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 매거진

기사도 ‘상품’이 될 수 있을까?

[양재규의 피알Law]
공공연한 ‘지면 바잉(buying)’, 신문법 개정으로 수월해져
청탁금지법 적용으로 전환기…지난 9월 대법원 판결 주목

  • 기사입력 2021.11.25 14:05
  • 최종수정 2025.03.19 18:28
  • 기자명 양재규

[더피알=양재규] 변호사를 ‘선임’했다고 하면 될 것을 ‘샀다’고 하는 사람들이 꼭 있다. 물론 필자를 포함한 대다수 변호사들은 이 표현을 아주 싫어한다. 아니, 불쾌해 하며 화를 낼지도 모른다. 전문직 특유의 자존심 혹은 특권의식 때문만은 아니다. 변호사도 사람인데 돈 주고 살 수 있는 상품이 아니지 않나.

세상에는 거래나 구매의 대상으로 여겨지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있다. 그 중의 하나로 언론의 ‘기사’를 포함시킬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우리 사회에서 기사가 상품이 된지 오래라는 것을 몰라서 하는 소리는 아니다. 얼마 전 <더피알>에서 기사형 광고 세계에 대해 다룬 바 있는데 우리 언론의 현실은 예상보다 충격적이다.

“그렇게까지 비난받을 일인가 싶다.(중략) 도덕적인 문제는 조금씩 있겠지만 무조건 잘못된 일이라고 단정할 수 없을 것 같다.”

“대기업에서 신제품이 나왔다면 거의 모든 매체에 (보도자료 기반 기사로) 나온다.(중략) (기사형 광고와) 무슨 차이가 있느냐.”

기사에 인용된 언론사 관계자들의 인식은 언론보도가 상품으로 취급되는 현실을 정확히 보여준다. 돈 받고 기사 쓰는 일을 윤리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까지 잘못이라거나 사악한(!) 일로 여기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돈 받고 기사 쓰는 일은 비윤리적일 뿐, 잘못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걸까?

사라진 과징금 제도, 언론사 수익사업 물꼬?

시간을 거슬러 2009년으로 가보면, 돈을 주고 기사를 사는 일에 대한 우리 사회의 중대한 입장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그해 7월 31일 신문법 개정이 이뤄졌는데, 기사형 광고 게재 시 해당 언론사에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 근거 규정(제43조 제1항 제1호)이 삭제됐다. 이 규정은 언론개혁을 핵심 국정과제로 삼았던 참여정부가 제정한 신문법에 포함돼 있었는데 기사와 광고를 명확하게 구분해서 편집하지 않을 경우, 해당 언론사에 2000만원 이하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정권 교체와 더불어 이러한 기사형 광고 규제는 유명무실해지고 말았다. 기사와 광고가 명확히 구분될 수 있도록 표시의무를 부과하는 조항(제6조 제3항)은 살아남았지만, 과징금 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적어도 행정적으로는 언론사에서 알아서 처리할 문제가 되었다. 이러한 신문법 개정엔 기사형 광고를 하나의 수익 모델로 삼고 싶은 언론계의 염원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과징금 규정은 삭제 이전에도 이미 현실에서 규범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유명무실한 조항에 가까웠다. 하지만 눈엣가시 같았을 과징금 조항이 삭제되었으니 그 후 언론사들은 보다 자유롭고 떳떳하게 기사의 상품화에 열을 올렸을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발생하는데 바로 2016년 청탁금지법 시행이다.

논란이 많았지만 언론인 역시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에 포함됐다. 언론인에게 청탁금지법이 적용된다는 것은 단지 3만원 이상의 식사대접이 불가능해졌다거나 부조금 액수가 줄어든다는 정도를 넘어선 사회적 함의를 갖는다. 바로 언론의 기사가 공공재임을 뜻한다는 이야기다.
 

청탁금지법에 따르면, 기자를 상대로 한 부정청탁이 금지되는데 예를 들어, 자사에 불리한 기사를 빼달라고 하거나 기사를 유리하게 써달라고 하는 것도 부정청탁에 해당될 수 있다.¹ 기사를 언론사라는 사기업의 상품으로 본다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규제다. 이 외에도 기자가 뒷돈을 받고 홍보성 기사를 써줬다면 역시 청탁금지법상 금품수수금지에 저촉될 것이다.²

기사형 광고 관행 바로잡으려면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지 만 5년이 지난 2021년 9월 30일 대법원에서 기사 매수 요청이 ‘부정한 청탁’에 해당된다는 판결이 선고됐다(2019도17102). 기사 매수 요청이 부정청탁에 해당될 수 있는지 판단에 앞서 먼저 대법원은 “‘광고’와 ‘언론 보도’는 그 내용의 공정성, 객관성 등에 대한 공공의 신뢰에 있어 확연한 차이가 있고, ‘광고’는 ‘언론 보도’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음”을 명확히 했다.

