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한민철 기자 ㅣ 정부가 상속세 개편 추진에 불을 붙이고 있다. 소득 구조가 변화하고 다른 선진국에 비해 국내 상속세 부담이 상당히 높은 수준인 만큼, 시대 변화에 맞춘 상속세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일각에서 ‘약탈적 세금’이라는 지적까지 나오는 최대주주 할증 과세에 대해서도 개선 요구가 커지고 있다. ‘부의 대물림’ 방지와 ‘부족한 세수 확보’를 위해 해당 제도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반박도 나오지만,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해서라도 개선을 향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심충진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난 24일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주관한 ‘밸류업 세제지원 공청회’에서 “상속세 과세표준을 현행 대비 3배로 높이는 동시에 최고세율을 30%까지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 교수의 주장은 국내총생산(GDP)이 2000년 676조 원에서 지난해 2401조 원으로 255.2%나 증가했다는 점에 기반한다. 이달 초 한국은행은 지난해 명목 GDP가 2401조 원(잠정)으로 2015년 2236조 원보다 165조 원 증가(7.4%↑)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GDP 수준이 3.5배 오른 만큼 과세표준도 3배 올라야 하겠지만, 그동안 상속세율에는 큰 변동이 없었다는 것이다.
심 교수는 향후 상속세 과표 및 세율을 △3억 원 이하 6% △3억 원 초과~15억 원 이하 12% △15억 원 초과~30억 원 이하 18% △30억 원 초과~90억 원 이하 24% △90억 원 초과 30%로 개편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현행 △1억 원 이하 10% △1억 원 초과~5억 원 이하 20% △5억 원 초과~10억 원 이하 30% △10억 원 초과~30억 원 이하 40% △30억 원 초과 50%)
심 교수는 상속세 개편 필요성을 언급하며 ‘글로벌 세제’의 추세를 강조했다. 한국의 상속세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높고, 이로 인한 부작용과 이중과세 논란도 상당한 만큼 세계적 추세에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OECD 38개 회원국 중 배우자와 자녀 등에게 상속세를 부과하는 국가는 한국을 포함해 19곳으로 딱 절반이다. 이들 19개 국가의 평균 최고세율은 26%로, 일본(55%), 한국(50%), 프랑스(45%), 영국·미국(40%) 순으로 최고세율이 높다.
비교적 최고세율이 낮은 국가로는 아이슬란드·튀르키예(10%), 스위스(7%), 이탈리아(4%) 등이 있고, 특히 노르웨이와 뉴질랜드 등 15개 국가는 아예 상속세를 폐지했거나 인지세 등의 방식으로 상속세를 대체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한국보다 상속세의 최고세율이 높지만, 가업 승계 시 세제 특례 조치 등의 혜택을 적용하면서 실제 부담해야 하는 세금의 규모는 한국과 비교했을 때 그리 높지 않거나 적은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상속세 개편 주장은 현 정부와 여당의 입장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16일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상속세 최고세율을 현재의 절반 수준인 30% 안팎으로 낮추자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성태 정책실장은 “과거 소득세나 각종 세금이 원활하게 징수되지 않을 때 상속세를 높은 세율로 유지하던 시대가 있었다”며 “지금은 사실상 세금을 많이 내고 있고, 이렇게 세금을 내고 모은 재산에 대해 추가적으로 세금을 내는 건 이중과세 문제가 존재한다”고 밝혔다.
지난 20일, 국민의힘 재정·세제개편특별위원회는 국회에서 기획재정부 관계자, 세제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상속·증여세 개편을 주제로 회의를 열고, 배우자 공제와 자녀 공제를 포함한 인적 공제 및 현행 5억 원인 일괄공제 금액을 적절한 수준으로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김병환 기재부 1차관은 모두발언에서 “우리나라 상속세율은 외국에 비해 현저히 높은 수준이고 과세표준과 공제액이 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20년간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서 상속세 개편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합리적 개편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재정·세제개편특별위원회의 위원장인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은 “밸류업, 스케일업하는 가업상속 기업에 대해선 우대 혜택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주주 주식 대량 매각, 행동주의 펀드 경영권 흔들기 초래할 수 있어
상속세 개편에 대해 “부자 감세”라고 주장하는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상속세가 ‘부의 대물림’을 억제하고, 현재 세수 부족을 메우는 주요 세원 중 하나라는 것이다. 실제로 통계청이 20일 발표한 상속·증여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상속세 과세 대상자는 약 2만 명으로 전년 대비 26.5% 증가했다.
