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혈경쟁, 학력·스펙, 페이퍼워크…공공PR ‘낡은 관행’ 여전
출혈경쟁, 학력·스펙, 페이퍼워크…공공PR ‘낡은 관행’ 여전
  • 안해준 기자 (homes@the-pr.co.kr)
  • 승인 2020.09.25 16:2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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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PR 실태 진단 ①] RFP
기술점수 평준화, 가격점수 1~2점에 입찰 당락 결정
과도한 제출서류 요구 업체 부담으로

국민 세금을 갖고 일하는 정부에게 공공PR은 국민과의 연결고리이다. 국민 생활에 필요한 정책을 알리고 설득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공공PR은 업계에서조차 케케묵은 문제가 풀리지 않는 분야로 지목된다. 이에 <더피알>은 공공PR의 문제가 뭔지 다각도에서 면밀히 짚어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는 공공PR의 출발점인 제안요청서(RFP)에 관한 이야기다. 

- 사업목적
- 과업범위와 업무내용
- 응모(참가)자격
- 평가방법 및 제출서류 

[더피알=안해준 기자] 공공입찰 제안서 평가는 아이디어나 기술 점수와 함께 가격 점수가 업체를 선정하는 중요 기준이다. 대개 발주처가 제시하는 평가 배점을 보면 기술 점수가 80~90점, 가격 점수는 20~10점 정도다. 표면적으로는 가격이 입찰에 결정적 요인이 아니지만, 기술 점수가 상향평준화되면서 현실은 가격 1~2점이 당락에 결정적으로 작용할 때가 많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업체들은 눈치작전 내지 저가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 한 에이전시 대표는 “너무 낮게 책정하면 수지가 안 맞고, 높게 쓰자니 다른 업체에서 어떻게 (단가를) 후려칠지 몰라 주저된다”면서 “예산은 적고 하는 일은 많으면 직원들도 너무 힘들어하기 때문에 꼭 따내야 하는 일이 아니면 가급적 가격경쟁은 삼가고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기술점수는 우리가 나은데 가격 때문에 후순위로 밀린 결과를 보면 기분이 정말 좋지 않다”며 “코로나로 업계 상황이 안 좋다 보니 점점 더 출혈경쟁이 이뤄지는 것 같다. 정책홍보의 주객이 전도되는 것 같아 답답한 심정”이라고 했다.

더 나아가 입찰 가격을 최저로 써내는 업체를 찾는 경우도 있다. 각 부처나 기관 사정에 따른 전략적(?) 판단이지만, 한 푼이라도 아쉬운 중소업체 입장에선 ‘열정페이’를 강요받는 기분이다.

한 예로 행정안전부 산하기관인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진행하는 ‘지반재난 관리기준 개선 연구성과 홍보동영상 제작’ 사업은 계약 대상자 선정을 제한적최저가(낙찰하한율)로 명시했다. 덧붙인 설명을 보면 ‘이 구매 건은 「(계약예규) 정부입찰·계약 집행기준」에 따라 예정가격의 88% 이상으로 견적서를 제출한 자 중 최저가격으로 견적서를 제출한 자를 계약상대자로 결정한다’는 것이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진행하는 ‘지반재난 관리기준 개선 연구성과 홍보동영상 제작’ 용역의 입찰 방법.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진행하는 ‘지반재난 관리기준 개선 연구성과 홍보동영상 제작’ 용역의 입찰 방법.

또 김포대학교가 9월에 발주한 ‘온라인 이미지 홍보 업체 선정’ 건을 보면, 예산금액도 공개하지 않은 채 ‘최저가 견적’을 내세우고 있다. 결국 가격을 무조건 낮게 써내는 업체가 선정될 확률이 높은 시스템이다.

공공용역 입찰을 다수 경험한 업계 종사자 D씨는 “최근 코로나19로 (공공PR 시장의) 경쟁은 더 심화되는데, 업체 간 아이디어는 솔직히 거기서 거기”라며 “결국 우위를 어필하려면 적은 예산으로 효율적으로 사업을 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단가를 무리하게 낮춰서 용업 업체로 선정되면 어떻게 괜찮은 성과를 내겠느냐”고 반문했다. 속된 말로 돈 준 만큼 일하기 때문에 퀄리티 있는 결과물이 나오기 어렵다.

