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피알=한민철 기자 ㅣ “기업의 경쟁력은 무엇보다 사람에 달려있다.”
2004년 6월 18일,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에서 열린 ‘현대·기아 차세대 자동차 연구관’의 준공식에서 정몽구 명예회장이 강조한 말이다. 사람이 있어 기술이 있고, 제품도 만들어지며, 자본도 쌓이고, 회사도 발전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 중심 경영’이 언뜻 들으면 너무 당연하고, 어떤 경영인은 “차고 넘치는 것이 직원”이라며 이를 가볍게 치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직원 하나를 유능하게 키우고 또 다른 유능한 직원을 만들며, 이들을 회사에 계속 붙잡아두는 게 경영에 있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리고 그 유능한 직원이 모여 황금알을 낳는다는 사실을 정몽구 회장은 절실히 깨닫고 있었다.
이런 정몽구 회장의 경영 철학이 정의선 회장에 이어졌고, 오늘날 현대·기아차를 세계적인 자동차 브랜드로 성장시킨 원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현대자동차에서 출간한 「왜 그렇게 일에 진심이야」라는 책을 읽고, ‘현대차의 사람 중심 경영의 결실을 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결실로 황금알을 낳는 유능한 직원들이 현대차에 모였고, 오늘날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로 회사를 성장시킨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다.
끊임없는 공부와 개선점 파악, 최고의 전기차 생산의 밑거름
「왜 그렇게 일에 진심이야」는 현대차 직원 43명의 20가지 일하는 방식을 인터뷰 형식으로 풀어쓴 책이다.
사실 세상에서 가장 여과해 들어야만 하는 게, 남자들이 군대에서 겪은 영웅담과 정치인들이 선거철마다 떠들어대는 공약 그리고 직장 선배들의 ‘라떼는’ 식의 과거 일해온 이야기라고 하지 않는가.
이 책도 엄밀히 말해 현대차 직원들의 라떼는 스토리의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몇 페이지만 집중해 읽다가 보면, 여과할 게 단 한 가지도 없는 주옥같은 경험담과 가치관 등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제는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제네시스’를 만들어낸 연구원들과 자동차 생산의 최전선에 서 있는 생산라인 담당자들, 현대차의 브랜드를 가장 파급력 있게 PR하는 브랜드전략팀 등 짤막한 인터뷰에서 그들의 고민과 성공 그리고 거침없는 도전 정신이 가슴 깊숙한 곳까지 다가왔다.
특히 가장 집중하고 반복해 읽은 부분은 ‘아이오닉 5 N’를 만들어 낸 고성능차 설계·시험팀 파트원 4인의 인터뷰였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필자가 처음으로 운전해본 전기차는 현대 ‘코나 EV’였다.
소음도 없이 가볍게 나아가고 생각보다 연비도 괜찮다는 전기차의 첫인상도 잠시, 내리막길에서 속도를 줄이기 위해 브레이크 페달을 살짝 밟았더니 급제동하는 듯한 느낌에 놀라 다시 가속 페달을 밟아 선행 차량과 접촉사고를 일으킬 뻔했다.
내리막길뿐 아니라 평지에서도 가속 뒤 차를 서서히 멈춰야 할 때 마찬가지의 불편함이 느껴졌고, 긴 충전 시간과 만에 하나 사고가 난다면 감당해야 하는 상상 이상의 수리 비용에 “전기차는 시기상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은 현대차의 장기적 목표로, 그런 현대차에서 전기차를 만드는 전문가들은 필자 등 다수가 느끼는 전기차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으로 바꿔나가기 위해 어떻게 노력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이 책에 등장한 고성능차 설계·시험팀 파트원들은 직접 아이오닉 5를 서킷에서 타본 뒤 단점을 상세히 파악했고, 1년간의 검토 끝에 겨우 개발에 들어갔다. 장고 끝에 시작한 아이오닉 5 N 개발 과정은 험난했다.
아직 내연기관에 비해 전기차는 초창기라고 할 수 있는 만큼 프로젝트 시작 전부터 매주 전기차에 대해 스터디하고, 다음 차종 성능 개선과 기능 부여를 위한 선행 준비까지 해야만 했다. 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향상은 기본이고, 가혹한 컨디션의 서킷에서 테스트를 반복해 진행하면서 얻게 되는 ‘극한의 환경에서 발견하는 개선점’에 주목했다.
