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박주범 기자 |넷플릭스 화제작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에 이런 미션이 나온다.
미니 레스토랑을 차려 메뉴와 가격을 셰프들이 직접 선정하고 손님에게 음식을 대접해 매출 순위로 우승자를 가리는 방식이었다. 해당 미션에서 한 팀은 음식 가격을 다른 팀 대비 두 배 가량 높게 책정했고, 손님들이 이 팀의 메뉴를 많이 주문했는지 여부가 눈길을 끌었다.
모든 스토리가 콘텐츠가 되는 소셜미디어 시대라면, 또 건강을 가장 앞단에 세우고 셀럽들이 보증한 브랜드라면 고가의 제품이라도 소비자로부터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다.
전세계적으로 경기 침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음식을 기본 필수재로 인식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과시하는 하나의 사치품으로 여기는 현상이 해외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경제전문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BI)는 Z세대가 다른 세대보다 프리미엄 마켓에서 지출을 많이 하며 이들의 과시적 소비성향에 주목했다.
한 20대 인플루언서는 미국 프리미엄 식료품 체인점인 에러헌(Erewhon)에서 유명인이 추천한 보충제, 베리류 제품, 코코넛 요거트 등의 고가 제품 구매 인증 영상을 틱톡에 게시했다.
그는 고섬유질·프리바이오틱스이 첨가된 탄산음료 올리팝(Olipop)을 들고는 “나는 죽을 때까지 올리팝을 좋아할 것”이라고 말하며 장보는 데만 500달러(약 68만 원)을 쓰는 일상을 전했다.

에러헌은 유기농·웰니스 콘셉트의 제품을 큐레이션해 판매하는 프리미엄 마켓으로, 제품의 가격대가 상대적으로 높게 형성돼 있다. 특히 코트니 카다시안 등 셀럽들과 협업해 출시한 19달러(한화 약 2만6000원) 가격의 스무디가 유명하다. 매달 수 천개가 팔리는 이 스무디는 슈퍼푸드라고 알려진 클로렐라, 스피룰리나, 루쿠마, 마카 등이 함유된 메뉴들로 구성돼 있다.
에러헌은 건강함을 내세운 점뿐 아니라 헤일리 비버, 켄달 제너, 케이티 페리 같은 셀럽들과 협력해 인플루언서 효과를 잘 활용한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비록 비싸더라도 해당 유명인들처럼 ‘건강을 생각하며 돈을 쓴다’는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은 소비자들에게는 어필이 된다는 것이다.
전략대로 스무디는 소셜미디어에서 금세 입소문을 탔다. 가장 인기 있는 조합을 소개하는 영상은 수십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유명 셀럽의 레시피로 먹어보는 후기 영상들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다.
그 결과 에러헌은 지난해 약 1억 7100만달러(한화 약 2340억 원)의 수익을 기록했다. 이는 일반 슈퍼마켓의 평방 피트당 평균 연매출의 4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BI는 Z세대가 고가의 웰니스 식품에 관심을 가지는 현상이 하나의 ‘과시 성향’이라고 분석했다.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지고 고급 차 구매도 줄어든 가운데 금전적으로 감당 가능하지만 사회적 지위를 보여줄 수 있는 식품 카테고리로 Z세대가 눈을 돌린다는 설명이다.
즉 크루아상 모양 시리얼 한 상자가 53달러(약 7만2500원)이거나 감자칩 한 통이 45달러(약 6만1500원)로 터무니 없이 비싸보이지만 몇 천달러의 가방보다는 저렴하다는 인식에 젊은 소비자들이 쉽게 지갑을 연다는 것이다.
식품 전문 뉴스레터 스낵스샷(Snaxshot) 설립자 안드레아 에르난데스(Andrea Hernandez)는 이를 ‘립스틱 효과’에 의한 현상으로 진단했다. 경기 침체기에 소비자들은 립스틱 같은 저렴한 사치품에 돈을 쓴다는 경제 이론이다. 최신 핸드폰이나 비싼 가방 대신 초고가 간식이 젊은 소비자에게 ‘잇템’(꼭 있어야 하는 아이템)이 된 셈이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맥킨지가 올 2월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 응답자가 식료품에 가장 돈을 많이 쓸 계획이라고 답했다. 몇몇 20대는 에러헌에 매일 가기 위해 두세 개의 일자리를 추가로 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 또한 Z세대가 다른 세대보다 고급 슈퍼마켓에서 더 많은 돈을 썼다는 조사 결과를 올 6월 보고했다. 여론조사업체 유고브도 Z세대 응답자의 70%가 고품질 식품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밝혔다.
네루 파하리아(Neeru Paharia) 애리조나 주립 대학 마케팅 교수는 비싼 식료품은 “건강과 관련해 소비의 기능적 이유를 항상 찾을 수 있는” 카테고리라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건강을 쉽게 이유 삼아 돈을 쓴다는 의미다.
유산균 들어간 탄산음료, 맥주 대신 물...‘이때다’ 싶은 업체들
젊은이들이 제품으로 자신의 재력과 웰니스 취향을 표현하는 트렌드에 브랜드들도 이를 놓치지 않고 동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뉴스레터 익스프레스체크아웃(Express Checkout)의 발행인인 네이트 로젠(Nate Rosen)은 유명인들의 영향력을 이용해 제품을 출시하고 홍보하는 일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Z세대의 다양한 취향을 겨냥하면서 건강도 고려하고, 스타들의 마케팅까지 활용해 식음료계의 틈새 시장을 노리겠다는 전략이다.
프로바이오틱스 음료 브랜드 포피(Poppi)와 올리팝이 대표적인 예다. 카밀라 카베요 같은 스타 가수를 홍보로 활용하고, 프리바이오틱스의 이점과 저당 제품임을 알리며, 파스텔 색상에 통통 튀는 듯한 귀여운 디자인으로 외면 패키지를 꾸몄다. 이 제품들은 건강해보이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젊은 소비자들을 단숨에 사로잡은 것으로 평가 받았다.
미국의 생수 브랜드 리퀴드 데스(Liquid Death)도 젊은 세대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생수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맥주인 것처럼 캔에 물이 담겨있는데, 페스티벌이나 스포츠 경기장에서 이를 마시는 젊은이들이 부쩍 늘었다. 술은 끊었지만 여전히 ‘간지’를 추구하는 사람임을 보여주는 용도로 작용한 것이다.

덕분에 리퀴드 데스는 기업 가치는 2022년(7억 달러) 대비 두 배로 성장해 최근 14억 달러로 매겨졌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리퀴드 데스가 단순히 필요에 의해서 마시는 물이 아닌 정체성과 가치를 표현할 수 있는 물로 거듭났다고 평가했다.
BI는 틱톡 등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이러한 현상이 더 쉽게 확산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냉장고 내부 공개, 장보기 브이로그 등이 콘텐츠 소재가 되고, 이러한 영상들이 손쉽게 전파되며, 새로운 트렌드가 이차적으로 파생된다는 설명이다.
파하리아 교수는 “그동안 사적으로만 갖고 있었던 모든 것들이 이제는 다 공개되는” 세상이라고 말했다. 이로 인해 파생되는 트렌드로 케토, 글루텐 프리, 식물성 등이 생겨나면서 브랜드들이 눈여겨볼 만한 식품 시장도 더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네이트 로젠은 “식품을 하나의 상징으로 사용한다”며 “이러한 방식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다른 제품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