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김경탁 기자
“한국은 우리 회사의 글로벌 톱 마켓중 하나입니다.” 젊은층을 겨냥한 감각적 디자인과 개인별 커스터마이징, 다양한 영역과의 콜라보레이션, 가치소비 트렌드에 부응한 ESG 선언 그리고 가격을 낮춰 소비자 접근성을 높이는 것까지.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국적 회사들이 한국에서 격렬한 마케팅 전쟁을 벌이고 있다.
경쟁은 나날이 더 치열해지고 새로운 플레이어들의 시장 진입도 선언되거나 예고돼 시장을 더욱 달굴 전망이다. 흥미진진하게 지켜볼만한 상황이다. 품목이 담배라는 것만 빼고 보면.

2월 둘째주와 셋째주, 중국을 제외한 세계 담배시장에서 최대 업체인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널(이하 PMI)과 2위인 브리티시 아메리칸 토바코(이하 BAT)가 잇달아 글로벌 본사 경영진이 참석한 가운데 궐련형 전자담배 신제품 공개 미디어데이(기자간담회) 행사를 서울에서 열었다.
각각 함파트너스와 컬쳐크리에이티브 나래를 홍보대행사로 두고 진행된 PMI와 BAT 두 회사의 미디어데이는 행사 구성에서 다소 비슷한 점도 있었지만 여러 측면에서 각자 추구하는 마케팅 포인트와 브랜드 이미지가 선명하게 다르다는 점을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두 회사 경영진들은 “가장 나은 것은 금연”이라면서도, “태우지 않고 가열하는 방식의 궐련형 전자담배가 흡연자들에게 흡연의 위해성을 줄여줄 수 있는 ‘더 나은 대안’이라는 것을 소비자는 물론 규제당국에서도 인정해야한다”는 주장에 입을 모았다.

‘DESIGNING A SMOKE-FREE FUTURE’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PMI는 2022년 3분기 기준 국내 담배제품 출하량 중 테리아와 히츠 같은 비연소 제품의 비중이 이미 30%를 넘었고, 2025년까지 글로벌 기준 비연소 제품 순매출 비중을 50%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A Better Tomorrow’를 그룹의 비전으로 내세우고 있는 BAT그룹은 2022년 기준 세계 2250만명의 비연소제품 소비자를 확보했으며, 2030년까지 비연소제품 소비자 5천만명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두 회사가 각각 자사 신제품 아이코스 일루마 원과 글로 하이퍼X2에 대해 특장점이라고 소개하는 것들을 들으면, KT&G의 릴까지 포함한 3개 브랜드가 서로의 장점을 닮아가는 측면이 많아지고 있다는 인상이다.
두 회사의 미디어데이 행사는 여러 언론매체에 보도됐고 각 회사별 신제품의 장점과 특징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소개됐다.
그런데, 쏟아지는 기사들을 보면서 문득 성인인증 없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뉴스 기사에서 이렇게 대놓고 ‘담배가 좋다’는 이야기를 해도 되나 의문이 생겼다.