광고와 기사를 구분한다는 것은 광고의 상품성은 인정하되, 기사의 상품성은 부정하는 것과 관련 깊다. 이같은 기사와 광고의 차별성에서부터 표시의무가 나온다. 즉, “기사배열책임자는 독자가 기사와 광고를 혼동하지 아니하도록 명확하게 구분하여 편집하여야”하고 “‘기사형 광고’를 게재하는 경우에는, 독자가 광고임을 전제로 정보의 가치를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그것이 광고임을 표시하여야 하고, 언론 보도로 오인할 수 있는 형태로 게재하여서는 안 된다”고 봤다. 이러한 판단을 전제로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유료 기사 게재 요청을 ‘부정한 청탁’에 해당된다고 보았다.³

보도의 대상이 되는 자가 언론사 소속 기자에게 소위 ‘유료 기사’ 게재를 청탁하는 행위는 사실상 ‘광고’를 ‘언론 보도’인 것처럼 가장해 달라는 것으로서 언론 보도의 공정성 및 객관성에 대한 공공의 신뢰를 저버리는 것이므로, 배임수재죄의 부정한 청탁에 해당한다. 설령 ‘유료 기사’의 내용이 객관적 사실과 부합하더라도, 언론 보도를 금전적 거래의 대상으로 삼은 이상 그 자체로 부정한 청탁에 해당한다.

기사는 거래의 대상일 수 없고, 따라서 상품이 될 수도 없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사겠다고 했으니 ‘부정한 청탁’이 된다는 것이 이번 판결의 핵심이다.

형사상 범죄에 해당되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돈을 받은 쪽뿐만 아니라 돈을 준 쪽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형법상 배임증재죄 혹은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처벌될 수도 있는 것이다. 또 민사상으로도 영향이 있는데, 특히 계약을 무효화시킨다. 언론사와 광고주 간에 정식으로 계약서를 썼다고 하더라도 무효다(민법 제103조). 계약상 의무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고, 계약에 따라 하기로 된 의무를 상대방이 이행하지 않아도 강제할 수 없다. 심지어, 이미 지급한 대금은 민법 제746조 소정의 ‘불법원인급여’에 해당되어 법적으로 반환을 청구할 수도 없다.

기사형 광고에 비교적 관대한 우리와는 다르게 독일에서는 윤리적으로 심각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도 명백한 불법행위에 해당된다고 한다. 수용자를 기만했다고 해서 해당 언론사의 신뢰를 하락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부정경쟁방지법상 ‘불공정 영업행위’에 해당하여 최대 10만 유로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명칭 또한 ‘기사형 광고’라는 다소 가치중립적인 표현이 아닌, ‘위장광고(Schlechwerbung)’라는 가치판단을 담은 표현을 사용한다. 심지어, 보도자료를 받아쓰는 기사 역시 ‘위장광고’로 본다고 한다.

기사 판매나 기사형 광고가 아무리 불법이고, 심지어 형사범죄에 해당된다 하더라도 그것에 생존이 걸렸다면, 또 기사에 대한 수요가 존재하는 한, 언론사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우리 사회에서 언론사 수익 모델로 자리 잡은 기사형 광고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광고주들의 의식 전환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¹ 이렇게 볼 명확한 근거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사견임을 전제로, 청탁금지법 제5조 제1항 제13호를 유추적용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해석이다.

² 이와 관련해, 기자가 소속된 언론사가 계약을 체결하고 언론사 계좌로 기사 대금을 송부받았다면 금품수수금지 위반에는 해당되지 않을 것이다. 청탁금지법에서 명하는 각종 명령과 금지의 대상은 ‘공직자(=언론인)’로 되어있다.

³ 물론, 이 판결의 최종적인 결론은 ‘무죄’였다. 기사의 대금을 입금받은 주체가 기자가 아닌, 소속 언론사였기 때문에 법원은 배임수재죄의 성립을 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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