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김경탁 기자 |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브랜드 평판’ 쌓기는 매우 오랜 시간과 아주 많은 돈이 드는 작업이지만, 별 생각 없이 내놓은 공식 메시지 하나와 섣부른 후속대응 때문에 기껏 쌓아놓은 브랜드 밸류에 큰 상처를 입는 경우가 있다.
일례로, 글로벌 교육플랫폼 디지털디파인드(Digital Defynd)가 올해 업데이트한 ‘역대 마케팅 실패 사례 분석 톱10’에서 두 번이나 이름을 올려 눈길을 끈 버거킹의 한국법인은 뉴와퍼 출시 마케팅의 일환으로 벌였던 ‘와퍼 판매 종료’라는 노이즈 캠페인으로 평판 저하를 경험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4월 젠더 이슈에 섣불리 뛰어들었다가 불어온 역풍과 어설픈 대응으로 미국시장 점유율 1위에서 3위로 추락한 맥주 브랜드 버드라이트(버드와이저의 라이트 버전) 사례가 최근 재조명되고 있기도 하다.
버드라이트는 트렌드젠더 인플루언서를 협찬(?)했다가 중장년 남성들로부터 역풍이 불자 마케팅 담당자를 경질하면서 성소수자단체까지 적으로 만들었다. 후폭풍은 여전히 남아 2위와의 격차가 계속 벌어지는 상황인데, 2위 브랜드가 같은 회사 소유라는게 그나마 위안거리다.
광고 전문지 애드에이지(AdAge)는 7월 10일자 기사에서 2024년 상반기까지 최대의 브랜드 마케팅 실패 사례 8가지를 소개했다. 이보다 앞서 비영리·스몰비즈니스 전문 웹에이전시 엠바크(embark)도 올해 6월초까지 현재 시점 최대의 브랜드 실패 사례 4가지를 꼽아 자사 홈페이지에 올렸다.
애드에이지와 엠바크가 꼽은 브랜드 실패 사례들을 모아봤다.
※ 애드에이지의 8대 브랜드 실패


1. 애플 반달리즘에 다시 보게 된 삼성·LG
더피알도 보도했던 애플의 아이패드 프로 신제품 프로모션 이미지 광고 ‘Crush’가 첫 손에 꼽혔다. 수많은 고가의 창작 관련 물건·도구들을 산업용 분쇄기로 박살내서 아이패드 프로를 만드는, ‘말이 그렇다’의 그 ‘말’을 굳이 실천해서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애드에이지가 단독 입수했다는, 사과인 듯 사과 아닌 독점 사과로 기억되는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삼성의 품격 있고 따뜻한 맞대응 광고가 화제를 모았고, LG전자에서 16년 전에 동일한 컨셉의 광고를 불쾌하지 않게 만들었던 사례가 재조명되기도 했다.

2. 데이트 서비스 ‘범블’의 독신자 공격 자해
데이팅앱 범블은 지난 5월 ‘독신 서약은 답이 아닌 걸 너도 잘알아’라는 메시지를 담은 옥외광고 캠페인을 진행했다가 시대착오적이고 건방지다는 비판을 받았다.
여성에게 힘을 실어주기 보다 섹스와 관계를 강요하는 느낌이라는 비판이 쇄도했고 결국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3. 토이저러스, 불쾌함의 골짜기에서 PR 스턴트
장난감 프랜차이즈 토이저러스는 “챗GPT로 생성형 AI시대를 연 오픈AI의 ‘텍스트 투 비디오’ 서비스 소라로 만든 최초의 광고”라는 타이틀의 영광과 동시에 ‘언캐니 밸리’(불쾌함의 골짜기)를 넘지 못한 미완성 서비스로 소비자들을 불쾌하게 만들었다는 불명예를 함께 얻었다.
시러큐스 대학교 SI 뉴하우스 공공 커뮤니케이션 대학원의 셸리 팔머 교수는 “좀비 브랜드인 토이저러스가 오픈AI의 새로운(아직 출시되지도 않은) 서비스 소라로 만든 ‘최초의 브랜드 필름’(이름하여 광고)을 뽐냈다”고 비꼬면서 이 광고 영상 공개를 ‘PR 스턴트’로 규정했다.