특히 전기차 마니아층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기능을 구현하기 위한 고민과 시도가 돋보였다.
그 결과 아이오닉 5 N이 포르쉐의 ‘타이칸’보다 향상된 기능이 생겼고, e-shift와 사운드 및 회생 제동 기능의 경우 “세계 최고의 개발을 했다”라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이들 4인은 인터뷰 중 명언을 남겼다. “성능을 위해서라면 ‘적당히’라는 타협은 없다”는 것이다.
몰입과 협업 그리고 도전
이 책에서 다음으로 주목된 부분은 비즈니스 이노베이션팀 소속 서기홍 책임매니저의 인터뷰였다. 최근 소비자들이 현대차에 주목하는 이슈 중 하나가 바로 ‘중고차 시장 진출’이다. 그동안 중고차가 일부 허위 매물 업자들로 인해 불신이 있었고, 대기업인 현대차의 중고차 시장 진출 소식에 절대 다수의 소비자가 환영했다.
하지만 현대차의 중고차 사업은 지난 1993년부터 무려 29년간 여러 차례 시도와 좌절을 반복했다.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제한하는 법률과 신차 판매에 주력하는 조직의 특성상 서기홍 매니저는 중고차 사업에 대해 “어차피 안 된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책에서 중고차 사업을 제대로 하기 위해 “나 자신이 정말 철저한 전문가가 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공부했다”고 말했다. 과거 중고차 관련 보고 자료를 자세히 살펴봤고, 중고차 판매가 늘어나면 신차 판매도 늘어난다는 점 그리고 중고차를 신차만큼 수출해 외화를 벌어들이는 해외 사례 등을 분석·보고해 내부에 중고차 사업 재개를 위한 공감을 이끌었다.
다음으로 중고차 업계 현장에 나가 소비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 ‘3불(불안·불신·불편)’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투명·신뢰·편리로 바꾸는 목표를 세웠다.
그동안 일각에서 현대차의 중고차 시장 진출에 대해 자본력으로 중소 업자를 몰아낸다는 볼멘소리도 들려 왔지만, “안 되는 일은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라는 목표 의식과 혁신적 마인드는 모든 잡음을 불식하기 충분했다.
현대차의 ‘반전’에 가까운 마케팅 전략을 말한 브랜드전략팀의 인터뷰도 눈여겨볼 만했다. 흔히 미래와 혁신만을 중시하지만, 현대차 브랜드전략팀은 ‘과거와 미래를 잇는 헤리티지’에 주목하고 있다.

정주영 창업주 회장이 강조한 ‘사람을 향한 기술, 휴머니티’를 통해, 단순한 자동차가 아닌 후대가 더 나은 삶을 살게 한다는 정신이 그 헤리티지의 핵심이다. 그 헤리티지는 정몽구 회장의 ‘고객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글로벌 품질 경영에, 현재 정의선 회장의 인류를 위한 스마트 모빌리티까지 모두 인간 중심의 브랜드를 만든다는 목표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현대차의 역사는 현대차만의 것이 아닌, 한국 근현대사와 밀접한 연관이 있기에 우리 역사를 재정립하고 산업화를 가치 있게 재조명하는 데 큰 의미가 있다”라는 현대차 헤리티지의 중요성을 통해, 현대차 브랜드를 만드는 구성원의 커다란 자부심과 책임감까지 느낄 수 있었다.
책에 등장한 43인의 현대차 직원들은 마치 사전에 협의한 듯이 ‘몰입과 협업, 도전’을 동시에 강조하고 있었다. 몰입은 집요함을 만들었고, 협업은 포기 직전에서 동료를 성공으로 끌어 올려줬으며, 도전은 또 다른 새로움을 추구하게 했다.
이처럼 일에 진심인 현대차의 구성원은 사람 중심 경영의 최대 결실이자, 향후 현대차의 더 높은 성장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성공하는 회사 구성원이 업무를 대하는 태도를 본받고, 성공하는 조직과 인력을 만든 경영인의 정신을 엿보고 싶다면, 무엇보다 향후 현대차 입사를 꿈꾸고 있다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 「왜 그렇게 일에 진심이야」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