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문용필 객원기자 | 브랜딩이라는 측면에서 최근 눈에 띄는 국내 기업들의 움직임 중 하나는 바로 CI(Corporate Identity)의 교체 혹은 리뉴얼이다. 사실 특정 기업이 CI를 교체했다는 소식 자체는 늘 존재해 온 터라 크게 신선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수십 년 이상의 업력을 지닌 중견, 대기업들이 자사의 오래된 CI를 바꾸는 케이스가 유독 최근 들어 많이 보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간 오랜 기간 소비자들에게 익숙해진 CI를 바꾸는 것은 기업으로서 단순히 디자인 변화와 브랜딩의 차원을 넘어서는 결단이다. 마케팅 전문가인 조명광 디트리스 대표는 “과거의 주력 업종에서 신성장 산업으로 확장하면 예전의 CI가 갖고 있는 한정적인 함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경우가 있다”며 혹은 기업 자체에 큰 이슈가 있거나 부정적인 이미지를 쇄신하고자 할 때 CI를 교체하는 케이스가 있다는 설명이다.
물론 가장 보편적인 CI 교체 이유는 기업 이미지의 ‘리뉴얼’이다. 조 대표는 “시대가 변하면 그 시대가 원하는 디자인상이 있기 때문에 올드한 CI를 조금씩 바꾸는 경우가 있다. 가장 기본적인 이유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업종 불문한 다양한 기업들의 CI 교체
전문가들이 생각하는 통상적인 기업 CI 교체 주기는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10년 정도다. 이런 측면에서 생각하면 무려 50여 년 만에 새롭게 CI를 선포한 종근당의 경우에는 눈여겨 볼만 한 사례인 셈. 기존의 CI에서 심볼과 서체, 색상에 변화를 주어 글로벌 지향의 이미지를 강조했다. 종근당은 올해로 창립 84주년을 맞이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활용될 영문 CI의 경우엔 영문 기업명을 ‘ChongKunDang’을 ‘CKD’로 축약했다. 종근당 하면 생각나는 ‘종’ 모양의 심볼은 기존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크게 키워 종근당의 상징을 부각하고 서체의 경우엔 자체 개발한 ‘종근당 미래체’를 적용했다.
지난해 창립 100주년을 맞이한 삼양그룹은 지난해 10월 새로운 기업 소명, 미래 비전과 함께 새로운 CI를 공개했다. 세계적인 브랜드 디자이너 네빌 브로디와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새 CI에는 글로벌 시장을 향한 미래 의지를 담았다. 100년의 역사를 통해 축적된 기술력과 전문성을 갖춘 자신감을 ‘SAMYANG’이라는 글씨에 담아내기 위해 정교한 타이포그래피 바탕의 로고로 디자인했다는 설명이다.
노래방 반주기로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TJ미디어도 지난달 창립 34주년을 맞아 20년 만에 CI를 전면 교체했다. 8분음표를 모티브로 제작된 새 CI에는 ‘목표를 향한 우상향의 성장 의지’를 담았다. 스카이블루를 새로운 상징색상으로 하고 전용 서체인 ‘TJ 노래하는 즐거움체’도 공개했다.
윤나라 TJ미디어 대표는 이번 CI 교체 등과 관련해 “단순한 외형 변화가 아닌 TJ 브랜드가 본격적으로 전환점을 맞이했다는 선언이자 다짐”이라며 “이제 TJ는 노래방을 넘어 노래가 있는 곳 어디든 함께하는 브랜드로서 노래 문화를 선도하고, 전 세계 모든 이들이 TJ를 통해 자유롭게 노래하는 세상을 만들어가겠다”라는 포부를 나타냈다.

남양유업도 지난 3월 새로운 CI를 발표했다. 자사의 대표 브랜드인 ‘맛있는 우유GT’ 제품 로고에서 착안했는데 부드러운 곡선형 폰트를 적용해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보다 유연하게 대응하겠다는 기업의 방향성을 담고 ‘스마일’하는 입 모양을 형상화해 ‘하루의 건강한 시작을 여는 남양유업 제품을 담는 그릇’과 ‘맛있는 제품을 통해 지어지는 고객의 웃음’을 형상화했다.
이와 관련, 남양유업 본사에서 열린 설명회를 통해 김승언 남양유업 대표집행임원 사장은 “새롭게 선보이는 CI와 슬로건 ‘건강한 시작’은 소비자 신뢰 회복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변화의 출발점”이라고 밝혔다. 앞서 남양유업은 지난해 1월 최대 주주가 한앤컴퍼니로 변경됐으며 그해 3월 신규 이사회를 구성하며 새롭게 출발한 바 있다.
