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김영순 기자 | 아시아를 대표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디자인 전시회 '디자인코리아 2024'가 11월 13일부터 17일까지 코엑스에서 개최된다. 어느새 올해 22회를 맞이한 ‘디자인코리아’는 급변하는 산업 환경 속에서 혁신 성장을 이끄는 미래 디자인 트렌드를 공유하고, 대·중·소기업과 디자인 전문 기업의 융합 및 네트워킹을 통한 새로운 비즈니스 창출을 지원한다는 취지를 갖고 있다.

AI 생태계 속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코리아’라는 명칭은 원래 1999년에 열린 제1회 산업디자인진흥대회의 좌우명이었다. 2000년 세계그래픽디자인대회, 2001년 세계산업디자인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거치면서 2003년에 본격적인 디자인 산업 박람회 성격의 ‘디자인코리아’가 만들어졌다.
이후 20년 넘는 시간을 거치며 ‘디자인코리아’가 독보적 지위를 차지하게 된 과정은 ‘디자인’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보편적인 개념이 되어 중요성을 획득했는지 보여주는 증거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사회적 소통 및 메시지 전달을 위한 디자인 커뮤니케이션의 비중과 가치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올해 ‘디자인코리아 2024’의 주제는 그러한 흐름에 걸맞게 ‘AI는 우리 일상을 어떻게 움직이는가?’다.
찬반양론과 호오를 둘러싼 논란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의 사회적 역할 자체는 점점 피할 수 없는 미래가 되어가고 있다. 지금 시점에서 열리는 디자인코리아는 디자인이 인공지능과 만나 어떤 변화를 이끌고 있는지, 그것이 우리 일상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꿀지 확인하고 전망하는 의미 있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위해 제프 멀건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교수, 케빈 워커 코번트리대학교 포스트디지털 문화연구센터 교수 등의 연구 학자들과 김카야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 전문위원, 오베타 샘슨 구글 이사, 찬드라 신나탐비 어도비 이사 같은 산업 현장의 지휘자들, 그리고 송봉규 스튜디오 BKID 대표와 이진준 카이스트 아트&테크놀로지 센터장 같은 현장 디자이너들이 연사로 나와 자신의 경험과 미래 전망을 공유할 예정이다.

ESG를 담을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AI와 더불어 지금 사회적으로 또한 디자인 커뮤니케이션에서 주목받는 분야는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다. ESG는 2004년 UN이 중심이 되어 발표한 ‘Who Cares Wins’에서 처음 제시된 개념이다.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 일정한 권리와 책임을 갖는다는 의미로 ‘기업시민의식’이 최근 확대되는 추세에 발맞춰, 민간 기업의 다양한 투자와 활동이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환경·사회·거버넌스와 밀접하게 관련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ESG가 갖는 공공적인 성격과 더불어 그 실제적 시행은 사회적 변화에 분명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ESG의 디자인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가치는 다양하고 예측이 어려운 위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사회에 앞으로 더 큰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이러한 ESG의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들어진 개념인 공공디자인이 ESG를 수행할 수 있는 하나의 전략적 수단으로 대두되면서, 민간 기업의 ESG와 공공디자인을 결합한 계획이 처음으로 수립되었다. 현대백화점면세점(이하 현대면세점)의 ‘H-gram’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ESG와 공공디자인의 최초 결합 ‘H-gram’ 프로젝트
현대면세점은 홍익대학교 공공디자인연구센터와 함께 지역사회의 공공 공간에서 ESG적 가치를 향상하는 ESG 공공디자인 계획을 수립하고, 시범 설치를 통해 사용자 검증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현대면세점의 ‘H-gram’ 프로젝트는 현대의 ‘에이치’(H)와 픽토그램의 ‘그램’(gram)을 조합하여 명명된 것으로, 국내 대기업이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추진하는 최초의 ‘ESG 공공디자인’ 모델이다.
공공 영역을 대상으로 사회적 가치인 안전·배려·편의, 환경적 가치인 친환경, 거버넌스적 가치인 협력과 공유의 목적을 디자인으로 실현하는 공공디자인과 기업의 ESG 활동은 실행 주체만 다를 뿐 공공 가치를 구현하고자 하는 공통의 목적을 지니고 있다. 현대면세점 측은 이에 착안하여 ESG 공공디자인 모델을 구현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현대면세점은 다양한 ESG 관련 공공 전시를 진행해왔다. 우선 2022년 4월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지역 상생 전시 프로젝트 ‘소금꽃정원’을 진행해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거제도의 매력을 알렸다.
또한 업계 최초로 친환경 종이 쇼핑백을 도입하면서 남은 비닐 쇼핑백 재고를 활용해 소파·파라솔 등 다양한 오브제와 가구를 재탄생시키는 친환경 업사이클링 전시 ‘지속가능한 원더랜드’를 지난해 7월부터 10월까지 진행한 바 있다.
과거 ESG 프로젝트의 연장선인 ‘H-gram’은 공공디자인을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도구로 활용함으로써 기업이 추구하는 공공 가치를 확산시키고 사회 공헌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화했다.

