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대나무숲’이 병들고 있다
‘디지털 대나무숲’이 병들고 있다
  • 박형재 기자 (news34567@the-pr.co.kr)
  • 승인 2019.04.01 11: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익명 앱 ‘블라인드’, 직장인 신문고→루머 발화점
명예훼손성 글‧인신공격 발언 빈번히 게재…국내법 적용 안 받아
기업들 ‘앱 단속’ 나서, 내부 익게 통해 양성화하기도

[더피알=박형재 기자] 직장인들의 해우소 역할을 하는 익명 SNS앱 블라인드가 동료 뒷담화와 사내정치에 악용되고 있다. 업무상 하소연이나 정보 공유, 사내 부조리까지 자유롭게 털어놓는 대나무숲 뒤에서 허위정보를 유통하고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루머확산 방지를 위해 기업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직장인 이철민(가명)씨는 얼마 전 황당한 일을 겪었다. 블라인드 앱 OO기업라운지에서 ‘OO팀 ㅇㅊㅁ 인사 안 하고 인성 거지’라는 글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평소 일을 못하고 직장상사와 갈등이 있으며 협력업체에 갑질한다는 내용까지 적혀 있었다. 비록 초성을 사용했으나 영업팀 이철민은 한 명이라 누군지 충분히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블라인드 측에 항의하고 허위 글을 내렸으나 이미 주변에서 싸가지 없는 사람으로 찍힌 뒤였다”며 “정신적 충격이 심각해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 홍현아(가명)씨 역시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블라인드에 ‘회사 내 석·박사 출신을 우대해야 한다’는 글이 올라와 논쟁이 붙었는데 게시글 작성자로 홍씨가 지목된 것. 여러 댓글 중에는 ‘평소 능력도 없으면서 아부만 하고 다닌다’와 같은 인신공격성 발언도 포함됐다. 홍씨는 “내가 쓴 게 아니라 해명하고 2차 유포하면 강경 조치하겠다고 대응했지만 그래도 너무 불쾌했다”고 전했다.

현재 블라인드에는 국내 1700여개 회사의 그룹사‧직군 라운지가 운영되고 있다. 블라인드는 직원이 소속된 회사의 이메일 인증을 거쳐 폐쇄형으로 운영된다. 직원수 300명 이상의 큰 회사면 단일 게시판이 개설되고 300명 미만일 경우 업종별 라운지 게시판이 열린다.

초창기 블라인드는 회사의 불합리한 사항을 지적하는 신문고 역할이란 긍정적 측면이 부각됐다.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과 두산의 20대 희망퇴직, 성심병원 갑질 사건 등도 이곳에서 처음 이슈화됐다. 그러나 요즘은 개인 사생활 침해나 회사 내부정보 유출 등 부작용이 심각하다.

<더피알>에 피해 사실을 제보한 홍씨는 “블라인드 측에서 문제 글을 내렸으나 이미 단톡방으로 공유돼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까’라는 식의 수근거림을 감수해야 했다”며 “허위사실이 수시로 유포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블라인드 기업 라운지는 사각지대인 것 같다”고 비판했다.

블라인드에 올라오는 글들은 다양하다. 업계 동향은 물론 이직, 연봉 및 처우, 회사 업무 관련 문의, 증권가 지라시까지 빠르게 공유된다. 재테크, 소개팅, 결혼 같은 개인사에 대한 의견교환도 많다.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 공통 관심사가 존재하고 특정 사안에 대한 여론을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그러나 앞선 사례처럼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이나 회사 내 스캔들 등 뒷담화 창구로 적잖이 이용된다. 특히 인사철에는 ‘모 과장은 능력이 없다’는 식의 비방글이 급격히 늘며 사내정치의 장이 되기도 한다. 대기업에 재직 중인 A씨는 “그룹 계열사마다 직원 연봉이나 위상이 다른데 그런 부분에서 불만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고 개인 비판이나 소모적 논쟁도 자주 벌어진다”고 전했다.

블라인드를 통해 회사 내 특정 세력이 여론을 움직일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