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넛지디자인 캠페인’은 한국디자인진흥원과 공공소통연구소가 공동으로 기획한 칼럼으로 더피알이 양 기관 동의 하에 ‘디자인 DB’를 연계한 시리즈로 보도합니다.
더피알=이종혁 | 광복 70주년이었던 2015년. 전국적인 태극기 달기 운동과 함께 대형 태극기가 주요 건물 전면을 장식했다. 어느 순간부터 국경일 태극기 게양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되어 버린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은 한 국가의 지속가능성 제고를 위한 국민 개개인을 대상으로 한 장기적 차원의 공공 캠페인 과제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조그만 태극기 붙이기 프로젝트
공공 커뮤니케이션 원칙 28. [공공가치 복원 및 확대]
공공 영역에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을 보면 꾸미지 않은 방식과 꾸며내는 방식이 있다. 전자는 작고 소박하며 호흡이 길다. 후자는 크고 화려하며 호흡이 짧다.
단기간의 국민운동은 후자에 속한다. 대형 태극기로 퍼포먼스하고 관심을 유도하는 것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관심은 곧 사라진다. 태극기를 일곱 번의 국경일 외에도 연중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일상의 연결고리가 약하기 때문이다.

태극기가 365일 국경일에도 외면받고 오히려 4년에 한 번 스포츠 이벤트 때만 부각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기 암시요법 창시자 에밀 쿠에(Emile Coue)가 강조했던 [긍정적 상상의 힘]으로 애국심을 묘사해보자. 불안과 좌절, 의욕 상실의 시대에 중요한 것이 ‘자기암시’다. 애국심은 자존감을 느끼는 국민이 국가 안에서 긍정적 자기 역할을 상상하는 것이다.
이런 시민의식 함양을 위해 필요한 자기암시 매개 소재가 국기다. 이는 어느 국가나 마찬가지다.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 골프대회를 우승한 양용은 선수가 들어 올린 태극기가 부착된 캐디 백, 메이저리그 중심 타자로 우뚝 선 추신수 선수가 배트 끝에 붙인 작은 태극기를 떠올려 보자.
이후 프로 선수들의 개인 장비에 작은 태극기를 부착하는 것은 일상이 되었다. 그들은 태극기를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상의 도구에 붙였다. 그리고 끊임없이 긍정적 자기암시를 했을 것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행복한 상상이다.

특정일에 국기를 달거나 외면하는 수동적 행동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과 평소 개인이 사용하는 도구와 일상 공간에 작은 태극기를 붙여 보자는 제안이 [조그만 태극기 붙이기]라는 공공 커뮤니케이션 프로젝트다.
스스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민]이란 행복한 상상에 관대하도록 조력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목표였다. 이런 긍정적 자기암시에 태극기를 활용해 보기 위해 도로명 주소판 위 조그만 태극기가 부착되었다.
2015년 당시 군복에 태극기를 붙이자는 제안 또한 같은 맥락이다. 군복에 태극기를 붙이는 순간 그들에게 [국가대표]라는 말을 쓰는 것이 어색하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훈 상징 찾기. 끝까지 찾아야 할 태극기
공공 커뮤니케이션 원칙 29. [역사성, 현장성 그리고 작은 차별성에 주목]
2020년은 6·25전쟁 70주년이 되는 해였다. 70년의 시간 동안 국민들은 무엇을 기억하고 있었을까? 공공 커뮤니케이션은 특정한 시점에 찾아야 할 상징을 찾아내고 그것을 공유하는 행위를 통해 [공공 가치를 보존]하는데 일조하는 것을 활동 목표로 한다.
매년 6월에 공유해야 하는 공공의 가치는 보훈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훈의 의미를 공유하고 나누는데 어떤 상징이 그 역할을 수행 하고 있을까. 대중매체를 통해 우리 사회 의견지도자의 왼쪽 가슴에 달린 ‘나라사랑 큰나무’ 배지가 대표적일 것이다.
그런데 일반 국민은 온전히 상징을 이해하거나 다른 이와 그것을 공유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이런 문제를 인지했다면 세대를 관통하면서 공중의 참여와 직관적인 가치 나눔이 가능한 상징을 찾아내 동의를 구하는 도전이 이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보훈의 의미 그 이상의 가치를 확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한 누군가만 달고 다니는 보훈의 상징이 아닌 젊은이들도 달고 다니거나 친구들과 나누고 싶어 할 무언가를 찾고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
그 상징 안에 스토리를 담아내야 공감을 얻을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추상적인 가치를 상징에 담아내려고 시도하기보다 현장과 현상을 관찰하고 발견하려는 자세가 요구된다.
그래서 찾은 상징이 미래 세대들도 계속 찾아야 할 태극기, 다시 말해 [끝까지 찾아야 할 태극기]라는 개념이었다.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앞으로 수 백 년 동안 계속 찾아야 할 태극기를 찾는 작업 자체가 공공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적 취지와 맞물려 있었다.
국민이 발견한 공공 디자인 요소를 국가보훈처가 그대로 수용해 대국민 캠페인으로 완성해 낸 것이 [122,609 끝까지 찾아야 할 태극기]다. 태극기의 숫자 12만 2609(2020.4.기준)는 6·25전쟁 당시 전사한 호국 용사 중 아직도 시신이 수습되지 못한 유해의 숫자였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지금도 전국 주요 격전지에서 호국 용사의 유해를 발굴하고 있다.
그 유해의 수습 현장 모습 속에서 보훈의 상징이 될 수 있는 또 하나의 태극기를 발견했다. 현재 진행형인 유해발굴 현장에서 유골함에 태극기를 도포한 이후 경의를 표하며 내려다볼 때 우리의 시선이 마주하게 되는 태극기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그 시선에 들어오는 태극기 자체를 고스란히 상징화했다. [다시 찾은 태극기] [세대를 관통하는 존경의 태극기] [정치를 뛰어넘어 모두가 역사를 통해 국가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국기]에 관한 인식 제고와 의식 회복에 충분히 역할을 했다.

나만의 독도 바라보기. 창문 속 독도 프로젝트
공공 커뮤니케이션 원칙 30. [꾸밈없는 진짜 콘텐츠의 활용]

독도 사진 작품 하나가 있다. 독도의 날 우리가 가장 다양하게 공유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커뮤니케이션 활동은 무엇일까. 독도 그 자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공유해 보는 것 아닐까.

공중의 시선 위에 작품 하나를 가져다 놓으니 모든 창문 속에 진짜 독도가 놓이고 창 자체가 새롭게 디자인되었다.
[현실적 상상을 디자인하다]라는 명제에 부합되는 캠페인이 만들어진 것이 독도의 날(10월25일)에 제작했던 독도 스티커다. 그런데 이 스티커는 동일한 단 하나의 스티커지만 누가 어디에 어떻게 붙이냐에 따라 자신만의 독도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또한, 작은 스티커지만 사진 작품을 활용한 실사 스티커였다.
그 결과 누군가에게는 하늘이 동해가 되었다. 지하철 창문을 통해 한강이 동해로 보이기도 했다. 독도 사진 한 장이 수많은 사람의 상상을 기반으로 현실에 투영될 수 있도록 했다.


일상 속에서 진짜 독도를 만나고 바라볼 수 있도록 한 [창문 속 독도] 캠페인은 일상에서 독도를 만날 수 있는 간단한 실천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
명망 있는 작가와의 협업프로젝트였지만 화려하지 않은 겸손한 작품 공유의 철학을 실천한 사례다. 그래서 공공 커뮤니케이션에 요구되는 작가와의 협업 자세의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