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프로그램이 건강을 해친다?
건강 프로그램이 건강을 해친다?
  • 유현재 (hyunjaeyu@gmail.com)
  • 승인 2014.05.21 11: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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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재의 Now 헬스컴] 건강프로그램 홍수, 비전문성·예능화 부작용 우려

[더피알=유현재] 최근 건강을 주제로 제작되는 TV프로그램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지상파와 케이블, 종편을 막론해 프로그램명만 대충 훑어봐도 <비타민> <닥터의 승부> <닥터 콘서트> <백세 건강시대> <생로병사의 비밀> <천기누설> <잘 먹고 잘사는 법> <먹거리 X파일> 등이 있으며, 그 외 프로그램 내용 일부에서 건강 관련 이슈를 다루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더 많아질 것이다. 건강에 관심을 갖고 일부러 보는 시청자들이 늘었으니 관련 프로그램도 대폭 증가한 측면이 크다.

사실 건강이라는 주제에서 어느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어리면 어린 대로, 또 나이가 많으면 많은 대로 건강에 대한 고민은 누구나 갖기 마련이다. 이 말은 곧 ‘건강’이라는 국민 모두가 자동으로 관여될 수 있는 강력한 주제라는 뜻이다.

특히 100세 시대의 현실화 및 대중화가 중요 화두가 되면서 건강을 적극적으로 지키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실제 경제력 있고 교육 수준도 높은,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경제적 핵심인 베이비부머 세대를 주요 타깃으로 하는 각종 TV 건강프로그램들도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 자료사진=jtbc 건강 프로그램 <닥터의 승부> 방송 화면 캡처.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전 관련이 없습니다.

TV 건강프로그램의 폭증에는 종편의 탄생도 중요한 변수다. 제작비가 상대적으로 풍족치 않은 종편들이 주로 일군의 게스트를 초대해 대담하는 형식의 스튜디오 프로그램들을 다수 제작해 방영하는데, 가장 많이 활용되는 대표적 주제들이 정치 혹은 건강 관련 이슈들인 것이다. 공중파의 추가 편성과 함께 종편의 선호로 이제 시청자들은 TV를 켜면 최소 한 종류의 건강프로그램에 노출되는 조건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수많은 건강 프로그램으로 인한 문제는 없는 것일까. 각 방송사들이 가정하는 것처럼, 건강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를 높여서 건강을 위한 노력을 자극하고, 결국엔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오롯이 기여한다는 이상적 결과만을 담보하는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된다.

쏟아지는 건강 프로그램, 비전문가 주장 난무

우선 각 프로그램 출연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건강과 관련해 올바른 정보를 나누고 토론한다고는 하지만 의사나 약사, 한의사, 보건학자, 식품영양사 등 국가가 인정할 수 있는 전문성을 보유한 사람들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자막으로 제시되는 직함으로는 결코 공인된 자격을 보유했다고 생각되지 않는 인물이 의사들과 갑론을박하는 모습이 익숙할 정도다.

비전문가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는 상당 부분 개인적 경험에 의거한다. 본인이나 지인의 경험을 일부 자료들과 함께 발언의 근거로 삼는 것이다. 비전문가들이 개인적 경험을 들려주는 상황에서는 눈물이나 웃음이 어우러질 가능성이 높고, 그런 식으로 흘러갈 경우 자칫 감정적 어필로 시청자들을 몰입시킬 여지가 다분해진다. 결국 시청자들은 논리적이고 과학적 잣대로서 올바른 정보만을 습득해야 하는 건강프로그램에서, 감정적인 상태로 정보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개인적 경험이 반드시 옳지 않다는 논리는 위험한 발상이지만, 동시에 비전문가들의 개인적 경험이 마치 일반화가 가능한 정보처럼 무작정 전달되는 것도 대단히 위험하다.

또 한 가지 이슈는 건강프로그램의 예능화이다. 일부 건강 관련 프로그램에는 의사들과 함께 연예인들이 주요 게스트로 등장한다.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고 시청률을 높이라는 미션 하에, 연예인들은 때론 의사가운까지 입고 끊임없이 재미 요소를 만들어낸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출연한 실제 의사들 일부도 거의 예능인처럼 활약한다.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연예인과 의사들의 대화 속에서 어디까지가 농담이고, 어디까지가 정확한 건강 정보인지 혼란스러워진다.

