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수치와 속도가 지배하는 시대지만 한국 산업의 저변을 묵묵히 떠받치는 존재는 조용히 현장을 지키며 시장과 함께 호흡해온 ‘강소기업’들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잘 모릅니다. 언론에 잘 나오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위기 때마다 방향을 바꾸었고, 흔들릴 때마다 본업에 집중했습니다. 한 제품에 미치고, 하나의 고객 불편에 끝까지 천착하며 ‘지속’이라는 기적을 만든 기업들입니다. 이 기획은 그런 기업들을 찾아 나서는 여정입니다. 오래된 도전과 소박한 철학,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지속가능한 기업의 생존 조건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더피알=김경탁 기자 | 1985년, 아직 ‘환경’이라는 개념조차 낯설던 시절. 서울에서 환경 설계업에 종사하던 김덕한 한동엔지니어링 대표는 갓 100일된 첫째 아들을 안고 고향 평택으로 내려와 작은 환경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환경은 기업의 의무가 아닌 선택이었고, 관련 기술과 인식 모두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김 대표는 ‘깨끗한 산업’이라는 신념을 품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처음에는 말 그대로 불모지였습니다. 그래도 묵묵히 신뢰를 쌓아가다 보니 계속 기회가 주어졌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김덕한 대표는 수십 년을 버텨온 소회를 묻는 질문에 성실함과 신뢰가 사업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음을 되짚었다. 그의 말에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도전을 이겨낸 이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은 울림이 배어 있었다.

환경 산업의 진화와 함께한 40년
주식회사 한동엔지니어링은 경기도 평택에 본사를 두고, 전국의 산업체 폐수처리시설 및 대기오염 방지시설을 설계·시공(공장 직영)하며, 인허가 대행, 위탁운영, 오염물질 자가측정 대행까지 종합적으로 수행하는 환경플랜트 전문기업이다.
특히 경기도 내에서 기술력과 시공능력 면에서 최상위권에 속하는 강소기업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스크러버(Scrubber), 집진기, 백필터 등 다양한 맞춤형 설비를 제공하며 현장에 최적화된 솔루션을 제시해왔다.
여기에 법적 의무사항인 대기·수질 배출물질 측정·분석까지 직접 수행해 사업 영역을 넓혀왔으며, 2016년에는 오염물질 측정 전문 법인인 ‘주식회사 이앤(EN)’을 분리 설립해 전문성과 대응 속도를 강화했다.
김덕한 대표는 “미세먼지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시절부터, 오염물질 종류는 수십 배로 늘어났고 규제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강화됐다”면서 “환경산업은 제조업이 존재하는 한 절대 사라지지 않을 분야”라고 확신을 드러냈다.
그는 한때 환경오염 유발 산업이 중국 등 해외로 빠르게 이전되던 시기를 떠올리며 “그 당시에는 환경 관련 사업도 함께 사양산업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인데 막상 지나고 보니 국내에서도 환경 규제는 오히려 더 강화됐고, 새로운 기술과 대응이 계속해서 요구됐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어 “우리가 하는 일은 단순히 현상을 측정하는 게 아니라, 산업 전체가 더 건강하게 돌아가기 위한 기초 작업이기 때문에 계속 필요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가업을 잇는 젊은 경영진, 세대교체의 성공
세월은 흘렀고, 이제 한동엔지니어링과 주식회사 이앤은 김덕한 대표의 두 아들, 김윤동 대표와 김한동 대표가 각각 책임을 맡아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다.
차남 김윤동 대표가 이끄는 한동엔지니어링은 설계, 시공, 인허가, 위탁운영 및 사후 관리까지 아우르는 토털 솔루션을 제공한다.
하루를 운동으로 시작하는 습관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는 그는, 체육학을 전공하고 지도자 경력을 쌓았던 이력이 있다. 이후 환경공학과로 편입해 전공자로서의 기초 소양도 쌓았다. 비(非)환경 전공자로 출발했지만, 실전 감각과 융합적 시각을 바탕으로 기술자와 고객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해내며 실무형 경영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김윤동 대표는 “고객 담당자를 편하게 해주는 것이 최고의 영업”이라며, 고객사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었다.
그는 “사후 관리가 느리면 아무리 설비를 잘해도 소용이 없다”며 “우리가 공장 직영 체계를 고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덧붙였다. 단순히 설비를 납품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발생 시 가장 빠르게 달려가는 ‘든든한 파트너’가 되겠다는 다짐이 묻어났다.
장남 김한동 대표가 이끄는 주식회사 이앤은 대기환경·수질환경 측정 전문 기업으로 성장했다. 현재 대기 8개 팀, 수질 1개 팀으로 구성된 조직을 운영하며, 약 400개 고객사를 보유하고 있다. 측정 가능한 오염물질 항목도 탄화수소, 카드뮴, 납, 크롬, 벤젠 등 30여 종 이상에 이른다.
김한동 대표는 “처음엔 먼지, 황산화물 같은 기본 항목만 다뤘지만, 이제는 거의 모든 항목을 커버할 수 있다”며 “덕분에 대형 제조업체나 발전소도 당당히 고객사로 맞이할 수 있게 됐다”고, 성장의 발자취를 전했다.
그는 특히 2019년 일부 지방에서 벌어진 메이저 환경업체의 허위 측정 사건이 계기가 되어 업계 전반에 대한 신뢰 회복과 품질 인증 강화를 요구받던 시기를 회상했다.
“당시 저희는 정면 돌파를 선택했습니다. 고객사들이 불안해할 때일수록 우리가 더 투명하고 정직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판단했죠. 당시 장비를 보강하고 품질 관리 시스템을 강화하면서 거래처도 오히려 늘어났습니다.”
현재까지 양사가 함께 거래했었거나 거래하고 있는 주요 고객사로는 롯데케미칼, LG화학 청주공장, 두산인프라코어, SK E&S, 현대제철 등 국내 주요 제조기업 및 발전소들이 있다. 이들 고객사와의 협업은 두 회사가 축적해온 기술력과 신뢰의 실질적 증명으로 평가받는다.

