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김병주 기자 | ‘작은 일을 잘하면 큰 일도 잘 한다’
여기 지역에서 남들이 보지 못했던 것을 보며 콘텐츠 비즈니스에 성공한 사람들이 있다. 어르신들의 지혜, 천혜의 자연환경, 고향 땅에서 살릴 수 있는 독특한 인사이트는 이들의 손에서 세계인의 시선을 끄는 사업 아이템이 되었다.
웬만한 레거시 미디어보다도 지역 콘텐츠를 잘 알리고 지역사회에 강한 영향을 끼치는 로컬 브랜드들은 본래 공익적 가치를 추구하려고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다른 선택지가 마땅치 않았거나, 자립보다는 정부 지원금을 목적으로 로컬 창업에 나선 사람들도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성공적인 로컬 브랜드들은 차별화된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실험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지역과 동반성장을 하고 커뮤니티를 만들어갔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문제 해결을 위해 모인 ‘커뮤니티’는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다양한 구성원들을 수용하며 해외 방문객 유입과 수출에까지 폭을 넓히고 있다.
최근 성료된 ‘로컬 크리에이티브 2024’의 컨퍼런스에서는 강원도와 제주도 바닷가에서 주목할 만한 경쟁력을 기른 로컬 브랜드 대표 3인이 발제자로 나섰다.
참석자들은 반려동물에게 수산물을 제공해주기 위해 소비자 인식을 개선한 사연과, 지역 방문객이 즐길 콘텐츠를 더 풍성히 해주기 위한 수익 구조 확충 방안, 잊혀진 브랜드의 사회적 가치를 되살리기 위해 필요한 작은 브랜드 간의 연대까지 다양한 브랜드 스토리와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다.
오늘날 로컬이라는 자산을 활용하고 커뮤니티를 만들려는 크리에이터들에게 동네 창업가들의 회사가 지닌 각양각색의 시선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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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형씨’ 김은율 대표 “브랜딩은 프리미엄으로, 수익은 캐주얼로”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민통선이 가까운 동해안 어촌마을 인근에는 말린 수산물이 많다. 해풍에 잘 말라 영양도 맛도 높아진 생선은 사람은 물론 동네 강아지와 고양이들에게도 인기 만점이다.
‘향기 형’(馨)자와 '씨푸드'(Seafood)의 앞글자를 따와서 ‘형씨’라는 친숙한 단어에 새로운 향기를 부여한 ‘동해형씨’는 고성이 고향인 김은율 대표가 설립한 수산물 가공 사료 제조업체다. 수산물의 원형을 그대로 살려 반려동물 간식을 만드는 동해형씨는 세계 최초로 항구 입찰한 자연산 횟감으로 수제식품을 만드는 한편 로컬 기반 지역 상생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동해형씨는 회사 설립 이후 매년 300%의 매출 성장세를 보였다. 2022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하는 ‘대한민국 관광공모전’에서 펫푸드 최초로 국무총리상을 수상했으며, 지난해 10월 펫산업 분야에서 유일하게 중소벤처기업부 ‘2023 라이프스타일 분야의 주목할 만한 기업’(라이콘)에 선정됐다.
10년 이상 건축을 배우고, 8년 이상 디자인을 해왔으며, 2년 이상 온라인 마케팅 일을 해왔던 김은율 대표의 고민은 ‘고향에서 만들어갈 수 있는 콘텐츠’로 이어졌다. 저가 경쟁과 빠른 배송의 시대에 채소와 육류 다음으로 온라인 유통시장이 손댈만한 것은 수산물이었고, 반려동물 시장도 이러한 추세를 따를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변형이 가해지는 동결 건조 방식 대신 특허를 출원한 ‘원물 건조’ 방식을 택해 제품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게 하고, 현지 어르신들과 계속 교류하면서 항구에서부터 소금을 치지 않게 하는 과정은 시작이었다. 지역 현장의 행정적 보수성과 비용 출혈은 “어쩔 수 없는, 버텨야 하는 일”이었다.