스펙도 실력? 나이·출신학교 기재해야

서류 제출 과정에서 업무 전문성을 ‘스펙’으로 판단하는 관행도 개선돼야 할 점이다. 부처·기관을 불문하고 공공 입찰 및 제안 관련 서식을 보면 대부분 참여 인력의 프로필을 디테일하게 요구하고 있다. 연령은 물론 최종학력과 전공을 기재하는 게 기본이고, 지도교수 및 전문가 추천 등을 쓰는 란도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필수 기재항목은 아니라 해도 ‘대학교’로 써진 공란에 어느 누가 고졸 이하를 쉽게 쓸 수 있겠느냐. (공공에서) 기본적으로 대졸 인력을 전제하는 것”이라며 “업무수행력을 본다면서 나이는 왜 쓰라고 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통일부가 발주한 ‘2020 통일부 정책홍보 온라인 위탁사업’ 제안요청서를 보면, 붙임6으로 표시된 서류에 참여인력의 학력과 전공, 해당 분야 근무경력, 자격증 등을 기재하도록 돼 있다. 프로젝트 특성에 맞는 업무수행 능력을 가늠하기 위한 부가 항목이라곤 해도 학벌과 스펙 중시 문화를 바꿔보려는 사회적 분위기에는 분명 역행한다. 이와 관련해 통일부 관계 부처에 위탁업체 담당자의 학력 등을 요구하는 이유를 문의했지만 별다른 답변을 들을 수는 없었다.

정부부처 제안요청서에 포함된 참여인력 프로필과 이력사항 서류. 연령과 최종학력, 전공 등의 기재를 요구하고 있다.  

에이전시 대표 B씨는 “일반적인 홍보 실무를 진행하는 데 있어 직원들의 학력 사항이 꼭 중요한 정보인지 이해가 안 간다”며 “이런 서류작업이 인력을 채용하는 업체엔 부담이 되고 아무래도 대졸자나 관련 전공자 중심으로 채용을 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제안서 출력·방문 접수 요구, “종이값도 안나와”

온라인 시대에 굳이 ‘오프라인 페이퍼’만을 고집하는 관행도 여전하다. 몇 년 새 온라인 접수가 확대되는 추세지만 여전히 관련 서류를 종이로 출력해 현장 방문 접수를 요구하는 곳이 왕왕 있다.

일례로 환경부가 발주한 ‘2020년 상반기 기후변화 홍보 위탁사업’은 ▲제출서류(직접 방문접수, 우편접수 불가) ▲제안서 및 제안요약서 각 8부 제출을 못 박아 놓았다. 기후변화 관련 용역을 발주하면서 종이사용을 권장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인 셈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이제까지 줄곧 제출 서류는 방문접수로 받고 있다”고 했다. 분실 위험이 있기 때문에 우편접수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쉽게 말해 관행에 따른 것이다. 다만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접수 비중을 높여가고 있다고 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5~6월 이후로 방문접수 대신 이메일 등을 통한 온라인 접수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예로 서울시가 진행하는 ‘2020년도 서울시 해외 온라인 홍보 사업’도 전자입찰 후 오프라인 방문 접수다. USB를 활용한 파일은 물론 제본을 통해 제안서 및 입찰 신청서를 제출하는 방식이다. 서울시는 유의사항으로 ‘입찰참가신청서 및 제안서는 입찰시 대표자 또는 위임장을 소지한 제안기관 직원이 직접 방문 제출하여야 함(우편입찰 허용하지 않음)’라고 명시했다.

심지어 제안서 인쇄물을 제본으로 만들 것을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 받는 입장에서 번거러움을 덜려는 목적이다. 에이전시 대표 E씨는 “일부 지자체의 경우 인쇄물로 제출하라는 서류가 지나칠 정도로 양이 많아 제본이 필요한 것”이라며 “제안서에 기획 요약서, 프레젠테이션 발표 자료까지 최대 36부까지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입찰에서 탈락하면 오가는 비용은 물론 종이값도 못 건지는 실정이다.

이형민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과도한 레퍼런스, 불필요한 인쇄물 요구, 심사 방식 문제 등은 이번 정부뿐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업계에서 갖는 고충이다”며 “일을 맡기는 곳이 원하는 대로 효과적인 홍보업무가 되려면 일을 수행하는 기업들이 오로지 기획에 집중할 수 있도록 내용이나 평가항목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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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시원하네요 2020-09-25 18:03:12
속시원한 기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