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김경탁 기자 | 흔히 한국 경제는 대기업 중심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매출액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의 약 60%, 자산 규모로는 전체 기업 자산의 약 40%, 연구개발비 기준으로는 전체의 약 75%, 수출액 기준으로는 전체의 약 80%가 대기업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이다.
반면 일자리(종사자) 숫자 기준 13.9%는 OECD 회원 32개국(평균 32.3%) 중 가장 낮은 수준이고, 기업 숫자 기준 비중 0.09%는 OECD 회원 34개국 중 33위에 랭크한다. 한국보다 대기업 비중이 낮은 나라는 광물·에너지 등 1차 산업 중심인 칠레가 유일하다.
※주요국 대기업 수 비중: 미국 0.88%, 캐나다 0.80%, 독일 0.44%, 일본 0.40%, 영국 0.31% 등

극히 적은 숫자의 대기업이 전체 경제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구조가 만들어진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다. 대표적인 두 가지가 ‘사다리 걷어차기’와 ‘피터팬 증후군’인데, 같은 상황에 대한 정반대의 인식과 해석이라 하겠다.
다만, 현재와 같은 상황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된다는 데는 경제계 모두가 공통의 인식을 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이하 한경협)에서 ‘기업 성장사다리 구축을 위한 과제’ 세미나를 개최한 이유다,

류진 한경협 회장은 3일 오후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세미나 환영사를 통해 “쌀가게, 자동차정비소에서 시작한 삼성과 현대차처럼 중소·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류 회장의 발언은 기업의 원활한 성장과 이를 통한 경제활력 제고를 위해 우리나라에만 있는 기업 규모별 차별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것으로, ‘기업의 성장에 따라 규제와 세금 부담이 커지면서 일부 기업들이 의도적으로 작은 규모에 머무르려는 경향’을 표현하는 이른바 ‘피터팬 증후군’이 현재 구조의 핵심이라는 관점이다.
이날 세미나는 한국중견기업학회와 한국중견기업연합회(이하 중견련)가 함께 개최했다.

권종호 중견기업학회장은 “성장사다리 구축의 핵심은 성장을 꺼리는 피터팬 증후군의 해소”라며, “특히 성장 가능성이 높은 핵심 소부장산업이나 미래산업 분야의 중견기업에 대한 집중지원을 통해 피터팬 증후군을 없애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최진식 중견련 회장은 “대한민국 경제의 ‘허리’인 중견기업은 수십 년의 끊임없는 투자와 도전 및 헌신을 통해 일궈낸 거대한 성취”라면서, “기업가정신과 성장 기반을 훼손하지 않도록 상속․증여세 등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규제 개선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종합토론에 참가한 박양균 중견련 정책본부장은 “성장사다리 구축을 위해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고 우리나라에만 있는 규제를 완화하고, 기업이 성장함에 따라 받게 되는 차별규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경협의 지난해 6월 집계에서 대기업에만 적용되는 차별규제는 61개 법률 342개 규제로, 2년 전 집계에 비해 24.4%가 증가한 바 있다.

세미나에는 강경성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도 참석했다. 정부는 이날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어 ‘기업 성장사다리 구축방안’을 발표했다. 경제 역동성 회복을 위한 성장사다리 1호 대책으로, 중소기업 기준을 넘어도 최대 7년까지 혜택을 유지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강경성 차관은 “전체 수출의 18%를 담당하는 중견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면서, “특례 확대, 수출, 금융, 인력 맞춤형 지원 등 중견기업의 성장촉진과 부담완화를 위한 대책을 차질 없이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규제개선방안’에 대해 첫 번째 주제 발표에 나선 곽관훈 선문대 법·경찰학과 교수는 중소·중견기업의 성장 해법으로 사업 다각화와 자금조달 방식 다양화를 제시했다.
곽 교수는 사업다각화 촉진을 위한 첫 번째 과제로 기업집단에 대한 규제 개선을 꼽았다. 중견기업은 기업집단을 활용한 사업다각화를 꾀하면서 기업규모를 키우는 경우가 많은데, 일률적인 기업집단 규제가 기업의 확장성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어서 “중견기업의 자금조달 시 자본시장보다 금융권 차입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 곽 교수는 이러한 성장의 문제 해결을 위해 경영권을 안정시킬 수 있도록 차등의결권 등 종류주식의 다양화 필요성을 제안했다.

‘재정·경영지원방안’에 대해 두 번째 주제를 발표한 김대홍 숭실대 국제법무학과 교수는 중견기업기본법 재정 필요성을 주장했다.
2013년에 제정된 ‘중견기업특별법(중견기업 성장촉진 및 경쟁력 강화에 관한 특별법)’은 규제 특례 및 원론적인 내용 중심이어서, 구체적인 지원시책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한 김 교수는 중견기업에 대한 실효적인 지원을 위해 기본법에서 더 세부적인 내용을 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특히 중견기업에 대한 지원을 성장단계별로 차등화할 수 있도록 현행 중견기업특별법상 중견기업의 개념을 ‘성장촉진 중견기업’과 ‘혁신역량 중견기업’으로 구분해 맞춤형 지원을 할 것으로 제안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성장촉진 중견기업은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진입한 기업이 지원 시책의 갑작스러운 중단에 따른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한 경우, 혁신역량 중견기업은 성장잠재력이 큰 시장에서 글로벌기업과 경쟁, 거래 및 협력하면서 시장 지배력을 확대하는 경우를 말한다.

마지막으로 ‘세제 지원방안’에 대해 발표한 윤현석 원광대 교수는 성장에 따라 세제 지원이 급격하게 축소되면서 나타나는 부작용 완화를 위해 중견·대기업에 대한 세액공제율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현행 세제는 기업이 커나갈수록 연구개발투자에 대한 지원을 축소하고 있어서 연구개발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이 중소기업은 25%인데 비해 중견기업은 8~15%, 대기업은 0~2%에 불과한데, 연구개발은 기업 규모를 막론하고 실패 리스크가 큼에도 세액공제에 차등을 두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연구개발투자의 중견기업 및 대기업의 세액공제율을 각각 20%, 10%로 높여야 한다”며 “일반시설투자의 세액공제율(통합투자세액공제율)도 현행 중견기업 5%, 대기업 1%로 되어 있는 것을 각각 7%, 3%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