김 대표는 “소비가 보수적인 편인 식품시장을 공략하는 경쟁력은 고객의 질문으로부터 발전해왔다”며 “프리미엄을 지향해서 타깃팅과 세일즈 피보팅(외부 상황·성과에 따라 비전은 유지한 채 사업방향과 전략을 바꾸는 일)으로 보다 전문화된 선택지를 제공했다”고 밝혔다.
기후변화와 남획으로 우리나라에서 더 이상 명태가 잡히지 않지만, 동해형씨는 사람들의 관심을 바다로 돌리는 재미있는 방식으로 이를 풀어냈다.
‘반려동물과 함께 바다를 지키자’ 캠페인 내의 리워드(고객 니즈가 큰 브랜드 한정판 굿즈) 게임을 위해 제작된 ‘댕냥어보’ 카드가 좋은 예시다. 댕냥어보 리워드 게임 제품 구매 시 포켓몬 카드처럼 생선의 생태, 생김새, 활용법과 어획량 추이를 담은 일러스트 카드를 증정하고, 댕냥어보를 50장 모으면 고성 지역 숙박권을 리워드로 제공하기도 했다.

‘바다가 허락하는 만큼’이라는 브랜드 슬로건을 전달하기 위해 여러 펫페어에 참여하면서 배 모형에 갓 잡은 생선을 올려놓는 연출이나 오마카세 셰프 옷을 입는 등 콘셉트를 뚜렷하게 했고, ‘강아지도 생선을 먹을 수 있다’는 시장 인식을 만들어갔다.
그 덕분일까, 지난해 9월 성수동에서 열린 팬 바자회에서 동해형씨는 넷플릭스, 스타벅스 수준인 76.4점이라는 NPS(순고객추천지수)를 기록하며 우수한 고객 충성도를 보여주었다. 특히 브랜드 소비자의 90% 정도를 차지하는 3040여성들에게 인기가 뜨겁다.
글로벌 기업으로 나아가는 동해형씨는 국내 판매전략을 해외로 이어가고 있다. 오늘날 세계 펫푸드 시장의 핵심 트렌드 ‘펫 휴머나이제이션(인간화), 프리미엄화, 웰빙’을 5년 전부터 예상하고, 3종의 수산물에 국한된 기존 펫푸드와 달리 29종의 수산물로 제품을 구성해 선택지를 넓혔다.
지난해 12월 홍콩으로의 첫 수출을 마쳤고, 올해 1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필리핀에도 수출을 개시했다. 약포지에 담은 6종의 트릿 샘플러(맛보기 제품)로 가볍게 수출을 시작했는데, 올해 안에 미국, 태국, 일본 등에도 수출이 이뤄질 예정이다.
김 대표는 “브랜딩은 프리미엄으로, 수익은 캐주얼로”라고 동해형씨의 제품군에 따른 비즈니스 모델을 설명하며 “로컬 크리에이터들에게는 제품과 시장, 나와 구성원의 비전을 하나로 맞추는 에이밍(Aiming)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서피비치’ 박준규 대표 ‘발리에서 배운 파도, 모두의 이득으로 돌려주다’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에는 바다를 다르게 활용한 사람이 있다. 1km에 걸친 서핑 전용 해변과 먹고 마시는 선셋 바, 한밤의 비치 파티와 1000여대의 서핑 장비를 갖추고 수준별 맞춤 강습을 제공하는 서프 스쿨까지. 2030세대 사이에서 이미 유명해진 ‘서피비치’(Surfyy beach)는 올해로 벌써 10주년을 맞이했다.
컨테이너 2개로 시작한 서피비치는 ‘한국의 이비자’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역문화 매력 100선(로컬 100)에 선정되었다. 서피비치를 찾는 방문객 연간 200만명 중 20% 정도는 32만개에 이르는 SNS 피드를 보고 찾아온 외국인이다. 국내 300여개 매체에서 500회 이상 보도된 만큼 입소문은 더 빨리 퍼지고 있다.
인근 상권 활성화에도 성공해, 요가학원도 13곳이나 생겼다. 주변 민박집 연매출도 1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뛰었을 정도다. 심지어 서피비치 근로자들은 10개월 근속 시 2개월 간 월급의 100%를 받는 유급 휴가가 지원된다니, 그 인기가 얼마나 큰지 체감이 간다.
