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박주범 기자 | 한 달도 남지 않은 부활절을 계란 없이 보내게 되는 것은 아닌지 고심할 정도로 미국에서는 유례없는 계란 품귀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공급망 중단, 지속적인 조류 독감 발병, 새로운 규제 변화 등의 복합적 요인으로 지난해 가격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급등하면서 계란 값은 미국인들에게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도매업체들이 이전 몇 년 간 12개당 2달러를 지불하던 계란 값을 8달러 이상을 지불하고 있는 상황에서 2016년 설립된 인기 스킨케어 브랜드 디오디너리(The Ordinary)가 브루클린 기반의 아트그룹 미스치프(MSCHF)와의 협업으로 뉴욕시 매장 두 곳에서 ‘일반 가격 계란’을 판매해 화제가 되었다.
디오디너리는 3월 22~23일경 인스타그램에 계란 사진과 함께 “뉴욕시에 계란이 필요하다고 들었어. 이번 주말 뉴욕 매장에서 일반 가격(ordinarily priced)의 계란 12개를 3.37달러에 구매할 수 있음. 장식이 달리지 않은 그냥 계란이고, 재고가 있는 동안만 판매함”이라는 게시물을 올렸다.
뉴스위크 등의 보도에 따르면 이 게시물은 빠르게 퍼져나갔고, 순식간에 10만 개의 ‘좋아요’를 받았다. ‘멤와르 월드(Memoir World)’라는 인스타그램 계정이 디오디너리 매장에서 계란을 산 후 올린 인증샷 릴도 450만 번 이상 조회되었다고 한다.
고객 1인당 두 상자로 구매가 제한되었는데, 한 틱토커는 방문한 매장에서 계란이 모두 매진되었다는 영상을 공유했다. 단, 이 틱토커는 미리 매장에 전화를 해 두었기 때문에 직원이 남겨 둔 두 상자를 받을 수 있었다.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은 디오디너리의 게시물에 “뷰티 브랜드까지 저렴한 식료품을 제공한다는 사실은 슬프지만 많은 사람들이 감사하고 행복해할 것이다!”, “인플레이션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계란을) 구매하고, 이미 돈많은 인플루언서들의 미용 도구로 사용 되지 않기를 바란다” 등의 댓글을 달며, 디오디너리의 계란 판매를 칭찬했다.
이렇게 소셜 미디어에서 큰 호응을 얻은 이벤트였지만, 일각에서는 스스로를 ‘비건 회사’로 홍보해 온 디오디너리가 계란을 판매하는 것이 맞지 않다는 비판도 나왔다.
그동안 디오디너리는 비건 브랜드로 동물 학대를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그들의 계란 판매는 화가 나고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한 소셜미디어 사용자는 디오디너리의 게시물에 “나는 디오디너리가 동물 학대를 반대하는 비건 브랜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구매해 왔다. 계란 산업은 동물 학대 없이는 힘든 데, 당신들은 비건 브랜드인가?”라고 댓글을 달았다.
또 다른 소셜미디어 사용자는 “디오디너리 제품이 동물 학대 없는 비건 화장품이라는 사실은 어떻게 할 건가요? (이번 행사는) 당신들의 모토를 뒷받침하지 않는다. 실망스럽다”라고 적었다.
디오디너리 웹사이트의 성명에 따르면, 이 브랜드는 세계 최대 동물권 보호단체 PETA에서 비건 인증을 받았다.
뉴욕의 유명 스타일 잡지인 더컷(The Cut)도 디오디너리의 계란 판매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것이 훌륭한 마케팅 전략이라 보기보다 실망스럽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디오디너리는 히알루론산과 니아신아마이드 세럼과 같이 10달러 미만의 저렴한 제품 덕분에 인기를 얻었고, 제품 가격이 지나치게 비싼 뷰티 시장에서 브랜딩을 최소화하고 활성 성분만 사용해 생산 비용을 낮게 유지함으로써 저렴한 제품을 고수해왔다.
그런 회사가 이와 동일한 사업 전략을 사용해 계란 12개 들이 상자를 식료품 체인점인 트레이더조스보다 2달러 저렴하게 판매했다. 일부 슈퍼마켓에서 계란 12개 한 상자는 최소 10달러에 달하기도 한다.
이번 이벤트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디오디너리의 계란 판매가 일종의 ‘PR 스턴트’로 보인다며, 디오디너리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브랜드 MSCHF가 태그된 것을 본 순간 놀림 받은 느낌이 들었다고 말한다.

더컷은 몇 년 전 바이럴 된 바 있는 ‘빅레드부츠(big red boots)’ 사례를 언급했다. ‘아톰 부츠’라는 별칭을 가진 이 제품 바이럴 사례도 MSCHF이 주도해 만들어낸 PR 스턴트였다고 한다.
빅레드부츠는 2023년 뉴욕 패션위크에 MSCHF가 출시한 빨간 고무부츠로, 유명인이나 인플루언서들의 SNS에 힘입어(신고 벗기 힘들어 신발이라고 하기 어려움에도) 리셀 가격이 4배 이상 폭등(한 때 2300불 이상)했고, 바이럴을 이용한 장난 아니냐는 비난이 나왔다.
트롤링(공격적 반응을 유도하기 위한 도발 행위)에 전념하는 이 회사와 이번 계란 스턴트가 꽤 비슷한 느낌이라는게 더컷의 주장이다.

패션·아트·문화 저널리스트 스칼렛 뉴먼(Scarlett Newman)은 문제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공유하면서 이번 스턴트가 얼마나 무신경한지 지적했다. “그들이 정말로 누군가를 돕고 싶었다면 (맨하탄 대신) 브롱크스 같은 저소득층 지역에 계란을 공급해야 했다”고 스칼렛 뉴먼은 꼬집었다.
더컷은 그녀의 지적은 타당하지만 디오디너리가 실제로 위기에 처한 NYC를 돕는 것에 대해 전혀 걱정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꼬집었다. 그들은 단순히 바이럴 되는 순간을 찾고 있었을 뿐이고, 그것을 얻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