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 매거진

‘남는 건 언론홍보?’… PR 전문성의 재정의가 필요한 이유

[PR산업의 전문성①] 한국 PR산업의 딜레마...언론홍보 틀에 갇힌 전문성
PR산업 독립 없는 전문성 강화의 한계와 돌파구

  • 기사입력 2025.06.19 16:07
  • 최종수정 2025.06.20 09:43
  • 기자명 문용필 객원기자

더피알=문용필 객원기자|어떠한 직종에 몸담고 있든 ‘전문성을 갖췄다’라는 평가를 마다할 조직이나 개인은 없다. 전문성은 경쟁력과 직결되는 요소이고 그만큼 대내·외적으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무한 정글과도 같은 경쟁 사회에서 생존해야 할 기업과 기업 구성원들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당연히 PR도 예외는 아니다. PR은 고도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통해 공중관계(Public Relations)를 형성해야 하는 작업인 만큼 전문가로 인정받기 위해선 다양한 능력을 요구받는다. 단순히 조직의 메시지를 발신하는 것이 PR의 전부가 아니다. 언론홍보와 대관, 그리고 이해관계자(stakeholders)들과의 소통과 위기관리, 여기에 테크의 급속한 발전에 따른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전략도 PR의 카테고리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PR 전문가가 갖춰야 할 전문성의 요소는 무엇일까. 글로벌 PR교육 표준을 제시하는 미국의 CPRE(Commission on Public Relations Education)은 지난 2018년 PR실무자가 갖춰야 할 5가지의 핵심역량을 제시했는데 △보도자료 등 다양한 콘텐츠 작성(Writing) 및 커뮤니케이션 능력 △전통 및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이해와 활용 능력(Media Literacy) △리서치 및 분석능력 △전략적 기획 능력 △윤리적 판단 및 법적 이해가 그것이다. PR인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만한 업무 덕목들이다.

이러한 ‘교과서적’인 역량에 더해 온라인 환경과 기술의 발전에 따른 추가적인 요소도 있다. CPRE가 지난 2023년 내놓은 보고서를 근거로 하면 데이터에 기반한 전략 수집 능력과 이해관계자 기반 전략 사고,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에 대한 감수성과 이에 대한 커뮤니케이션 전략, AI 활용 능력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물론 특정한 개인은 물론 PR회사가 이 모든 능력을 갖춘다는 것은 이상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각자 상황은 다르겠지만 CPRE가 제시한 역량 중 반만 제대로 ‘장착’해도 어느 정도 업무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여느 직종이 그렇듯 ‘이론’으로 중무장을 한다고 해도 실전경험에서 오는 ‘짬밥’을 무시할 수 없다.

14년차 PR인이자 인하우스와 에이전시를 두루 경험한 A부장은 “PR실무의 전문성은 사전 학습보다 부딪힘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관계 형성, 위기 대응 감각, 커버리지 확장 등은 매뉴얼 보다는 현장에서 빠르게 움직이며 터득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며 “현재 에이전시의 업무 매뉴얼이 얼마나 구체화 돼있는지는 모르지만 실제 전문성 강화를 위한 교육은 이론 중심이라고 생각된다. 전문성을 갖추기 위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사례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보도자료 업무 반복, PR의 전략적 위치 약화시켜”

문제는 PR인 개인의 업무능력과는 별개로 한국 PR산업의 구조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는 점이다. 여전히 PR은 ‘홍보’라는 단어로 치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 중에서도 레거시 미디어를 상대로 한 언론 홍보에 치중돼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여기에 반론이 제기될 수도 있다. 이미 디지털PR이나 헬스커뮤니케이션, ESG, 위기관리 같은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들이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특화된 전문성을 가진 에이전시가 다수를 차지한다고 단언하긴 어려워 보인다. 혹은 전문 분야를 갖고있지만 언론홍보를 병행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이미지 생성=챗GPT(DALL·E)
이미지 생성=챗GPT(DALL·E)

적어도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이러한 구조는 PR의 한쪽 측면만을 바라보는 세간의 인식과 맞닿아있다. 유현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정치인, 기업인을 막론하고 홍보=언론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너무나 강하게 굳어진 것 같다. 언론은 홍보의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PR의 모든 영역을 아우르지는 못한다”고 지적했다.

기업PR은 아니지만 실제로 PR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단면이 있다. 대통령의 홍보 책사를 대부분 언론인 출신들이 맡아왔다는 점이다. 분명 수많은 PR이나 홍보 전문가들이 존재함에도 여전히 PR 혹은 홍보를 언론과 같은 선상에 놓고 바라본다는 방증이다.

