등의 참여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정 대표는 “대부분의 작가들이 달려라피아노의 취지에 공감해 재능기부로 함께하고 있다. 3년 동안 인연을 맺었던 이들 가운데 작가진이 구성될 만큼 뜻을 같이 하는 작가들도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웹툰작가 김양수와는 특별한 협업을 진행하기도. 대부분의 작가들은 피아노에 직접 페인팅을 한다. 하지만 컴퓨터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김양수 작가의 경우 작품을 인쇄해 피아노에 래핑하는 새로운 시도를 진행했다.

페인팅 작품의 주제는 자유롭다. 다만 아동센터 등에 기증될 피아노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작품 위주로 재탄생한다. 얼마 전에는 환경을 주제로 밍크고래, 판다, 홍학 등 멸종 위기 동물들을 그려 넣기도 했다. 피아노 덮개를 열면 세이브(SAVE)라는 문구가 있어 길거리에 두면 그 자체로도 환경보호에 대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전시회가 되기도 한다.

   
▲ 다양한 작가들의 손을 거쳐 탄생한 작품들(위)과 거리 공연하는 방구석뮤지션 모습. /사진제공:달려라피아노

이런 식으로 음악과 미술이 만나지만, 공연장에서는 여러 장르의 음악가들과 퍼포먼스 아티스트들이 어우러지는 본격적인 무대가 꾸며지기도 한다.

공연에 참여하는 연주자들 역시 공모 중. 뜻이 있다면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다. 더불어 클래식 피아노의 박종화 서울대 교수, 재즈피아노의 김가온 교수, 클래식 인디밴드 이지라디오 등 단순히 피아노 연주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를 결합시키고 공연예술과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 경의선숲길, 신촌 연세로, 서울숲에서 열린 ‘2015 달려라피아노 페스티벌’ 역시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행사로 마련됐다. ‘일상에서 예술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축제’라는 주제로 순수창작음악인들이 방에서 박차고 나와 세상을 향해 노래할 수 있는 소통을 장을 마련하는 ‘방뮤즈’와 거실이나 게스트하우스의 거실에 연주자들을 초대해 작은 콘서트를 여는 ‘홈메이드콘서트’가 함께 했다.

일반인과 인디뮤지션의 공연 신청 및 클래식, 재즈, 판소리 등 장르를 초월한 음악가 거리연주, 피크닉콘서트, 서울숲북콘서트와 아트피아노 전시 및 체험 프로그램 등이 진행됐다. 또 이영경·이수지 작가가 참여한 북콘서트를 통해 동화를 판소리로 풀어내는 등 다양한 시도들도 이뤄졌다.

나와 너, 우리의 이야기

영화 속에나 등장하던 ‘피아노 배틀’도 시도해 봤다. 피아노는 아직까지 솔로 악기로 인식되고 있지만, ‘모두의 피아노, 함께하는 연주, 만인의 즐거움’을 꿈꾸는 달려라피아노는 여러 사람이 피아노를 함께 연주하는 상상을 실현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첫 해에는 8명의 아이들이 함께 피아노를 연주했고, 지난해에는 피아노 6대의 협주곡과 10대의 오케스트라 무대를 열기도 했다.

“달려라피아노는 공연장이 아닌 거리라는 환경에 맞춘 프로젝트입니다. 공연장은 무대와 객석이 구분된 연주회지만, 거리에서는 연주자와 관객이 소통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정해진 포맷 없이 즉석에서 신청곡도 받는 관객과 함께 해요.”

공공장소에 자리한 달려라피아노는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신촌 홍익문고 앞에 있는 공유피아노에서는 매 주말마다 버스킹 공연이 진행되고 있으며, 선유동공원의 피아노에는 매일 찾아와 30분씩 소품집을 연주하고 돌아가는 할머니가 있다. 한 기러기 아빠는 외로울 때마다 피아노를 치며 위안을 얻는다고 이야기하고, 피아노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은 ‘부적’이라며 길거리 피아노를 연주하고 돌아섰다.

“생각보다 피아노를 잘 치는 분들이 아주 많으세요. 지난달 경의선에서 진행된 페스티벌에는 한 아주머니가 ‘아들이 군대에 갔다. 오늘은 음악이 필요하다’고 말할 정도로 음악에 대한 감수성과 갈증을 많이 느끼고 계시기도 하고요. 이렇게 피아노가 있는 곳에 일상과 관련된 사소하고 잔잔한 ‘사람이야기’가 오고 갈 수 있는 것이죠.”

   
▲ 거리로 나온 피아노와 마주한 시민들. 사진제공: 달려라피아노

시민과 함께하는 ‘예술 생태계’ 꿈꿔

그랜드피아노 2대를 포함해 10대로 전국을 누비는 달리는피아노는 지금까지 약 100여대의 피아노를 기증받아 새롭게 숨결을 불어넣었다. 올해는 피아노 트레일러를 만들어 더욱 더 기동성을 높였다고. 이어 내년엔 피아노 연주자의 다양한 활동 무대를 만들어 주고자 한다.

정 대표는 “피아노를 기증받아 페인팅을 해 페스티벌을 여는 것은 달려라피아노가 해야 할 역할의 일부일 뿐”이라며 “피아노를 통해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아트플랫폼이 궁극적으로 가야할 길”이라고 말했다.

거리에 놓인 피아노로 매주 연주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이렇게 예술가와 시민이 함께 예술을 향유하면서 건강한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일회성이 아닌 일상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예술 생태계를 그리고 있다.

이와 함께 매해 3월 21일 바흐 탄생일에 맞춰 전 세계에서 진행되는 ‘바흐인더서브웨이(Bach in the Subways)’ 행사의 규모를 더욱 확장해 진행할 계획이다. 2010년 뉴욕에서 시작된 바흐인더서브웨이는 공공장소에서 바흐의 곡을 연주하는 행사로, 지난 3월에는 코엑스몰과 지하철역 등에서 39개 팀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정 대표는 “지금은 사람들에게 음악에 대한 즐거움을 선물하는 정도라면 앞으로는 환경과 평화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해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시도를 해 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히며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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