4. BMW 허언으로 잃은 신뢰…현대차가 대신 수습
@reesamteesa(리사 티사, 본명 테레사 존슨)는 엽기적인 전남편 이야기(Who TF Did I Marry)로 세계를 사로잡은 유명 틱톡커다. 그가 ‘새 차를 사주겠다’는 약속을 안지킨 전 남편을 험담한 영상에 BMW 브랜드 채널이 댓글 영상을 달았다.
BMW X5 신차를 선물하겠다는 것처럼 보였고, 팬들로부터 열광적인 반응이 이어졌지만 어느순간 댓글 영상은 삭제됐다. 영상을 올렸던 리사 티사는 끝내 차를 받지 못했다고 후일담을 남겼다.
지난해 불탄 차에서 멀쩡하게 살아남은 텀블러를 업로드한 틱톡커에게 실제로 차를 사준 텀블러 브랜드 스탠리 사례를 연상시켰고, 마음의 상처를 입은 리사 티사에게 자사 자동차를 1년 무료 대여해준 현대자동차의 등장으로 BMW는 더 큰 이미지 추락을 겪어야했다.

5. 오픈AI의 절도 미수, 혹은 미수 의혹
2013년 영화 ‘그녀(Her)’는 인공지능이 대중화된 세상을 10년 앞서 보여줬고 사람들이 더 쉽게 생성AI를 받아들일 수 있게 했다. 오픈AI가 챗GPT엔진을 이용한 음성 비서에 영화에서 인공지능 목소리 연기를 맡았던 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를 쓰고 싶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픈AI는 스칼렛 요한슨에게 목소리 사용을 요청했고, 거절을 당했고, 비슷한 목소리를 찾아내서 비슷한 목소리로 서비스를 만들어 연초에 출시했다. 타인 소유 지적재산을 학습해서 원래 것과 비슷한 결과물을 무단으로 만들어내는 생성AI의 위험성을 잘 보여준 사건.

6. 스탠리, 상승 후 추락이라 더 아팠다
앞의 BMW 사례에서 지난해 틱톡 미담으로 언급됐던 스탠리는 올해 1월 제품 제조 공정에 유해금속인 납이 사용된다는 의혹이 틱톡에 쏟아져 곤욕을 치렀다.
결국 진공밀봉 공정에 화학원소를 포함시켰다는 점을 인정했고, 경쟁사들에 의해 “우리는 안쓴다”는 광고소재로 활용당했다.

7. 타겟, 엉터리 역사 굿즈로 놓친 타깃
타겟(Target)은 120년이 넘는 역사의 유서깊은 생활용품 프랜차이즈다. ‘미국판 다이소’라 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 회사는 올해 2월 ‘흑인역사의 달’을 맞아 출시한 어린이 학습용 자석 키트 컬렉션에 인권 운동 지도자 3명의 이름을 잘못 표기하는 실수를 범했다.
틱톡에 오류를 지적하는 영상이 올라오고 얼마 있지 않아 제품은 철수됐지만 1분기 이후 온라인 및 매장 판매를 포함한 전체 매출 점유율이 감소세를 이어오고 있다. 점유율 감소는 뷰티를 제외한 전체 카테고리에서 진행중이다.

8. 월마트, 난사 사건에도 총기자유화는 못참지?
텍사스에 있는 월마트 매장에 판매중인 “Where the heck is Uvalde, Texas?”(텍사스 유밸디가 대체 어디야?) 문구 티셔츠가 4월 엑스 게시물로 올라왔다. 2022년 유밸디에서 벌어진 ‘롭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에 대한 희화로 받아들여졌고 월마트는 즉각 사과했다.
월마트는 2019년 텍사스 엘패소 매장에서 벌어진 총기난사사건의 무대이기도 한데, 이 사건 직후에도 온라인 매장에서 “Gun control is being able to hit your target”(총기 규제로 타깃을 맞출 수 있다)라는 문구 티셔츠 판매로 총기 문제를 희화화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월마트는 2019년 사건 이후 총기 판매를 중단하라는 압박을 받아왔고 일부 탄약 탄종에 대한 판매중단과 권총 판매 중단, 매장 내부에서의 공개적 무장(오픈캐리) 금지 등 총기관련 정책을 강화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꽤 큰 규모의 매출을 총기 판매로 올리고 있다.
※ 엠바크가 뽑은 4대 브랜드 실패