건강 프로그램이 예능화되는 현상은 출연하는 의사들이 복수의 유사 프로그램에 마치 연예인처럼 겹치기 출연하는 기현상까지 생산하고 있다. 일부 의사들은 의학과 건강이라는 전문영역을 제공하기 위함이 아닌, 마치 예능프로그램의 패널 가운데 한 명인 것 같은 착각이 들 때도 많다. 건강프로그램과 예능프로그램의 불명확한 경계, 규제가 논의돼야 할 시점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 자료사진=mbn 건강프로그램 <천기누설>(왼쪽), sbs 건강프로그램 <잘 먹고 잘 사는 법> 방송 장면.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전 관련이 없습니다.

세 번째로 지적돼야 할 사안은 게스트에 의해 무차별로 전달되는 각종 건강 관련 정보들의 진위여부다. 앞서 언급했듯, TV 건강프로그램에서 의사와 일반인, 그리고 준전문가로 포장된 사람들이 논쟁하는 것은 대단히 흔한 장면이다.

예를 들어 “항암치료 보다는 OOO를 활용한 치료가 훨씬 효과적이다”라는 주장을 펼치는 상황을 가정하자. 일선 의사와 소위 준전문가가 논쟁을 벌이는 장면에서 가끔은 준전문가가 제시하는 다양한 개인적 경험이 현란한 화술에 의해 더욱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경우가 있다. 이 같은 상황이 전개될 경우, “출연자가 제시하는 내용은 개인적 주장일 뿐이며, 방송사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는 안내이자 경고문(?)이 삽입된다. 현재 노출되는 내용이 검증되지 않은 것일 수 있다는 친절한 안내이긴 하지만, 시청자 입장에서는 “그러면 방송국이 확인을 하고 내보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아쉬움이 생기는 것도 자연스럽다.

더욱이 해당 자막이 오랜 시간 지속되지 않기 때문에 중간에 프로그램을 시청하게 될 경우 해당 내용을 가감 없이 받아들일 가능성도 크며, 발언하는 사람이 전문가인지에 대한 판단도 온전히 시청자들의 몫으로만 남겨지는 문제도 있다.

건강프로그램에도 ‘규제’가 필요한 시점

지상파에 비해 시청자수가 적고, 콘텐츠 수위도 상대적으로 유연할 수 있는 케이블이나 종편일 경우엔 괜찮지 않나 라는 일부 의견에 대해서는, 시청자가 과연 정보원의 차이를 인지하면서 건강정보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얼마나 높은지 묻고 싶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그저 ‘TV에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어느 정도는 신뢰감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서울 정도로 증가한 TV 건강프로그램들의 부작용을 최대한 방지하려면 어떤 방안이 제시될 수 있을까.

먼저 현재 각 프로그램 출연자들의 발언이 객관성을 잃었다고 판단될 경우, 제시되는 경고 내용을 확대해서 활용해야 할 것이다. 고지하는 횟수와 내용 등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미다. 가령 프로그램의 시작과 중간, 마지막 등 반드시 삽입해야 하는 순간을 규정화할 수도 있고, 최소한 몇 회 이상 시청자들의 오해를 예방하기 위한 문구를 보여줘야 한다는 원칙도 고려할 수 있겠다.

더불어 방송사 자체에서 건강 프로그램을 제작할 경우에는 더욱 철저하고 객관적인 검수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을 명문화 및 강화해야 한다. 건강 관련 정보는 궁극적으로 개인의 생명과도 직결될 수 있는 중요 사항이라는 사명감을 갖고 프로그램을 제작해달라는 요청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관련 기관은 건강프로그램 콘텐츠에 대한 감시 및 제재 등에 대해 특별 검토를 진행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상기의 모든 처치들보다 선행돼야 할 것은 필자를 포함한 시청자들의 현명한 판단이다. ‘헬스 리터러시(Health Literacy)’는 건강 관련 정보를 얼마나 이해하는가에 대한 영역이지만, 그와 동시에 충분히 제대로 알아서 개인의 생활 속에 올바르게 실천하는가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헬스커뮤니케이션의 중요 분야이다. 건강과 관련된 정보는 예능을 시청하는 가벼운 마음을 버리고, 때로는 대단히 이성적이고 냉철한 판단을 갖는 담대함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유현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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