최근 CI를 교체한 기업 중 가장 주목을 받은 사례는 아마도 대한항공일 것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플래그십 항공사가 41년 만에 CI를 교체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이슈가 될 뿐만 아니라 국내 항공업계 양대 산맥이었던 아시아나 항공 인수가 마무리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11일 본사 격납고에서 열린 ‘라이징 나이트(Rising Night)’ 행사를 통해 공개된 새로운 로고는 기존 마크에 디자인적인 요소를 가미해 세련된 이미지를 구현했다는 설명이다. 특히 대한항공을 상징하는 태극 심벌의 경우, 절제된 표현 방식으로 현대적인 이미지를 구현해 통합 항공사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모던함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블루와 레드가 조화를 이뤘던 이전 심벌에서 벗어나 ‘대한항공 다크 블루’ 단색을 사용한 점도 눈에 띈다. 로고 타입 ‘KOREAN AIR’ 디자인의 경우엔 서체 끝에 적용된 붓터치 느낌의 마무리와 부드러운 커브, 열린 연결점 등으로 한국식 우아함을 현대적으로 표현했다고 회사 측은 전했다.
심플해지는 CI 디자인, 과연 최선일까
대한항공의 새로운 CI는 최근 글로벌 기업 CI가 점차 간결해지고 있는 경향성과 맞닿아 있다.
일례로 BMW의 경우엔 지난 2020년 로고를 교체했는데 큰 틀은 유지하면서도 입체적인 음영을 지우고 간결하고 평면적으로 바뀌었다. 람보르기니도 지난해 한층 평면적인 모습의 새 로고를 공개한 바 있다. 글로벌 핀테크 기업인 페이팔도 기존의 파란색에서 벗어나 보다 심플해진 느낌의 새로운 로고를 지난해 발표했다.
이러한 경향성과 관련, 박영하 프럼 CCO(Chief Creative Officer)는 “(CI의) 적용성과 시인성 때문이다. (마케팅) 환경 자체가 디지털로 점점 더 넘어가고 있는데 예전처럼 세밀하고 전통적인 로고들은 (디지털 환경에서) 시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서 점점 단순화되고 미니멀화된다”고 봤다. 조명광 대표 역시 “오프라인에서의 3D 개념보다 디지털은 평면적이다 보니 (기존) 오프라인 중심의 CI를 디지털 중심으로 바꾸는 것이 추세”라고 전했다.

비단 이같은 마케팅적인 전략이 아니더라도 시대마다 달라지는 산업과 소비 흐름의 변화에 따라 기업이 자사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CI를 리뉴얼하거나 바꾸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전면적인 교체가 아니더라도 조금씩 CI 디자인에 변화를 주는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하지만 너무 과감한 변화는 때로는 논란이 되기도 한다. 특히 수십 년간 지속돼 온 CI를 바꾸면 브랜드 로열티를 가진 팬들은 물론, 해당 CI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에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박영하 CCO는 “모든 브랜드의 리뉴얼에는 처음에는 거부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거부감의 정도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선 어느 정도는 기존의 (브랜드) 헤리티지를 계승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영국의 명품브랜드 버버리는 지난 2018년 CI 서체를 기존의 클래식한 디자인에서 별다른 장식 없는 ‘산 세리프’체로 바꾸고 ‘이퀘스트리언 나이트’(Equestrian Night)라는 상징적인 로고도 제외했지만 2023년 로고를 복원하면서 헤리티지 정체성이 다시 강조된 바 있다.
박 CCO는 “하지만 리뉴얼이 없다면 올드한 이미지가 지속되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선 CI 리뉴얼이) 당연히 필요하다”면서도 “(CI를) 완전히 뒤집어 버린다면 (소비자들의) 거부감은 당연히 강할 수 밖에 없다. 특히 국내에서 그런 경향이 좀 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조명광 대표는 “기존 CI가 가진 친근감 같은 이미지가 있는데 이를 너무 혁신하면 이미지 자체가 손상될 수도 있다”며 ”한눈에 봐도 ‘이 브랜드’라는 CI가 있었는데 바꾸고 나서는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오면 (자칫) 대표성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을 조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한항공이나 종근당이 수십 년 만에 새로운 CI를 발표하면서도 기존의 로고 디자인을 완전히 바꾸지 않은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CI를 교체하고 발표하는 것만으로 리브랜딩 작업이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다. 조 대표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CI를 바꾸고 나서 이어 대한 지속적인 마케팅을 안하는 경우도 있다“며특정 산업 관련 계열사들을 묶어 통합 브랜드를 만들고 이를 잘 알리지 않는 사례를 꼽았다. 각 계열사들의 이름에 익숙한 소비자들에게 오히려 불편함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오히려 소비자들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박영하 CCO는 ”(CI) 리뉴얼 이후 새로운 로고 등에 대한 디자인적 설명은 있지만 리뉴얼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정확히 공표하는 것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며 ”어떤 이유가 있거나 이러한 니즈를 반영하거나, 혹은 이런 이슈가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리뉴얼했다는 점을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제일 중요한 것은 타임리스(Timeless)한 디자인“이라며 ”현재의 트렌드를 너무 의식하기 보다는 시간이 지나도 (소비자들이 보기에) 덜 질리는 디자인을 추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나타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