1. 카이트베이비, 육아용품 회사의 육아 혐오(?) 역풍
대나무 소재로 만든 아기옷과 슬리핑백 등을 취급하는 유아의류·액세서리 브랜드 카이트베이비(Kyte Baby)는 한 직원이 새로 입양한 아기가 신생아집중치료실(인큐베이터)에 있는 동안 원격근무를 하겠다는 요청을 거부했다.
소식이 전해지고, 연초부터 충성고객들로부터 격렬한 불매운동에 시달린 회사 창립자는 틱톡에 두 차례나 사과 동영상을 올려야했다. 첫 번째 올린 사과 동영상이 대본을 읽는 느낌에 무성의하다는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측은 이 사건을 계기로 출산육아 지원 정책을 수정하겠다고 다짐했는데, 이 브랜드의 충성고객들이 격렬한 반감을 표출한 이유에 대해 업계에서는 아기가 인큐베이터에 들어가는 정도의 위기상황에서도 유연근무를 선택할 수 없다는 좌절감이 그들을 자극했다고 해석했다.
엠바크는 브랜드 전략에서 성실성과 일관성의 중요성을 지적하면서 “핵심 가치를 고수하는 것은 도덕적 의무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브랜드 충성도와 신뢰를 보호하는 전략적 명령이기도 하다”고 꼬집었다.

2. 켈로그의 ‘저녁 시리얼’ 제안…분위기 파악 좀 하지?
켈로그의 게리 필닉 CEO는 2월 21일 CNBC의 아침뉴스 토크 프로에 출연해 사회문제인 ‘식료품비 상승’ 해결책으로 저녁에도 시리얼을 먹으라고 제안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발상 자체가 어이없기도 하지만, 켈로그가 식료품비 상승의 주범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켈로그는 2022년부터 저녁에 먹는 시리얼을 홍보하는 동시에 지난 2년 동안 제품 가격을 17.1% 상승시켰다. 이 사실이 공론화된 끝에 4월 1일부터 켈로그 브랜드 전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시작됐다. 3개월 동안 불매를 통해 제품 가격 25% 인하를 압박하는 것이 목표다.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마케팅을 하지 않으려면 청중을 깊이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 엠바크는 “오늘날 소비자는 기업의 동기에 대해 점점 더 회의적이고 목소리를 높인다”며, “브랜드 가치와 행동 사이의 불일치는 빠르고 광범위한 반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3. 초콜릿은 없는 윌리의 초콜릿 체험…참혹한 현실 버전?
환상적 이미지에 잔혹한 이야기를 담은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18년 만의 프리퀄 후속작이자 티모시 살라메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웡카’가 전 세계적 흥행을 기록하던 2월 말,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윌리 웡카의 초콜릿 공장’에 대한 테마 체험관이 열렸다가 대규모 환불 사태를 야기했다.
주최 측은 ‘마법의 정원’, ‘황혼의 터널’, ‘상상력 연구소’ 등을 포함한 다양한 테마의 체험관을 마련해 사탕 테마의 판타지 세계를 조성했다고 홍보했고, 입장료는 1인당 35파운드(약 5만9000원)에 달했지만 참가자들이 기대했던 영화 같은 화려한 이미지는 어디에도 없었고 초콜릿도 주지 않았다.
SNS 사진에 담긴 부족한 조명과 조잡한 장식 등 열악한 행사장 내부 모습은 버려진 창고보다 나을 게 없다는 혹평을 받았다. 행사장에서 눈물을 터뜨린 아이들이 있었고, 분노한 관람객들이 환불을 요구하며 경찰을 부르기까지 했다.
비루한 이미지에 담긴 잔혹한 이 이야기에 대해 엠바크는 “고객을 실망시키지 않으려면 마케팅 메시지를 실제 제품이나 서비스 경험과 일치시켜야 한다”며 자기들이 그걸 해낼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면 약속 수준을 낮추고, 약속한 것을 실제로 제공하라고 조언했다.

4. 제프 잭슨 하원의원, 키워준 틱톡을 배신했다?
‘틱톡 스타’로 알려진 제프 잭슨 하원의원이 미국 의회에서 추진된 ‘틱톡 금지법’에 찬성표를 던졌다가 비난의 대상이 됐다. 노스캐롤라이나 주의원 재임 시부터 소셜미디어 활동으로 얻은 인기와 선거자금을 기반으로 2022년 지역 하원의원에 당선된 그의 틱톡 팔로워 수는 250만명이었다.
금지법 찬성 소식이 전해지자 팔로우 취소가 이어졌다. 현재 팔로워 수는 220만명대. 최대 30만명 가까이 떠나간 것이다. 그의 채널에 올라와있는 마지막 영상에는 “but what app are you using?”(당신이 쓰고 있는 앱이 뭐지?)라는 댓글이 도배되고 있다.
제프 잭슨 의원 사례에 대해 엠바크는 “브랜드와 대중적 인물은 자신의 행동과 청중에게 투사하는 이미지 사이의 일관성과 일치를 유지하는 것을 우선시해야 한다”며 “일관성에서 벗어나, 위선적이거나 이기적이라고 여겨지는 경우 신뢰와 신용을 잃을 수 있다”고 충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