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허원순|환율은 한 나라 경제가 처한 여건의 결과이자 국가 경제역량(펀더멘털)의 종합 결과다. 일종의 국제 비교 성적표 성격을 띤다.
한국처럼 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높으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크다. 무엇보다 수입 가격을 올려 고물가를 유발한다. 인플레이션은 그렇게 소비를 위축시키고 고용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서민 최대의 위협 요인이다. 어디서나 인플레이션이라는 유령은 그림자만 어리어도 경제활동에서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반면에 고환율의 긍정 요인으로 꼽혔던 수출증대 효과는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수출품 제조를 위한 소재 부품 등 원재료 수입의 달러 결제 등으로 국내 기업의 영업 이익에 도움이 안 된다는 산업연구원의 보고서도 나와 있다.

‘보통 시민’에게도 전 방위로 영향을 미치는 달러 환율이 근래 계속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정부 내 경제팀장 격인 경제부총리의 발언을 위시해 금융당국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미국 달러 환율이 1400원대 중후반에서 내려올 분위기가 아니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어떻든 정치적 불확실성은 거의 사라졌다. 우호적 관계는 아니지만 최근 들어 남북관계에서도 특별한 돌발 변수는 없다. 과거처럼 환율을 흔드는 한국 고유의 지정학적 요인이 불거지지도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면 고환율의 장기화 조짐은 한국의 자본시장과 산업의 경쟁력 저하에다 정부가 나선 돈 풀기 등 경제적 요인에 기인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마무리되면 원-달러 환율은 하향 안정화가 될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의 노후 쌈짓돈인 국민연금을 동원하겠다는 정부의 ‘국민연금 역할론’까지 들고나온 개입에도 원-달러 환율은 고지대에서 내려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시장에서는 벌써 1500원을 예사로 언급한다. 실제로는 그 이상이 되어도 별반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쉽게 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그만큼 시중의 일반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달러 가수요가 충분히 감지되는 요즘이다.
1500원을 넘어서면 외국인 자금 이탈도 빠르게 진행될 우려가 있다. 고환율이 증시의 한국물 매도를 재촉하고, 그렇게 빠지는 달러가 환율 상승을 부추기는 위험스러운 악순환이다.
통계를 보면 미 달러 사정은 사실 그다지 나빠 보이지 않는다. 최근의 수출입과 그간의 경상수지를 보면 달러가 부족한 상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무역흑자만 564억3000만달러에 달한다. 지난 9월까지 누적 경상흑자도 827억7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5억달러나 많다. 이에 따라 외환보유액도 4288억달러(10월말)로 전달보다 68억달러가 늘었다.
이런데도 달러 수요는 급증한다. 1998년 IMF 외환위기 때나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의 평균 환율보다 더 높다.
외환 분석가들은 전반적으로 해외투자가 늘어나는 와중에 한-미 관세 협상 마무리 이후 약속한 대미 투자에 대한 불안감으로 가수요가 적지 않다고 추정한다.
‘서학 개미’라는 해외 증시 투자자들의 달러 수요가 늘어나는 것도 상당히 큰 요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들의 미국 시장 투자가 늘어나면 달러 수요는 계속 증가할 것이고, 고환율을 가속화 할 것이다.
그렇다고 고공 행진하는 고환율을 기업의 해외투자 증가나 자본시장에서 개미투자자들의 ‘국장’ 이탈 때문으로만 봐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기에는 무엇보다도 원화가 너무 많이 풀렸다. 숱한 우려와 반대에도 정부가 확대해왔고, 일부 지방자치단체들까지 가세해온 민생지원금이라는 명분의 현금살포부터 그렇다.
근래 국회가 심의에 돌입한 내년도 예산안을 봐도 올해보다 8%나 급증했다. 무려 728조원, 사상 최대의 정부 지출안이다. 이런 판에도 거대 여당은 더 증액할 공산이 다분하다. 내년도 지방선거를 의식할만한 시점이다.
그간의 국회의 행태를 돌아보면 더욱 그렇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공약과 그간의 정책 기조를 보면 재정지출 확대, ‘슈퍼 예산’은 내년도 한 해로 끝나지 않을 것이 확실해 보인다.
재정 건전화 노력은 뒷전인 채 돈을 풀어대면서 원화에 대한 나라 안팎의 신뢰를 정부가 앞서 무너뜨린다. 현재의 정부 여당 처지에서 보면 당장은 앞으로 남는 장사일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 나라는 뒤에서 밑지는 장사가 될 수 있다.
이래저래 정부발 돈 풀기는 상수가 돼 버렸다. 상승요인과 여건을 외부에서 찾기보다 성찰하면서 내부에서 찾는 것이 정확한 대응책 마련에 좀 더 도움 될 수 있다.
우리 스스로 돈 가치를 떨어지게 하는 판이니 일반 개미 국민의 해외투자도 쉽게 수그러들 분위기도 아니다. 1500원으로까지 치솟는 원-달러의 고환율이 고착하면 재정을 한껏 풀어도 경제 운용은 어렵게 된다. 서민은 서민대로 고통이 가중될 것이다.
언 발에 오줌 누기 식 돈 풀기를 지양하고 인플레이션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 고물가가 부담이라고 효과도 없는 개별 상품 가격에 무리하게 개입할 수도 없는 노릇인 만큼 미리미리 수급관리가 우선돼야 한다. 한국 돈 원화를 외면하고 달러를 찾는 심리가 보통의 시민, 평범한 소비자 사이에까지 퍼져나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걱정은 ‘달러라이제이션’이다. 자국 통화를 외면한 채 미국 달러로 결제를 하고 저축(가치 저장)의 수단으로 담는 달러라이제이션이 분명하게 나타나는 나라치고 제대로 된 데가 없다.
포퓰리즘에 젖어, 물가가 통제를 벗어나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예사인 남미 국가들을 무섭게 볼 일이다. 신뢰를 잃은 통화, 자국민에게서 가치를 의심받는 화폐라면 돈이라고 하기도 민망해진다.
이런 현상이 현저해지면 그 뒤에는 어김없이 위기론이 부상할 것이다. 외양간에 소도둑이 들 수 있는 상황으로 예상된다면 미리 잘 대응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