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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의 뷰스] 책임이라는 이름의 생존 고삐

  • 기사입력 2024.06.24 18:03
  • 최종수정 2024.06.24 18:32
  • 기자명 신아연 객원기자

더피알=신아연 객원기자 | 첫새벽 지하철의 주 승객은 60~70대. 심지어 80대도 드물지 않다니 고령임에도 이른 새벽부터 최저 임금이나 허드렛일을 하러 가야 하는 사람들의 시름이 읽힌다.

공사 현장을 지나다 보면 이른바 노가다 일을 하는 사람의 평균 연령이 60대 이상이란 사실에 연민이 느껴진다. 자기 혼자의 입벌이를 하거나 배우자를 돌보기 위해 돈을 버는 고령층일 수도 있지만, 일을 하지 않는 다 큰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늙은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는 처지도 있으리라. 과연 언제까지….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한창 일할 나이의 20대 후반, 30대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어, 있어도 견디질 못해, 아니면 일 자체가 하기 싫어 얼마 못 가 그만두는 현실과, 당장의 생계를 나이 든 부모에게 의존하는 성인 자녀들에 발목 잡혀 쉼 없이 일을 해야 하는 중노년 부모의 현실. 이렇게 부모와 자녀가 동반위기에 처해 있다.

현실은 명백하지만 대책은 모호하다. 현실은 암울하지만 투명한 대책은 없다.

청년 취업이 난제가 된 데에는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 크다. 개인이 발버둥쳐서 해결될 일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다. 취업상황으로만 본다면 20, 30대의 부모 세대가 훨씬 유리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때도 사회는 암울했고 문제가 많았다. 국가와 사회는 어느 시절, 어느 때나 시대의 난제를 품고 있다.

사회에 좌절하고 암초를 마주하면서도 개인의 삶을 살아내고 세워가는 것이 인생이다. 어떤 상황,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내 인생의 고삐를 내가 쥐어야 한다. 남의 손에 들려주는 순간, 핑계를 대고 합리화를 하는 순간 갉아먹히는 건 다름 아닌 내 인생이다.

주저하고 있는 그 손에 두렵더라도, 망설여지더라도 살며시 고삐를 쥐어줘 보자. 그 고삐가 나를 이 고립의 방에서 이끌어내어 세상 속으로 데려다 줄 것을 믿으며. 그 고삐의 이름에 ‘책임’이란 라벨을 붙여보자. 나의 생존은 내가 책임진다는 다짐으로.

부모들이 왜 나를 이렇게 걱정하고 계속 먹여살리고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바로 ‘책임감’ 때문이다. 자식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마음이 무한 연장되어 지금까지 나의 생계를 그분들이 ‘책임’져 온 것이다.

그 책임의 바통을 이제는 내가 넘겨 잡아야 한다. 그분들처럼 다른 누구를 책임지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는 나 자신, 내 입 하나만 책임지면 된다. 그것도 못할까. 그리고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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