박준규 서피비치 대표는 자신을 “콘텐츠가 아니라 공간을 만드는 사람”이라 소개했다. 사람들이 양양에 와서 겪는 불편을 해결해주고 바램을 실현해주기 위해 그가 만들기로 한 것은 ‘바다에서의 로망을 주고 사랑 받는 공간’이었다. 말하자면, 밤바다에서 마시는 맥주에 담긴 로망의 실현이었다.
박 대표가 보는 “로컬 비즈니스는 여행업”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소멸 지역의 로컬 창업이 지역 주민에게서 돈을 받는 구조라면 망한다”고 단언했다. 관건은 그 지역을 찾아간 사람들이 원하는 것에 집중하는 일이다.
그 또한 지역 원주민들과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저 같은 경우는 제가 아는 사업 정보 대부분을 주민과 공무원들에게 일단 공유한다”며 상생 의지를 드러낸 박 대표는 “로컬 사업자가 ‘지역 텃세’ 운운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박 대표는 “공급자보다 소비자가 경험이 많기에, 공급자는 의견을 제시할 때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그가 제시하는 서피비치의 미션은 바로 ‘지역·동료·고객의 이득’이다.
잘 되는 여행지는 주간과 야간 콘텐츠를 모두 확보한 곳이지만, 그전까지 동해안에는 마땅한 야간 콘텐츠가 없다는 데 주목했다. 서핑을 통한 지역 매출 발생일수는 연간 45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를 200일까지 늘리기로 목표를 세웠다.
양양 특유의 얕은 해변과 너무 거칠지 않은 파도, 그가 자주 갔다는 인도네시아 발리와도 큰 차이가 없는 파도치는 날 수는 그가 목적한 ‘98%의 사람들’이 더 편히 즐길 수 있는 환경이었다.

박 대표는 자신이 주재하는 모든 회의의 안건은 ‘기분’이라 설명했다. “손님 기분이 좋은지, 우리 기분은 안 나쁜지”가 포인트다. 여기에 손님들 카드값 덜 나오게 하는 것이 사업 포인트라고 간단하게 덧붙였다.
말은 간단하지만, 제조업적 관점에서 모든 사업을 효과와 효율 중심으로 이야기해선 안 된다는 의미를 담았다.
서피비치는 작은 사업 하나에도 여러 수익 구조를 명확히 구성해놓는다. 대표적인 수익원은 레저 사업부의 서핑과 비치 요가, F&B, 매년 개최하는 페스티벌, 그리고 매년 30여 가지 브랜드와 협업해 진행하는 파티와 프로모션이다.
‘다른 나라들의 바다’에서 얻은 영감으로 구축했다는 탄탄한 비즈니스 모델은 아세안(ASEAN) 10개국에도 전파되어, 서피비치는 현재 동남아시아 사업자들과 교류하며 이들의 사업 기획안을 구성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재주상회’ 고선영 대표 ‘아일랜드 신부가 도운 제주 여성 자립, 다시금 세계로 알려요’

10주년을 맞은 로컬 콘텐츠 비즈니스는 제주도 남쪽, 유채꽃이 가장 먼저 피는 산방산 사계리에도 있다. 대한민국 최남단 콘텐츠그룹인 ‘재주상회’는 2014년 4월 ‘살아보는 여행’을 콘셉트로 한 로컬 매거진 ‘인(iiin)’을 창간하며 시작했다.
‘제주 고사리’를 주제로 시작한 매거진은 광고도 없이 구독과 서점 판매 수익으로 살아남았다.
지방은 물론 서점도 소멸하는 시대에 주변에서 아무도 잘 될 거라 말한 적 없는 ‘인(iiin)’ 매거진은 이제 로컬 매거진 중 유일하게 전국으로 유통되며 로컬 현장에서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올해부터 한 권 정도는 영문 버전으로 만들어 세계 속에 제주를 알릴 계획이다.