차별화 포인트: 자체 공장과 전방위 대응 체계
이들 삼부자의 경영 스타일은 각각 다르지만, 본질은 같았다. ‘기술로 신뢰를 쌓고, 신뢰로 시장을 지킨다’는 창업주의 철학을 두 아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충실히 이어가고 있었다.
한동엔지니어링의 가장 큰 강점은 자체 제작 공장을 통한 전방위 대응 시스템이다. 대부분의 중소 환경 업체가 외주 제작에 의존하는 것과 달리, 이들은 설계–제작–설치–사후 관리까지 모든 과정을 스스로 해낸다. 덕분에 현장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자체 제작팀이 투입되어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다.
김윤동 대표는 “외주업체에 맡기면 사후 대응이 늦어질 수밖에 없는데, 한동엔지니어링은 직접 공장을 운영하는 덕분에, 고객사 담당자들이 안심하고 저희를 찾는다”며, 직접 운영 체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주식회사 이앤 또한 수십 억 원 규모의 첨단 분석 장비를 지속적으로 도입해, 급변하는 환경 규제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김한동 대표는 “매년 새로운 규제가 생기고, 측정해야 할 항목도 늘어난다”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살아남은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시스템과 품질을 업그레이드하는 이유를 명확히 설명했다.
그는 측정업의 특성상 지속적인 기술 투자와 설비 확장이 불가피하다는 현실도 덧붙였다.
“예전엔 없던 오염물질이 새롭게 생성되거나 검출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보니, 설비를 주기적으로 보완하고 확충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규제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산업이 진화할수록 우리가 대응해야 할 항목이 늘어납니다.”

환경 산업의 현재와 미래
환경 산업은 제조업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필요한 산업이다. 제조업이 멈추지 않는 한, 환경 측정과 방지 시설에 대한 수요 역시 줄어들지 않는다. 특히 대한민국처럼 산업구조가 여전히 제조업 중심으로 유지되고 있는 한, 환경 사업은 단순한 '부속'이 아닌 '기초 인프라'로서의 역할을 계속 수행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법과 제도의 변화, ESG 경영의 강화, 국제 기준의 고도화 등 외부 변수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김윤동 대표는 “최근 ESG에 대한 유보적 흐름이 있지만 그로 인해 규제가 완화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최소한 현재 수준은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본다”고 시장을 읽는 냉정한 전망을 내놓았다.
현재 한동엔지니어링과 주식회사 이앤은 각각 약 30명의 전문 인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두 회사를 합치면 약 60명이 종합 환경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환경 전공자나 관련 자격증 보유자로 구성돼 있으며, 길게는 수십년 짧아도 수년간 현장을 누빈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력을 축적해왔다.

“기술로 신뢰를, 신뢰로 미래를”
김덕한 대표는 지난 40년을 돌아보며 말했다.
“크게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 길을 묵묵히 지켜온 것만으로도 자부심이 있습니다. 기술력을 믿고, 약속을 지키며 신뢰를 쌓는 것. 그것이 우리가 걸어온 길입니다.”
빠른 변화와 격렬한 경쟁 속에서도, 한동엔지니어링과 주식회사 이앤은 ‘지속’이라는 이름의 기적을 써 내려가고 있다. 조용하지만 강하게, 대한민국 환경 산업의 보이지 않는 허리를 지탱해가는 이들의 발걸음은 오늘도 멈추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