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 매거진

브랜드와 헤어질 결심

유사 충성에 가려진 이탈의 징후, 충성은 착각일 수 있다
떠나지 않은 고객은 충성하는가… 브랜드 관계 다시 묻기
하나금융연구소의 보고서 '헤어지지 못하는 손님, 떠나갈 수 없는 브랜드'

  • 기사입력 2025.05.20 13:25
  • 기자명 김경탁 기자

더피알=김경탁 기자|그들은 이렇다 할 불만도 없이 떠난다. 마지막 인사도 없다. 피드백을 남기지도 않는다. 브랜드는 여전히 충성 고객이라 믿지만, 고객은 어느새 타 브랜드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

'충성 고객'이라는 표현은 매력적이다. 많은 브랜드들이 이를 얻기 위해 리워드, 멤버십, 맞춤형 콘텐츠를 쏟아낸다. 하지만 과연 그 고객은 브랜드에 애정을 갖고 머무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이탈할 이유를 아직 못 찾았을 뿐일까.

하나금융연구소의 최신 보고서 '헤어지지 못하는 손님, 떠나갈 수 없는 브랜드'는 브랜드가 믿고 의지하던 '충성 고객'이 사실은 떠날 기회를 찾고 있던 유사 충성 고객일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들춰냈다. 그리고 PR·마케팅 실무자들에게 하나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 고객, 정말 나와 함께하고 싶은 걸까?’

챗GPT 생성 이미지
챗GPT 생성 이미지

이탈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소비자의 60%가 최근 3년간 주거래 은행을 조용히 이탈한 경험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의 이탈의 이유가 ‘불만족’이 아니라는 데 있다. 고객의 절반은 단지 이사, 지점 폐쇄, 조건 비교 같은 상황적 이유로 거래를 끊었고, 애초에 브랜드에 특별한 애착이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현상은 단지 금융업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제품은 쏟아지고 서비스는 넘쳐나는 시대, 고객은 쏟아지는 선택지 사이에서 그저 ‘머무르고 있는’ 상태일 뿐이다. 떠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충성을 가정하는 것은 위험한 착각이다.

브랜드는 종종 고객의 반복 구매 행동을 충성의 증표로 여긴다. 그러나 보고서는 충성도를 행동(재이용)과 태도(정서적 애착)의 두 가지 차원으로 나누고, 두 축이 모두 갖춰졌을 때에만 진정한 충성이 성립한다고 설명한다.

애착 없는 반복 구매는 ‘유사 충성’에 불과해서, 이 카테고리의 고객들은 기회만 되면 조용히 이탈한다. 특별한 갈등이나 불만도 없기에, 브랜드는 그들이 이탈했음을 나중에서야 깨닫는다. 아무 문제없이 잘 이어지는 관계라 믿었던 순간, 관계는 균열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충성도 착시가 만들어낸 브랜드 리스크다. 영화처럼 파국은 느닷없이 오지만, 그 징후는 오래전부터 이어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혜택에서 경험으로, 다시 정체성 공유로

디지털 기술이 가져온 투명성과 편의성은 고객의 전환 장벽을 낮췄다. 브랜드 간 정보 비교는 쉬워졌고, 대체재는 차고 넘쳐난다. 이 상황에서 브랜드는 단순히 기능이나 혜택만으로는 고객을 잡아두기 어렵다.

그래서 보고서는 브랜드 충성의 핵심이 ‘혜택’에서 ‘경험’으로, 다시 ‘정체성 공유’로 옮겨갔다고 말한다. 로열티 프로그램은 이제 단순한 리워드 적립 시스템이 아니라, 고객과 브랜드가 감정적으로 연결되는 설계 구조여야 한다는 것이다.

AI를 활용한 맞춤형 보상, 게임화된 몰입 설계, 지속가능성 가치를 공유하는 감정 기반 리워드 등은 단기적 혜택을 넘어 브랜드와 고객 간의 정서적 유대를 만드는 장치다.

보고서는 하나은행의 시니어 전용 프로그램 ‘하나 더 넥스트’를 그 대표 사례로 제시했다. 맞춤형 1:1 상담 경험은 고객에게 “이 브랜드는 나를 안다”는 감정을 주고, 이것이 곧 헤어질 결심을 막는 브랜드의 힘이 된다는 설명이다.

충성도 측정의 새로운 기준 ‘웰니스’

하나금융연구소의 이번 보고서에서 특히 주목되는 지점중 하나는 충성도를 ‘금융생활 웰니스’라는 개념으로 재해석한 부분이다.

충성도는 이제 단순한 만족 여부가 아니라, 브랜드와의 관계를 통해 고객이 얼마나 안정감 있게, 만족스럽게, 자신감 있게 삶을 영위하고 있는지를 측정하는 척도가 되었다고 보고서는 설명한다.

고객이 스스로 금융을 통제할 수 있다 느끼고, 브랜드를 이용하는 데서 만족을 느끼며, 시장 안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때, 해당 브랜드는 고객에게 ‘삶의 일부’로 작동하게 된다. 이런 브랜드는 고객이 헤어질 결심을 쉽게 하지 않는다.

보고서는 고객 충성도 관리의 실천 방안으로 ‘고객제표(Customer Statement)’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고객을 자산(자본고객)과 리스크(부채고객)로 구분하고, 각 고객군이 기업에 기여하는 손익을 데이터로 분석해 충성도 전략의 정량화를 가능케 하는 시스템이다.

이는 재무제표가 수익성을 보여주듯, 브랜드 관계의 지속 가능성을 시각화하는 수단으로 작동함으로써 충성도를 감정적 관계가 아닌 경영지표로 다룰 수 있게 한다.

“왜 아직 떠나지 않았는가”를 물어야

브랜드 전환을 쉽게 만드는 것은 기술이지만, 고객의 진짜 니즈를 읽고 정서적 만족을 제공하는 것도 기술이 있어서 가능해진다. AI는 고객의 소비 패턴, 생애 이벤트, 재정 상태 등을 종합 분석해 고객이 떠나기 전, ‘헤어질 조짐’을 감지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다.

생성형 AI 챗봇, 고령자 전용 디지털 케어 시스템, 사기방지 솔루션 등은 기술이 충성도를 복원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보고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하다. 고객은 언제든 이탈할 수 있고, 그 과정은 점점 더 주용하고 빠르고 예측 불가능해지고 있다. 충성 고객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머물 이유를 분명히 인식한 고객이다.

이제 브랜드가 물어야 할 질문은 달라졌다. “왜 남았는가?”가 아니라 “왜 아직 떠나지 않았는가?”여야 한다. 충성을 기대하기보다, 충성이 발생할 수 있는 맥락을 설계하고, 감지하고, 관리할 수 있어야한다.

헤어짐은 반드시 이별 통보로 오지 않는다. 관계를 의심하지 않았던 순간, 고객은 이미 다른 문을 열었을지도 모른다. PR 실무자와 브랜드 전략가는 이제 충성이라는 단어를 낭만이 아닌 측정할 수 있고 관리 가능한 리스크로 다시 정의할 필요가 있다.

행여나 ‘왜 떠났는가’를 운좋게 알게 됐다면, 그것은 고객 한 명의 이유가 아니라 브랜드 전체의 구조와 태도를 되돌아보게 하는 질문으로 작용해야한다.

고객은 항상 선택지를 가진다. 결심의 순간, 고객이 택할 이유를 갖춘 브랜드만인 선택받을 수 있다.

하나금융연구소 카드뉴스 표지
하나금융연구소 카드뉴스 표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