실무현장에서도 ‘언론홍보’에 치중된 현실에 대해 안타까운 목소리가 나온다.

A부장은 “언론을 마주하는 능력은 PR 업무의 뿌리에 가깝다. 기자 관계를 바탕으로 브랜드를 알리고 메시지를 소구하는 일은 여전히 PR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면서도 “문제는 언론홍보라는 틀 안에 PR을 가둬버리는 것이다. 보도자료를 피칭하고 클리핑하는 업무의 반복은 결국 PR의 전략적 위치를 약화시킨다”는 생각을 나타냈다.

아울러 “기업 내부에서도 마찬가지다. 성과 압박이 너무 단기적이기 때문에 뭔가 큰 판을 그리는 일은 뒷전이 된다”며 “홍보팀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전략팀’이 돼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언론홍보를 잘한다는 건 무기가 될 수 있지만 PR의 판을 넓히려면 그 무기를 들고 더 넓은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PR의 법적인 위상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현재 PR산업과 관련된 대표적인 법령은 ‘정부기관 및 공공법인 등의 광고시행에 관한 법률’(정부광고법)인데 동법 2조는 홍보매체를 신문과 잡지등의 정기간행물, 방송, 옥외광고물, 방송통신, 뉴스통신,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 등으로 정의하고 있다. 옥외광고물 정도를 제외하면 유 교수의 말처럼 ‘홍보=언론’이라는 등식이 법적으로 성립돼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 홍문기 한세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는 “정부광고법에서 말하는 홍보라는 단어는 ‘Public Relations’가 아닌 ‘퍼블리시티(Publicity)’라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라며 “우리 사회에서 ‘조직과 공중 간의 상호 호혜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관리하는 것을 홍보’라고 설명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법에서 홍보를 퍼블리시티 관점에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봤다.

아울러 홍 교수는 “물론 ‘PR활동’을 언론사를 상대하거나 정부기관 사람들을 대상으로 입법활동을 하기 위한 이해관계자 역할로 인식하던 과거 보다는 훨씬 나아진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PR에서 이야기하는 상호 균형적 커뮤니케이션을 기반으로 이뤄지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한국 PR산업이 아직까지 하나의 독립된 산업군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도 PR의 전문성 강화에 역행하는 포인트다. 서원대 광고홍보학과의 김병희·김현정 교수는 지난해 10월 열린 한국PR협회 창립 35주년 기념 포럼을 통해 ‘국가 산업통계 분류에서 PR산업의 범주 신설을 위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PR산업이 급성장하고 있지만 국가 산업통계에서 PR산업 전체의 총 PR비가 별도로 집계되지 않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현재 총 PR비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관하는 광고산업 통계조사의 총 광고비에 포함돼 집계되고 있고 PR산업은 독립 산업으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또한 결국 우리나라 PR산업의 규모를 추정할 수 없도록 하고 PR의 위상을 평가 절하시켜, 국가의 산업 발전과 경제 성장에 기여하는 PR산업의 가치를 사장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봤다.

PR의 전문성이 한국 사회에서 널리 인정받지 못하면서 나타나는 문제점 중 하나는 일한 만큼의 충분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회사의 전문성과 경쟁력을 키우려면 그만큼의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결국 악순환이 반복되는 셈이다.

김병희 교수는 더피알과의 통화에서 “(각 회사들의) PR 전문 지식은 이제 많이 올라왔지만 충분한 보상체계가 돼 있지 않다.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는 등의 충분한 보상을 받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클라이언트가) 주는 대로 받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이렇게 되면 ‘제살 깎기’의 측면이 있고 전문직으로 자리잡기 어렵게 된다”고 우려했다.

문경호 플랜얼라이언스 대표는 “만약 (PR회사가) 로펌과 합동으로 일을 한다면 단가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며 “디지털 PR의 경우엔 (PR회사가) 퍼포먼스 부서를 두고 열심히 해도 나중에는 고객사에 그 팀의 인원들이 들어가게 되는 경우가 있다. 고객사 내부에서 하는 것이 데이터관리가 훨씬 더 편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에이전시에는 언론 관계(업무) 밖에 남지 않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다만, 한국 PR산업이 ‘언론홍보=PR’이라는 구시대적 등식에만 머물러 있다고만 단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전문성 강화를 위한 움직임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고 산업 발전의 징표 또한 보이고 있다. 한국 PR 산업의 약진을 기대해 볼 수 있는 이유를 다음 편에서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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