20여 종의 공공디자인 개발
환경적 요소인 자연을 기반으로 하는 바이오필릭(Biophilic)을 중심으로 배려와 편의 등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위한 행동을 유도하는 20여 종의 공공디자인이 ‘H-gram’을 통해 개발되었다.
장기적 정책을 세우기 전에 임시 실험을 통해 효과성을 검증하는 도시 디자인 기법인 택티컬 어바니즘(Tactical Urbanism)을 활용해 시범 설치 후 검증을 실시했다.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면세점 주변 공공 공간을 이용하는 사용자들에게 정신적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바이오필릭 벤치’, 보행 중에 자연적 요소를 느낄 수 있는 ‘바이오필릭존’, 지하도 입구의 안전 보행을 유도하는 ‘아차, 단차’ 프로젝트, 면세점 방문 후 이용하는 지역 공공 공간의 보행거리 정보를 비장애인·고령자·유모차 등 사용자별로 분류하여 분 단위로 제공하는 ‘레저블 플레이스’(Legible Place) 등이 시범 설치되었다.
시범 설치 후 설문조사에서 전체 300개 응답 중 92%인 275명이 긍정적인 답변을 주었으며, 사용자의 87%는 실제 공공 가치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또한 현대면세점이 추후 ESG 공공디자인을 진행하는 것에 대해 98%의 응답자가 원한다고 답했다.

시민의 일상과 사회에 긍정적 변화 추구
H-gram에서 ESG 공공디자인 총괄을 맡은 이현성 홍익대 공공디자인대학원 교수는 “공공 영역에서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 이슈가 증가하고 있으며, 이러한 공공의 사회문제는 공유와 공감을 통해 접근해야 하기 때문에 정부, 기업, 시민사회 등 다양한 주체의 협력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이현성 교수는 “시민의 일상과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끄는 데 ESG 공공디자인 모델이 핵심 전략으로 적용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현대면세점 디자인파트 노영호 차장은 “국내 많은 기업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고민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이끄는 데 현대면세점 ESG 공공디자인이 좋은 사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공공의 안전과 배려를 추구하는 선한 행동을 촉진하고, 주변 상권과의 상생 및 공공 가치를 장려하는 H-gram은 10월 25일부터 11월 3일까지 개최된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2024 공공디자인 페스티벌’에도 초대돼 상세한 계획과 실증 결과, 그리고 가치에 대해 설명했다.
노영호 차장은 “기업의 ESG적인 활동이 요구되는 요즘, H-gram은 디자인이 사회, 환경, 협력을 위한 도구로써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되었다”며 “디자인이라는 수단이 공공가치를 위해 활용되는 공공디자인은 그 목적을 달성하는데 좋은 전략이라 판단되었다”고 밝혔다.
노 차장은 “이미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은 CSR과 CSV차원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 일부는 공공디자인과 매우 흡사하다”며 “현대면세점도 기업의 비영리 활동으로서 지역사회에 공헌하고자 디자인을 활용해 공공가치를 창출하고 이를 ESG 공공디자인이라는 주제로 내놓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