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니스프리, '제주' 벗어나 'THE NEW ISLE'로 확장
가치관 큰 변화 없으나 강조점 옮겨가며 낯설어져
아모레퍼시픽 관계자, "지금까지와 다른 감성 필요"
더피알타임스=최소원 기자

최근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와 ‘이니스프리’가 과감한 리브랜딩으로 눈길을 끌었다. 두 브랜드 모두 브랜드 헤리티지를 강조하며 브랜드 철학과 가치를 재정립했다.
설화수는 대표 상품인 윤조에센스의 6세대 버전을 공개하면서 패키지 변화를 알리고 다인종 모델이 등장하는 포스터를 선보였다. 이니스프리도 광고 모델과 패키지, 브랜드 아이덴티티(BI/Brand Identity) 등을 변경하고 새로운 브랜드 세계관을 제시했다.
네티즌 반응은 둘로 나뉘었다. 깔끔하고 세련돼졌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한국 제품인데 영어로만 쓰여있고, 브랜드 고유의 느낌이 사라져 아쉽다는 평이다. 두 브랜드가 ‘한방’, ‘제주’ 등 한국적 가치에 무게를 두고 브랜드를 전개해온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두 브랜드는 왜 한국적 색채를 덜어냈을까? 그로 인해 강화되는 것은 무엇이며,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설화수, 헤리티지 계승과 현대적 재해석
설화수는 1930년대부터 이어져 온 브랜드 고유의 철학과 헤리티지를 계승하고 새롭게 정립한 브랜드 정체성을 알리기 위해 리브랜딩 캠페인을 펼쳤다. ‘90여 년 세월 동안 축적된 설화수의 뷰티 유산과 혁신적 예술가 정신’이라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설화수, 예술과 헤리티지 정신으로 아름다움의 세계를 창조한다’는 소명을 선포하고자 했다.

설화수는 1932년을 브랜드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그 시절 개성에서 서성환 선대 회장의 어머니 윤독정 여사가 직접 만들어 팔았던 동백기름 한 방울이 아모레퍼시픽으로, 또 설화수로 연결됐다는 해석이다.
어머니를 도우며 자연의 가치를 배우고 원료 보는 눈을 기른 서성환 회장은 1966년 최초의 한방 화방품 ‘ABC 인삼크림’을 만들었다. 이후 1987년 인삼 기술력으로 만든 화장품에 지압법 등 리추얼 요소를 도입해 ‘피부에 아름다운 눈꽃을 피운다’라는 의미의 브랜드 ‘설화’를 탄생시켰고, 1997년 ‘빼어날 수(秀)’ 자를 더해 이름을 완성했다.
지난 9월 1일 설화수는 글로벌 2030 타깃 리브랜딩 캠페인 ‘설화, 다시 피어나다 #SulwhasooRebloom(이하 ‘설화수 리블룸’)’을 시작했다. 브랜드의 새로운 얼굴을 알리고 두 편의 브랜드 필름을 공개했으며, 스테디셀러 제품인 윤조에센스의 백자에디션을 선보였다.
브랜드 역사를 담은 매니페스토 필름 ‘FROM 1932 TO YOU’와 글로벌 앰버서더이자 브랜드 스토리텔러인 블랙핑크 로제가 의인화된 설화수로 표현된 ‘눈 속에서 피어난 꽃, 설화’는 상이한 표현방식으로 브랜드의 여정을 보여준다. 또한,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져 온 설화수의 역사를 증명하며 또다시 새로운 세대로 전해질 것을 암시한다.