전자담배 판매량 폭증하는 한국 시장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는 1월 31일 보도자료에서 2022년 담배 판매량이 전년 대비 1.1% 증가한 36.3억 갑(2021년 35.9억 갑)이었다며, 궐련 담배의 판매량이 1.8% 감소했지만 궐련형 전자담배의 판매량이 21.3% 늘어나 전체 판매량 증가를 견인했다고 밝혔다.
특정 제품군에서 1년 사이에 20% 이상의 성장률을 보이는 것은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보니 한국 전자담배 시장에 대한 글로벌 브랜드들의 관심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PMI·BAT와 함께 중국 제외 글로벌 담배시장을 3분하는 재팬타바코그룹(해외법인 JTI)은 2021년 한국에서 완전 철수했던 전자담배 제품군의 재진출을 가늠하고 있고, 액상형 전자담배 부문의 강자로 알려진 ‘엘프바’가 2월 3일 국내 독점 총판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기재부는 ‘2022년 담배 시장 동향’ 보도자료에서 액상형 전자담배 및 연초 고형물 전자담배가 2021년부터 판매 중단됐다며 아예 통계도 넣지 않았는데, 액상형 브랜드가 새로 진출하는 것은 어떻게 된 일일까.
담배사업법은 “연초 잎을 원료의 전부 또는 일부로 해서 피우거나, 빨거나, 증기로 흡입하거나, 씹거나, 냄새 맡기에 적합한 상태로 제조한 것”을 담배로 정의하고, 기재부도 2016년 9월 민원질의회신에서 “연초의 잎에서 추출한 니코틴만 담배사업법에 따른 담배에 해당하고 나머지는 담배에서 빠진다”고 답변한 바 있다.
이후 규제 사각지대에 확고히 자리잡게 된 ‘연초 줄기·뿌리에서 추출한 니코틴 용액’ 수입량이 매년 급증 추세를 이어왔고, 이 ‘규제 예외 니코틴 용액’의 니코틴 농도가 너무 높아서 연초 잎 추출 니코틴을 넣은 것으로 의심된다는 주장도 계속 나왔다.

유해성 저감, 성급한 결론?
PMI의 국내법인인 한국필립모리스 백영재 대표는 “아이코스 일루마 시리즈는 일반 담배 대비 유해물질 배출이 평균 약 95% 감소된 제품”이라며 “기존 아이코스 대비 향상된 고객 경험으로 한국의 ‘담배 연기 없는 미래’를 더욱 가속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BAT의 국내법인 BAT로스만스의 김은지 대표도 “BAT그룹이 1년간의 임상 연구를 통해 지난해 10월 발표한 연구결과, 연초 담배에서 글로(glo)로 완전히 전환한 성인 흡연자의 경우 연초 지속 흡연자에 비해 잠재적 위해 지표 상당수에서 지속적 개선 효과를 보였다”고 전했다.
담뱃불 표면에서만 200~300℃이고 내부에서 최고 850℃까지 올라가는 연초담배의 연소작용으로 분해돼 나오는 화학물질의 양이 최고온도 250~350℃인 궐련형 전자담배에 비해 훨씬 많을 것이라는 점은 굳이 실험을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예상가능하다.
다만, 더 적은 화학물질이 더 안전하고 덜 해로움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2010년 미국에서 발효된 가족흡연방지법과 2015년 한국에서 시행된 개정 담배사업법이 ‘라이트’나 ‘마일드’ 등 순하다는 뜻의 표현을 금지한 이유 중에는 더 적은 화학물질로 인해 담배에 더 쉽게 접근하고 더 오래 노출을 이어지게 할 수 있다는 경각심도 있었다.
PMI와 BAT 두 회사 경영진들은 궐련형 전자담배의 연초대비 위해 저감 효과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규제당국이 인정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업계 공동의 대응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는 뜻을 밝히면서, 궐련형 전자담배가 연초에 대한 규제에서 예외적용을 받는 외국 사례를 제시하기도 했다.

외국과 비교하면…한국은 가향 담배 규제 프리존
뉴질랜드는 올해부터 2009년 이후 태어나는 세대는 담배를 아예 구입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초강력 금연법(이들이 나이를 더 먹었다고 담배 구매가 가능해지는 게 아님)을 시행했는데, 해당 규제법에서 액상형 및 궐련형 전자담배 등 비연소 제품은 예외로 두어 구매를 허용했다.
또한 PMI에 따르면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미국 내에서 아이코스(IQOS)와 전용 담배 제품을 Modified Risk Tobacco Product(MRTP)로 마케팅 하는 것을 인가했다고 한다. “유해물질 노출 감소” 주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FDA는 2009년 멘톨을 제외한 과일향, 캔디향 가향 담배 판매를 금지한데 이어 2022년 4월에는 중독성이 강한 멘톨 담배를 포함한 모든 가향 담배 판매를 2024년부터 완전 중단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에서 가향담배에 대한 규제가 전혀 없는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3월 8일 ‘가향담배’ 글로벌 규제대상인데…손 놓은 정부는 세금만 관심?으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