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 매거진

위기대응 현장에서 ‘준비’는 상당히 정치적이다

[정용민의 CRISIS TALK] 사전에 하는 준비 vs. 사후에 하는 준비(1)

  • 기사입력 2024.11.27 08:00
  • 기자명 정용민

더피알=정용민 | 부정 이슈나 위기 상황에 처한 기업의 경우, 초기 대응과 그에 연결된 이후 대응 실행 시점이 이해관계자들의 예상보다는 늦다. 그런 ‘늦음’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상황 발생 직후부터, 상황파악, 상황분석, 대응조직 구성원 집합(취합), 대응방식 논의, VIP의 의견 청취, 실행안 확정, 실행준비, 실행에 걸친 여러 단계의 프로세스를 거쳐야 겨우 실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상황 발생 이후 바로 대응 실행하는 기업이나 조직은 사전에 미리 해당 상황을 예상하여, 대응에 대한 준비까지 완료하고, 대응 시점만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문제는 사전에 해당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던 경우다. 그런 경우 대응 실행 시점은 사전에 해당 상황을 예상하고 준비했던 기업과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가장 핵심 개념은 ‘준비’라 볼 수 있는데, 이 ‘준비’ 개념은 실무진에게 종종 혼란을 주곤 한다. 예상 못했던 부정 이슈나 위기와 맞닥뜨려 혼란스러워진 회사 내부에서 실무그룹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는 조직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실무그룹에게는 “빨리 대응하라”, “뭐라도 하라”, “어떻게든 막으라”, “적극적으로 빼라” 등의 급한 주문이 떨어진다. 반면 실무그룹에서는 “무슨 상황인지 정확하게 파악해야 대응 가능합니다”, “우리가 어떤 입장과 메시지를 할 수 있는지 먼저 결정되어야 합니다”, “대응 예산은 얼마나 가능한가요?” 등과 같은 대화가 반복된다.

이번 글에서는 ‘준비’의 개념을 정리해 본다. 실무그룹은 진짜 쉽게 준비될 수 있는 것일까?

준비는 사전에 하는 것이다

이 원칙에 따르자면, 부정 이슈나 위기가 발생된 이후 시작되는 준비는 사실 준비가 아닌 것이 된다. 사후에 하는 준비는 제대로 된 준비가 아닌 것이라는 의미라서다. 위기관리 아포리즘에서도 “진짜 카우보이는 달리는 말에 올라타려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고공강하를 하면서 낙하산을 만드는 모습을 상상해 보아도 사전 준비와 사후 준비의 개념적 차이를 알 수 있다.

대부분 준비 문제는 사전이 아니라 사후에 준비를 시도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당연하게도 대응 시점이나 품질은 사전 준비된 그것과 비교해 큰 차이를 보인다. 일정 시간이 흘러 그때 그때 준비되어진 실행이 반복되면 어느 정도 정상성을 띄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제대로 대응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사후 평가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없다.

지금은 조용하니 시끄러워지면 다시 준비하자?

일단 첫 불은 껐다는 판단이 생긴 의사결정그룹과 실무그룹은 사전 준비가 가능한 시간을 다시 허비하는 경향이 있다. 초기에 그렇게 허둥지둥 했으면서도, 조만간 다시 불씨가 되살아날 것을 예상했어도 그 때 가서 보자는 생각을 다시 하는 것이다. 신발 끈을 묶고 있어야 부저가 울리면 뛰어나갈 수 있다는 아주 당연한 상식을 몰라서가 아니다. 내부적으로 이전의 시끄러웠던 경험과 기억을 일단 잊고 싶어하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이렇게 문제가 스스로 사그라지는 것을 희망하며 조금(일정기간) 지켜보자는 논리를 펴기도 한다. 운 좋게 이내 소란이 잠잠해지면, 이슈대응을 잘했고, 마무리하자는 결정을 내린다.

하지만, 다시 불씨가 타오르게 되면, 그때 가서 다시 대응 ‘준비’를 강하게 외치니 문제다. 대응 준비에는 허비나 불필요함은 있을 수 없다. ‘지켜보자’는 준비가 완료된 이후에나 할 수 있는 말이다.

불 끌 준비를 했는데 불이 안나면 어떻게 하나
불 끌 준비를 했는데 불이 안나면 어떻게 하나

준비했다가 상황이 발생 안되면 어쩌나?

실제로 회사에게 중대 부정 이슈를 예상하고 내부적으로 상당한 준비를 했던 클라이언트가 있었다. 일정 기간 많은 인력과 투자를 투입해 대응을 상정하고 다양하고 구체적인 대응 준비를 다 했다.

운이 좋게 발생을 예상했던 기간이 아무 일 없이 지나자, 사내에서는 우리가 너무 민감하게 준비하고 호들갑 떤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그 준비작업을 리드했던 실무그룹과 임원은 난감한 처지가 되었다.

다른 한 클라이언트에게는 예상되는 위기상황에 대한 준비가 필요 없는 것이고 과도한 것이라는 취지로 반대하는 실무그룹이 있었다. VIP가 결심하고 지원한 준비 과정에서도 그 실무그룹만은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이후 실제 예상했던 위기상황이 발생했다. 대부분 의사결정그룹이 준비된 대로 움직이자, 준비 자체에 부정적이던 실무그룹은 그들을 따라 움직여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리드하기 보다 따라 움직이는 실무그룹이 돼 버린 것이다.

이런 내부 생각과 우려는 실무그룹에게는 상당히 현실적인 위협이다.

교과서적으로는 ‘준비’라는 것이 당연하고 아주 중요한 상식이라 이야기하지만, 현장에서 ‘준비’는 상당히 정치적이고 조직역학적 부분이 기반되는 행위다. 그러한 부담 때문에 실무그룹이 정확하게 리더십을 쥐고 있지 못하다면, 진정한 ‘준비’는 항상 조심스러운 것이 돼버린다.

11월 28일 실무자를 떨게 하는 그 말…“일단 뭐든 하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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