10월 20일부터 한 달간은 북촌 설화수의 집에서 전시 ‘흙·눈·꽃-설화, 다시 피어나다’를 운영했다. 글로벌 캠페인 메시지를 소비자가 직접 보고, 듣고, 느끼며 또 다른 영감을 얻는 것에 초점 맞췄으며, 예술가로서 설화수가 바라보는 흙, 눈, 꽃의 의미를 국내외 아티스트 16인과의 협업을 통해 표현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한방 이미지 대신 설화수가 지닌 예술과 아름다움에 대한 철학을 강조했다. 브랜드를 쇄신하려는 설화수의 전략은 3월 1일 스테디셀러 윤조에센스의 6세대 버전 공개와 함께 한 번 더 반향을 일으켰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패키지 변화다. 1987년부터 사용해온 한자 서예 로고(낙관)는 옆면에 작게 새기고, 전면 하단부에 오렌지빛 아리따 체로 ‘Sulwhasoo’를 크게 써넣었다. 용기는 유리 중량을 줄이고 재활용 플라스틱 캡을 사용해 지속가능한 미래와 백자의 담백한 아름다움을 담았다. 백자에디션과 유사한 느낌이지만 오렌지 색이 생기를 더한다.
광고는 전통성과 기능을 강조하는 대신 전통과 현대, 언어와 공간의 경계를 초월한다는 설화수의 비전을 모던하게 연출했다. 흰색과 오렌지색으로 채워진 직관적인 영상과 감각적인 BGM, 다인종 모델의 등장까지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지난 3월 13일에는 세계적인 배우 ‘틸다 스윈튼(Tilda Swinton)’을 글로벌 앰버서더로 선정하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파트너십을 체결하기도 했다. 국가를 초월한 인지도와 선구적 예술 정신을 지닌 모델을 내세우고 예술에 관심이 많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주요 커뮤니티와 협력하며 브랜드 타깃을 넓혀나갈 예정이다.
설화수의 리브랜딩은 젊은 층으로 타깃을 넓히고 동시에 글로벌 시장에서 인지도를 높이려는 전략이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설화수는 전 세계 소비자를 대상으로 브랜드 선망성을 높이고, 브랜드 성장에 따라 주요 고객 타깃을 넓히고자 리브랜딩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이니스프리, 자연주의에 ‘도전’ ‘개척 정신’을 더하다
이니스프리는 지난 3월, 2018년 리브랜딩 이후 5년 만에 큰 변화를 맞았다. 지금까지 브랜드가 쌓아온 철학 및 가치관과 방향은 비슷하지만, 이를 풀어내는 방식이 파격적으로 바뀌었다.
2000년 국내 최초 자연주의 브랜드로 시작해 ‘청정자연’을 내세우던 이니스프리는 2010년 ‘Natural Benefits from JEJU’라는 슬로건과 함께 ‘청정 제주’ 콘셉트를 내세웠다. 2023년, 약 13년 만에 재정립한 콘셉트는 ‘고효능 자연주의 브랜드’다. 슬로건 ‘Effective, Nature-Powered Skincare Discovered from the Island’가 이를 뒷받침한다.

기존 자연 중심 이미지에 도전, 개척 등을 더한 브랜드 철학을 견고히 하는 것이 이번 리브랜딩의 목적이다. 로고와 슬로건, 브랜드 고유 색상, 세계관까지 브랜드 디자인의 전면적인 변화를 꾀했다.
로고 변화는 브랜드 정체성의 변화폭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이전 로고들은 소문자를 사용하고 녹색의 자연친화적 이미지를 강조해왔면, 새 로고는 산세리프체의 현대적인 그래피티 스타일로 에너지 넘치고 자신감 있는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대·소문자를 섞어 사용해 다양한 아름다움을 존중한다는 가치도 담았다.
색상은 ‘액티브 그린(Active Green)’을 사용했다. 제주 비자림에서 영감 받아 만든 짙은 녹색의 이전 컬러와 비교해 채도가 높아졌다. 이니스프리 측은 액티브 그린을 통해 자연의 에너지와 액티브한 성분을 강조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리브랜딩에서 이니스프리는 오랜 기간 강조해왔던 ‘제주’를 삭제했다. 고유 색상 외에도 세계관과 이를 활용한 광고 영상에서 차이가 두드러진다.
이전까지 이니스프리는 제주에서 발견한 그린티(녹차), 한란, 화산송이 등을 원료로 화장품을 만들고, 광고에 이를 강조하거나 제주를 떠올리게 하는 배경으로 ‘자연주의’와 ‘제주’ 이미지를 강화해왔다.
2월 28일 이니스프리가 공개한 새 광고 캠페인 ‘THE NEW ISLE’에는 제주도 대신 미지의 섬이 등장한다. 영상에 등장하는 4명의 인물은 섬 곳곳을 다니며 무언가를 얻는데, 이는 이니스프리 뷰티 제품의 포뮬러로 해석할 수 있다.
이니스프리가 만드는 화장품의 원료는 아직 이전의 그것과 다르지 않지만, 세계관을 제주 너머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는 무한한 자연의 에너지를 품은 섬’으로 확장하면서 새로운 원료의 활용 가능성을 넓혔다.