지난해 상속세 결정세액은 약 12조 3000억 원으로, 2022년의 결정세액인 19조 3000억 원보다 다소 줄었지만, 2018년부터 2021년까지 2조 5000억 원~4조 9000억 원에 달했던 세액에 비교하면 폭발적으로 증가한 수치다.
“부자 감세”를 주장하는 이들의 입장에서 상속세를 현행대로 유지한다면 10조 원이 넘는 세수를 확보할 수 있지만, 납세자는 상속받은 재산의 절반을 국가가 가져가는 만큼 부당하다고 느끼는 게 당연하다.
특히 일부 기업 오너의 유족에게는 현행 상속세가 부당함을 넘어 약탈적 세금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최대 주주의 주식 상속으로 인한 할증 때문이다.
2022년과 지난해 상속세액의 큰 폭 증가 배경에는 대기업 오너의 주식 상속이 있었다. 실제로 2022년 결정세액에는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상속인에게 부과한 상속세가 포함돼 있다. 유족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은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주식을 상속받기 위해 은행 대출 등을 통해 12조 원의 상속세를 냈다. 이는 역대 국내는 물론 전 세계 최대 규모의 상속세 납부액이었다.

지난해에는 고(故) 김정주 넥슨 창업주의 유족들이 납부한 6조 원대 상속세가 결정세액에 포함됐다.
국내 상속세 최고세율은 명목상 50%이지만, 최대 주주의 주식 상속분에 대해서는 지분 평가액의 20%를 할증해 최고 60%의 세율을 적용한다. 고 이건희 회장 상속 재산은 대부분이 주식으로 이재용 회장 등 유족들에 무려 60%의 상속세율이 적용되면서, 물려준 재산의 절반 이상을 국가에 세금으로 내야 했다.
상속받을 주식의 평가액이 높을수록 내야 하는 상속세의 규모도 올라가는 만큼, 현행 상속세제에서 지분 상속을 앞둔 최대주주라면 당연히 기업의 주가 향상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는 기업의 밸류업은 물론이고 소액주주들의 이익 측면에서도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나아가 대주주가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팔아 상속세 납부 재원으로 마련하면서, 기업의 대주주 지분율이 줄어들 수 있다.
물론 대주주가 주식을 매각해 상속세로 내더라도 주주의 구성이 바뀔 뿐, 기업의 가치 제고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대주주 또는 그룹 지분율이 낮은 상장 기업은 가치 제고는커녕 일부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는 세력의 공격 대상이 돼서 경영권 분쟁의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실제로 2003년 영국계 행동주의 펀드인 소버린자산운용은 SK㈜ 지분 14.99%를 매입해 2대 주주에 올랐다. 당시 소버린 측은 SK그룹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고 주장하며, 최태원 SK 회장의 퇴진과 경영진 교체 및 계열사 청산을 요구하는 등 그룹 전체를 뒤흔들었다.
당시 SK㈜는 최태원 회장 등 대주주의 지분율이 낮은 상태였고, 전문가들은 이런 취약한 지배구조에 소버린이 허를 찔렀다고 평가한 바 있다. 이렇게 SK를 들쑤신 소버린은 2년 3개월 만에 9000억 원이 넘는 차익을 챙기고 떠났다.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 등장했던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엘리엇은 합병을 선언한 삼성물산의 지분 7.12%를 매수해 경영 참여를 선언했고, 동시에 합병비율이 부당하다며 합병을 반대하고 나섰다.
당시 삼성물산은 물론이고 삼성그룹 전체가 엘리엇으로 인해 경영과 주가에 혼란을 겪었고, 그룹 최대 이벤트인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의 무산 위기가 고조되기도 했다.
엘리엇이 삼성물산의 지분을 대거 사들여 경영권을 흔들 수 있었던 계기는 당시 물산의 대주주와 그룹 지분율이 매우 취약했기 때문이다. 2015년 상반기 삼성물산은 개인 대주주인 이건희 회장(1.37%)을 포함해 삼성의 그룹 지분율이 13.65%에 불과했다.
이처럼 대주주가 상속세 납부 재원 마련을 위해 보유 중인 계열사의 지분을 팔아버린다면 해당 회사에 대한 대주주 지분율이 낮아지면서 주로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는 행동주의 펀드가 경영권을 뒤흔들기 쉬운 여건을 만들어 줄 뿐이다.
재계에서는 최대주주 할증 과세 제도가 과세형평성에 어긋날 뿐 아니라 실질과세원칙에도 맞지않다며, 이 제도를 이대로 방치하면 기업의 가치 제고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개선을 요구해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