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묵은 ‘퀸 필름’ 덕분에…MBC 오랜만에 웃었다
33년 묵은 ‘퀸 필름’ 덕분에…MBC 오랜만에 웃었다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8.12.0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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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토크] 에버그린 콘텐츠 위력 입증한 '라이브 에이드‘ 재방…온라인 화제성 타고 ’락덕후 PD‘ 가짜뉴스까지
MBC가 지난 2일 밤 방송한 '지상최대의 콘서트, 라이브 에이드'. MBC
MBC가 지난 2일 밤 방송한 '지상최대의 콘서트, 라이브 에이드'. MBC

[더피알=문용필 기자] 1985년 7월 13일. 영국 대중음악의 ‘성지’인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아프리카 기아 난민을 돕기 위한 자선콘서트 ‘라이브 에이드’(Live Aid)가 펼쳐진 날이었다.

스팅과 필 콜린스, 데이빗 보위, 엘튼 존, 조지 마이클, U2, 그리고 폴 매카트니에 이르기까지 브리티시‧아이리시 팝을 대표하는 전설들이 무대 위를 수놓았다. 비슷한 시각, 미국 필라델피아의 존 F.케네디 스타디움에서도 같은 이름의 공연이 열렸다. 레드 재플린, 밥 딜런, 듀란듀란 등 웸블리 못지않은 화려한 라인업이었다.

수많은 별들 속에서도 단연 발군의 기량을 뽐낸 것은 웸블리 무대에 오른 ‘퀸’(Queen)이었다.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부터 ‘위 아 더 챔피언스’(We Are The Champions)까지 20여분의 러닝타임 동안 프레디 머큐리는 무대를 장악했고 브라이언 메이의 기타는 불을 뿜었다.

이날 공연은 인공위성을 타고 100여개 국가 시청자들과 만났다. 국내에서는 MBC가 ‘세계는 한 가족’이라는 제목으로 녹화 방송했다. 음악전문채널은커녕 지상파 방송도 달랑 두 개인데다가 정부의 서슬 퍼런 심의가 엄연히 존재했던 당시로서는 꽤나 파격적인 편성이었다.

그런데 MBC가 지난 2일 ‘라이브 에이드’를 재방송했다. 방송시간은 월요일 출근을 위해 잠자리에 들어야 할 일요일 밤 11시 55분. 누가 봐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흥행으로 불고 있는 ‘퀸 열풍’에 편승한 편성이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심야시간대 전파를 탔음에도 5.4%(수도권 기준, 닐슨코리아)의 꽤 높은 시청률을 찍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튿날 오전까지 각 매체의 기사가 쏟아진 것은 물론, 포털사이트 실검순위에 오를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미처 본방사수를 하지 못한 네티즌들의 재방 요청도 빗발쳤다.

짐작컨대 MBC도 이 정도의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곤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먼지 쌓인 수십 년 전 아카이브도 적절한 시점과 결합하면 얼마든지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에버그린 콘텐츠’의 위력이 증명된 케이스였다.

영화를 통해 뒤늦게 퀸에 ‘입덕’한 밀레니얼들은 퀸의 생생한 라이브를 지상파 TV를 통해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신선함을 느꼈을 터다. 영상 자체가 30년이 넘은 만큼 최근 1020세대에서 유행 중인 ‘뉴트로’ 감성에도 부합한다. 40대 이상의 올드팝팬들에게도 과거의 향수를 되새겨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됐다. ▷관련기사: “촌스럽다고요? 새로운데요?”

여기에 과도한 촌티를 느낄 수 있는 자막을 없애고 화질을 보정하는 등 30년 세월의 괴리감을 최소화한 것도 신의 한수였다. 최근 온라인 플랫폼과 케이블TV와의 콘텐츠 경쟁에서 조금씩 밀리고 있지만 이들과는 비할 수 없는 아카이브를 구축한 지상파 입장에서는 곱씹어볼만한 대목이다.

방송 외적인 화제 포인트도 있었다. ‘라이브 에이드’에 이어 다음주에는 MBC 스페셜 ‘내 심장을 할퀸(Queen)’이 방송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온라인 상에서는 MBC의 ‘락(Rock)덕후 PD’가 조명을 받았다. 주인공은 박현호 콘텐츠사업국장이다.

박 국장은 ‘생방송 음악캠프’를 연출하던 지난 2005년 인디펑크밴드 럭스를 과감하게 지상파에 데뷔시킨 장본인이다. 다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함께 무대에 오른 카우치가 성기 노출 사건을 일으킨 여파로 곤혹을 치뤘다. 하지만 박 국장은 이듬해에 메탈리카 내한공연을 방송해 ‘락 매니아’들의 찬사를 받았다. 이같은 과거 때문에 MBC의 잇따른 퀸 관련 프로그램에 ‘락덕후 PD'가 관여한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다.

다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박 국장이 속한 콘텐츠사업국은 비(非)제작 부서이기 때문에 이번 프로그램과는 무관하다는 것이 MBC 관계자의 설명이다. 비록 허위정보이긴 하지만 자사 PD의 과거가 네티즌 사이에서 긍정적으로 회자된다는 점에서 MBC 입장에서는 ‘유쾌한 가짜뉴스’인 셈이다. 경영악화로 인해 한동안 웃을 일이 없었던 MBC에게 ‘퀸’은 이래저래 고마운 존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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