이니스프리는 제주 이미지를 벗되 자연주의를 추구하는 브랜드 철학은 유지한다. 그렇기에 이번 리브랜딩을 ‘한 단계 더 높이 도약하는 자연주의 브랜드로의 변신’이라고 말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액티브’, ‘도전’ 등의 새로운 가치다.
이니스프리 측은 THE NEW ISLE에 ‘자연을 자유롭게 누리며 모두가 온전해지는 섬’의 의미를, 새 브랜드 슬로건에 ‘섬의 무한한 자연과 에너지를 끈질기게 탐구하며 건강한 아름다움을 개척하는 이니스프리의 도전 정신’을 담았다고 전했다. 또 활기차고 에너지 넘치는 이미지의 세븐틴 민규를 글로벌 브랜드 모델로 선정하면서 가시적인 변화를 만들어냈다.
로고 및 브랜드 캠페인 영상 공개 직후 대중은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변화에 누군가는 “세련됐다” 말하고, 다른 누군가는 “이니스프리의 색깔을 잃었다”며 비판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이러한 반응에 대해 “리브랜딩 취지 자체가 한정돼 있던 소비층을 넓히고 해외로도 시장을 넓히는 것이라 현지 마케팅에 어울리는 전략을 진행 중”이라며 “브랜드를 향한 관심으로 향후 참고할 소중한 의견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설화수와 이니스프리,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두 브랜드가 이전부터 고수해 오던 브랜드 철학을 전면 교체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강조점이 옮겨가고, 이를 시각화해서 보여주는 과정에서 변화가 크게 느껴졌다. 같은 이유로 리브랜딩은 기존 브랜드 팬에게 실망을 안기거나 대중적으로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하기 십상이다.
두 브랜드는 지금까지 쌓아온 브랜드 헤리티지를 계승하고 있다. 설화수의 ‘설화수 리블룸’은 1930년대부터 이어진 브랜드의 역사를 되짚고, 이를 현대적으로 풀어내며 새로운 타깃에게 어필하고자 했다. 이니스프리는 브랜드의 핵심 가치인 ‘자연주의’를 한 단계 높은 단계로 풀어낼 것을 목표했다.
리브랜딩의 주요 목적 중 하나가 글로벌로 시장을 넓히고 핵심 타겟의 나이를 낮추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까지와 다른 감성이 필요했다. 더 모던하고 현대적인 이미지, 대중적이고 확장 가능한 콘셉트를 추구하며 지금과 같은 캠페인 방향이 도출됐다.

두 브랜드는 특히 북미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북미 및 유럽에서의 인지도를 제고해 실적을 개선한다는 전략이다. 이 시장에서 중요하게 평가되는 것이 브랜드 고유의 철학과 가치 즉, ‘브랜드’다.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 이니스프리, ‘라네즈’가 지난해 유의미한 성장을 거두며 이들 브랜드를 중점으로 브랜딩 수정에 나선 이유다.
설화수는 북미의 ‘력셔리 스킨케어’ 시장을, 이니스프리는 ‘클린 뷰티’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경쟁력을 높이고자 설화수는 브랜드의 오랜 역사와 예술로, 이니스프리는 건강한 아름다움과 도전이라는 가치로 중심을 옮겼다.
이에 따라 이전에 강조되던 ‘한방’과 ‘청정 제주’라는 이미지는 상대적으로 약화됐다. 그러나 여전히 설화수는 한방을 연구해 화장품을 만들고, 이니스프리는 제주 및 자연에서 추출한 원료로 건강한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