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 매거진

스스로 배우고 걷는 힘…SK, 시각장애 아동과 함께 점프

점자 정보의 사각지대 연결하고, 일상 자립 구조를 설계
에듀모아부터 보행 교육까지…행복나눔재단 실험적 혁신

  • 기사입력 2025.07.24 19:58
  • 기자명 김경탁 기자

더피알=김경탁 기자 | “문제집은 정말 꼭 필요해요. 근데 없는 걸 어떡해요.”

6년 전, SK행복나눔재단의 한 프로젝트 담당자가 시각장애 학생들을 만나 수차례 인터뷰를 진행하던 중 들은 말이다.

학기 초가 되어도 손에 쥘 수 없는 점자 문제집, 수업 진도를 따라가지 못한 채 교과서만 반복해 읽는 아이들. ‘너무도 당연한 공부의 권리’가 당연하지 않은 현실에서, 이 작은 목소리는 이후 수년간 이어지는 ‘시각장애 아동 솔루션’의 시작이 됐다.

행복나눔재단은 단순 지원이 아닌, 구조적 문제를 파고든 ‘문제 해결형 실험’으로 시각장애 아동의 학습과 보행에 접근했다. 점자 문해력부터 독립 보행까지, ‘스스로 배우고 스스로 다니는 힘’을 키우기 위한 여정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시각장애 아동과 튜터가 점자 일일 학습지 ‘점프(JUMP)’로 11 튜터링을 진행하고 있다
시각장애 아동과 튜터가 점자 일일 학습지 ‘점프(JUMP)’로 11 튜터링을 진행하고 있다

‘문제집이 없다’는 절실함, 플랫폼으로 연결

시작은 점자 교재였다. 시각장애 아동들은 특수교육기관이나 복지관을 통해 점자 문제집을 ‘요청’해야 한다. 하지만 제작에는 평균 5개월 이상이 걸린다. 더구나 1인당 지원 권수는 연 6권으로 제한돼 있어 선택의 폭도 좁다.

행복나눔재단은 이 문제의 본질을 ‘정보의 단절’로 보았다. 이미 만들어진 점자 문제집조차, 어느 기관에 있는지 알기 어렵고 검색도 어렵다는 데 주목했다. 결국 흩어진 점자 문제집 정보를 통합하고, 시각장애인에 맞춰 검색 가능한 플랫폼 ‘에듀모아’를 개발하게 된다.

2021년 8월 오픈한 ‘에듀모아’는 현재 약 5천 건의 점자 교재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웹사이트는 시각장애인의 음성 독서환경에 맞춰 구조를 단순화했고, 학년·과목별 필터링 기능도 도입됐다. 단순한 정보 나열이 아니라, 실제 활용을 중심에 둔 설계였다.

이후 에듀모아는 시각장애 특수학교·복지관 현장에서 빠르게 입소문을 탔고, 특수교육원의 ‘에듀에이블’ 플랫폼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금은 일부 복지관이 자료 정보를 자발적으로 제공하며, 타 기관 제작 자료 게시판까지 생겨났다.

하루 한 장, 점자 학습 루틴 만들어

교재 검색에서 한발 더 나아간 변화도 있었다. 재단의 사회문제 실험 조직인 ‘세상파일’팀은 2020년부터 점자 문해력 향상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아이들이 매일 부담 없이 점자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국내 최초 점자 일일학습지 ‘점프(JUMP)’를 개발했다.

‘점프’는 기초·기본·유창성·이해력의 4단계로 구성된 200단계 일일 학습지다. 하루 한 장씩 꾸준히 학습하는 루틴을 만들 수 있도록 구성됐으며, 점자에 익숙하지 않은 보호자도 지도할 수 있게 묵자(일반 글자)와 점자를 병기한 것이 특징이다.

실제 교육 현장에서 ‘점프’를 활용한 아동 10명의 점자 문해력은 평균 68% 향상됐고, 일부 특수학교에서는 정식 학습 자료로 채택되기도 했다. 단순한 학습지 개발을 넘어, 개별화 교육과 가정 내 학습의 중요성을 입증하는 사례로 평가받는다.

시각장애 아동 보행 교육 프로젝트 참여 부모가 자녀의 보행 훈련을 지도하는 모습
시각장애 아동 보행 교육 프로젝트 참여 부모가 자녀의 보행 훈련을 지도하는 모습

‘혼자 다니는 힘’을 위한 보행 교육 실험

학습 다음은 이동이었다. 행복나눔재단 세상파일팀은 시각장애 아동의 이동 실태를 조사했고, 스스로 보행이 가능한 비율이 4.5%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확인했다.

기존 보행 교육은 전문 교재도, 아동용 흰지팡이도 부족했고, 교육기관은 수도권 중심으로 제한적이었다. 재단은 여기서 ‘아동 맞춤형 커리큘럼과 교구 개발’, ‘집 주변에서의 보행 훈련’, ‘부모와 함께하는 연계 교육’이라는 3대 원칙을 세웠다.

이후 12회차에 걸친 1:1 보행 교육 프로그램과 부모 대상 교육을 병행해 실효성을 높였고, 참여한 아동 10명 중 8명은 평균 75점 이상의 보행 능력을 획득했다. “혼자 아이스크림 가게에 갈 수 있다”는 한 아이의 말처럼,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는 자신감은 학습의 연장선이자 삶의 확장 그 자체였다.

기획에서 실행까지…지속가능한 변화 실험

행복나눔재단은 이처럼 시각장애 아동의 학습·보행 문제를 단순한 지원이 아닌 구조적 실험과 반복 학습을 통한 변화 설계로 접근하고 있다.

지난 7월 22일 열린 ‘프로젝트 줌인’ 세미나에서 세상파일팀은 그 6년의 점자교육 여정을 되돌아봤고, 현장 전문가들은 실천 가능한 사회변화 모델로 주목했다.

재단은 향후 점자 교육 자료의 품질을 고도화하고, 온라인 플랫폼에서 직접 교재와 교구를 구매할 수 있는 시스템도 구축할 계획이다. 또한 보행 교육도 기초 단계에서 나아가 다양한 환경에 적용 가능한 심화 프로그램 개발에 착수했다.

행복나눔재단이 개발한 점자 학습 장난감 ‘슬라이닷’
행복나눔재단이 개발한 점자 학습 장난감 ‘슬라이닷’

작은 디테일이 바꾸는 세상

행복나눔재단의 시각장애인 지원은 거창한 규모보다 ‘디테일’에서 차별화된다. 교재를 찾는 검색 필터 하나, 그림이 포함된 보행 지도안 하나, 짧은 보이스오버에 최적화된 웹페이지 하나가 아이들의 학습과 일상에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냈다.

“누구나 원하는 문제집을, 원하는 때에 찾을 수 있도록.”

“아이들이 스스로 걷고,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이 소박한 문장은 지금, 하나의 구조로 작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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