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 매거진

진짜 시스템 세우려면…‘정형화된 위기, 기대도 말라’

[정용민 CRISIS TALK] 왜 기업마다 위기의 정의는 다른가? (下)

내부 조건·사회 트렌드따라 정의 달라져
‘이유 없을 때도…현상 인정부터 정확히’

  • 기사입력 2024.10.31 08:00
  • 기자명 정용민

더피알=정용민 | 일부 기업 내 위기관리 실무자들은 교과서적인 위기 유형들을 모아 자사의 사업 분야와 현황에 따라 재분류 해 위기관리 매뉴얼에 정리해 놓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기업은 그런 기존의 위기유형 분류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 상황을 위기로 정의한다. 어떤 기업은 분명히 위기유형에 정해진 형태의 상황을 맞았음에도 그것을 위기라 정의조차 하지 않는다.

왜 기업은 각자 생각과 판단대로 위기를 자유롭게 정의하는 것일까? 같은 상황에 대해서도 어떨 때는 위기로, 다시 어떨 때는 위기로 판단하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를 이어서 정리해보았다.

먼저 읽을 기사: “위기지만 위기 아니다” 관점 따라 달리 보는 부정 상황

일곱째, 현재 내부 상황과 조건에 따라 위기는 다르다

리콜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해도, 예를 들어 5년 전과 현재의 위기관리는 다를 수 있다. 당시에는 해당 기업이 그 상황을 중대한 고객관련 위기로 정의했고, 선제적이고 파격적인 리콜을 실행했던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후 수년간 계속 사업이 불안했고, 매출은 절반 이하로 폭락했다. 불행하게도 현재 다시 동일 상황이 발생했지만, 경영진은 5년 전과 같은 수준의 리콜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에 따라 상황을 달리 정의하고, 부분 A/S를 실시하거나, 문제 사실을 숨기며 적극적으로 위기관리를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관련 상황은 같지만, 대응 가능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여덟째, 위기를 반복한 기업인지에 따라 위기는 다르다

특정 위기를 자사의 역사상 처음 경험하는 기업이 내리는 위기에 대한 정의와, 특정 위기를 자주 발생시켰던 기업이 내리는 위기에 대한 정의는 분명하게 다르다. 매번 개선이나 재발방지를 약속했음에도 동일 또는 유사한 부정 상황이 계속 발생되는 기업에게 있어 각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앞의 기업은 교과서적으로 자사의 실수에 대해 사과하고 해당 상황을 큰 위기로는 정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반복적으로 유사한 실수를 거듭한 기업은 그렇게 편하게 위기를 정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홉째, 사회적 트렌드에 따라서도 위기는 달라진다

사내 직원간 괴롭힘이 발생돼 논란이 되었을 때 기업이 선제적 사과로도 이내 위기관리가 가능했을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직장 내 괴롭힘이 법적 사회적으로 중대범죄라는 인식이 강해지고, 여러 케이스에서 극단적 비판과 처벌이 이어지고 있다.

이때 자사에서도 터져버린 직장 내 괴롭힘 논란은 앞의 운이 좋았던 기업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사과 커뮤니케이션으로 관리되었던 상황이, 대표이사가 물러나고, 사업적으로도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돼 버리는 중대 위기로까지 전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부정상황도 트렌드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위기로 정의된다.

위기는 사회 트렌드에 따라서도 달라지지만, 때로는 별 이유 없이도 그 정의가 달라진다. 이 부분이 실무자들의 위기관리를 어렵게 하는 지점이다.
위기는 사회 트렌드에 따라서도 달라지지만, 때로는 별 이유 없이도 그 정의가 달라진다. 이 부분이 실무자들의 위기관리를 어렵게 하는 지점이다.

마지막, 정확한 이유 없이도 위기는 종종 달라진다

이 부분이 실무자들에게는 가장 어렵고 힘든 위기관리 환경이 될 것이다. 지난번에 이 같은 부정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사내에서 바로 중대 위기로 정의하고 적극 대응과 배상을 해 성공적 위기관리로까지 인정받았던 경우가 있었다 치자. 유사한 부정상황이 발생하여 지난 번 같이 중대 위기로 정의하고 대응하려 하니, 사내적으로 굳이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위기대응을 해야 하는 실무자들은 왜 그때와 지금이 다른 지 잘 이해가 가질 않게 된다. 분위기가 그렇게 되어버렸기 때문에 굳이 구체적 이유나 문제를 제기하기도 불편하게 되어버렸다. 현장에서는 이렇게 별 이유 없이 종종 위기에 대한 정의가 달라지기도 한다. 희귀한 경우가 절대 아니다.

위기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임원이나 실무자들은 절대로 위기에 대한 정의가 미리 정해져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위기의 유형도 그에 따라 마찬가지라 생각해야 한다. 그때그때 다르고, 이 회사와 저 회사가 다르다. 이 경영진과 저 경영진이 다르고. 사업적 계획도 조건도 다르고. 이해관계자와 기업의 철학과 원칙도 다르기 때문이다. 전례와 트렌드에 따라서도 달라지고. 심지어 아무 이유 없이도 위기라는 정의는 때때로 달라진다.

이런 불확실성과 예측불가능성이 어찌 보면 위기의 특징이다. 위기란 그런 것이다. 이를 정확하게 먼저 인정해야 제대로 된 위기관리 시스템을 시작할 수 있다. 그래야 모든 것이 계속 변화하고 혼란스럽기 때문에, 최대한 확실성과 예측가능성을 고민해 자사 시스템에 적용시켜 보자 하는 절실한 동기가 생겨나게 된다.

우수한 위기관리 시스템을 가진 기업들은 이렇게 정확한 현상 인정과 그에 기반한 절실한 동기를 가지고 있다. 위기가 정형화되어 있고, 자사의 위기에 대한 정의가 언제나 일관되어 있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하지만, 그런 상상에서 벗어나야 진짜 실행 가능한 시스템이 보이게 될 것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