서울에서 여행잡지 기자로 일하다 2011년 제주로 이주한 고선영 재주상회 대표는 “1년에 1000만명 넘는 사람들이 제주를 찾아오는데 진짜 제주 이야기를 해주는 매체가 없었다”며 매거진을 만든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로컬에서 창업하고 브랜드를 만들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건 지역 자원을 찾는 일인데, 그 과정에서 지역 매거진이 중요한 일을 한다”며 “전국 226개 지자체마다 하나씩 로컬 매거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특이하게도 재주상회는 명품 니트 브랜드를 재생시킨 이력이 있다. 바로 ‘한림수직’이다. 1959년 설립된 이래 한때 조선호텔 지하 아케이드에도 전문 매장을 내고 신문 광고도 활발히 하던 ‘타임’지에도 기사가 실릴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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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극도로 궁핍했던 제주에서 한림수직을 만든 사람은 아일랜드에서 부임해온 성 이시돌 목장 설립자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 신부였다. 당시 제주 여성들은 초등학교만 마치고 육지의 공장에 취직하러 갔다가 사고를 겪는 일이 많았다.
제주 사람들이 육지로 떠나지 않고 제주 안에서 자립할 방법을 고민하던 맥그린치 신부는 고향 아일랜드의 전통인 양모 니팅을 떠올렸다. 물레와 면양 35마리, 직조 강습을 하러 온 수녀 3명으로 시작된 한림수직은 70~80년대에는 제주 여성 1300여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니트 브랜드가 되었다.
저가 양모의 시장 점유와 쉽게 사서 쉽게 버리는 풍조 앞에 쇠퇴하던 한림수직은 2005년 문을 닫았다. 재주상회가 이를 재생하기로 결정한 것은 2021년. 1000여 마리에 가까웠던 이시돌 목장의 양들은 50여 마리로 줄었지만, 지역 구성원 모두에게 자부심이 되고 세대의 경험을 연결하는 브랜드라는 점은 놓칠 수가 없었다.
버려지던 성 이시돌 목장 양모에 리사이클 울을 섞으면 한림수직의 장인과 제자들이 니팅에 들어간다. 아일랜드 ‘아란’섬의 이름에서 따온 아란무늬는 한림수직 스웨터, 머플러, 니트백 등의 시그니처 디자인이다.
지난해 10월, 11월 두 차례에 걸쳐 2박3일 동안 장인들과 니팅을 하는 니팅 리트릿 여행 프로그램은 일본 손님들의 발걸음까지 이끌었다.
양모가 한정적인지라 한림수직 제품은 한정수량으로 제작된다. 오픈 3주면 거의 다 팔리는 제품들을 1년 내내 만나볼 수 있도록 시즌별 제품을 다양하게 마련해 생산을 늘릴 계획이다. 또 올해는 이시돌 목장 내에 양털을 세척할 때도 빗물을 받아 세탁을 하고 태양열로 에너지를 충당하는 생태 공장을 짓기 시작하며 친환경 행보에도 앞장서고 있다.
고선영 대표는 “한 명이 500만원을 버는 것 말고도 10명이 50만원을 버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소규모 크래프트 비즈니스에 관한 견해를 드러냈다. “시간이 흘러도 계속 쓸 수 있는 옷을 만들려 한다”는 그의 목표는 세계 지속가능 패션 시장에서 1%를 확보하는 것이다.
광고 이전에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콘텐츠 퀄리티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의 행보는 지역 큐레이션에서 상품 제작, 이제 제조업으로 넘어가고 있다.
누군가는 스몰 브랜드(로컬 크리에이티브)의 성공을 베껴가는 대기업의 횡포를 걱정하지만, 그에게는 그 또한 ‘세상에 인정받았다는 신호’란다.
“다행히 스몰 브랜드를 보호할 방법도 전보다 늘고, 많은 법조인들이 법적 조력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한 그는 로컬 비즈니스의 ‘연대’에 희망을 건다. 뭉치기를 잘하는 작은 브랜드와 콘텐츠 비즈니스들이 만들어가는 지속가능한 경제 생태계가 지역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