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김병주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발표한 초대 내각 인선에서 네이버와 LG 출신 민간 전문가들이 핵심 부처에 대거 포진했다. 디지털 전환과 기술 기반 국정 개편을 핵심 과제로 설정한 이 정부가, 관료 중심 운영의 틀을 벗고 기업 현장의 감각과 실행력을 국정 운영에 적극 반영하겠다는 구상을 인사로 드러낸 셈이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갖고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를 지명하고 국무조정실장을 임명했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에 네이버 전 대표 한성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에 LG AI연구원장 배경훈, 국무조정실장에는 LG 글로벌전략개발원장 윤창렬이 각각 지명됐다. 이들은 각각 플랫폼, AI, 정책조정이라는 3대 국정 과제에서 중심축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인사는 민간 출신 전문가들을 국정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에서, 이재명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대통령실은 앞서 AI 산업에 100조원을 투입해 ‘AI 3대 강국’ 도약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앞으로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해 후보자들의 정책 구상이 구체화되면, 이재명 정부의 ‘기술 중심 실무 내각’이 현장에서 얼마나 속도감 있게 작동할지에 대한 평가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벤처 1세대’ 네이버 한성숙 전 대표, 중기부 이끈다
한성숙 중기부 장관 후보자는 국내 벤처 1세대로, 엠파스 창립 멤버이자 네이버의 첫 여성 대표다. 숙명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월간 PC라인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했고, 이후 IT 산업으로 전향해 2007년 네이버에 합류했다. 이후 신규 서비스 전반을 총괄하다 2017년 대표이사에 선임됐고, 재임 5년간 네이버는 4조원대 매출에서 6조8000억원대로 도약했다.
대표 재직 기간에는 쇼핑·페이 등 신사업을 안착시키며 플랫폼의 수익 모델을 확장했고, 소상공인 상생 프로그램인 ‘프로젝트 꽃’을 주도하며 중소상공인 대상 디지털 생태계 구축에 기여했다. 2022년 대표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유럽사업개발대표를 맡았으며, 지난달 퇴임 후에는 네이버 고문으로 위촉됐다.
강 비서실장은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라인, 네이버 웹툰 등에서 혁신을 이끌었고 '포춘인터내셔널 파워우먼 50'에 4년 연속 선정된 인물"이라며 "관련 분야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이해도를 바탕으로 중기부 육성 전략에 새로움을 더할 것"이라고 했다.
한 후보자 지명은 앞서 대통령실이 하정우 전 네이버클라우드 AI이노베이션센터장을 AI미래기획수석으로 임명한 데 이은 두 번째 네이버 출신 중용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민과 관의 벽을 허물고 대한민국 경제를 살리려는 특단의 조치”라며 “특정 기업의 혜택이 아니라, 기업의 문제 해결 역량을 국가 전체에 확산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하 수석은 네이버의 거대언어모델(LLM) ‘하이퍼클로바X’ 개발을 총괄한 인물로, 지난 15일 대통령실에 신설된 AI미래기획수석에 발탁됐다. AI 기술은 물론 정책과 국제 협력 분야를 아우르는 전략가로 평가된다.
정부는 이들을 중심으로 디지털 규제 혁신, 스타트업 육성, 민관 협업 기반 정책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LG AI 전략가 배경훈 원장, 과기부 장관으로 정책 전면에
과기부 장관 후보자에 지명된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은 초거대 AI ‘엑사원(EXAONE)’ 개발을 이끈 기술 전략가다. 그는 LG전자 AI추진단장, LG경제연구원 AI 자문 연구위원을 거쳐 2020년 LG AI연구원 초대 원장을 맡아 AI 연구·개발과 상용화의 전 과정을 주도해왔다.
엑사원은 2023년부터 산업 현장에 본격 공급되었고, 지난해 3.0 버전을 오픈소스로 공개한 데 이어 3.5까지 출시됐다.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중심 AI연구소(HAI)가 ‘주목할 만한 AI 모델’로 선정한 바 있으며, 정부는 배 후보자의 경험을 토대로 국가 차원의 AI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강 비서실장은 “배 후보자는 초거대 AI 상용화로 은탑 산업훈장을 수훈한 학자이자 기업가로, 하정우 수석과 함께 대한민국의 AI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배 후보자는 올해부터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AI 정책협력위원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도 맡는 등 AI 전문성을 더 키웠다.
AI 산업의 최전선에 있었던 주요 인사들이 핵심 요직에 앉게 되면서, 업계에서는 AI 산업 육성과 관련해 정부와 기업 간 소통이 더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 차원의 투자 및 기술 지원이 더욱 속도감 있게 이뤄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배 후보자는 직접 AI 개발에 참여했던 만큼, 정부의 지원 없이는 산업이 성장하기 어렵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며 “AI 산업에 대한 현실적 지원이 뒤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윤창렬 원장, 국무조정실장으로…관료·기업 경험 겸비 국정 드라이브
국무조정실장으로 지명된 윤창렬 LG 글로벌전략개발원장은 1990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대부분 공직 생활을 국무총리실에서 보낸 행정 전문가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7년 국무조정실에 발을 들였고 이후 사회조정실장, 국정운영실장을 거쳐 청와대 사회수석, 국무조정실 1·2차장 등도 역임했다.
2023년부터는 LG에 몸담으며 통상전략 전문가로 활동했다. 공공과 민간 양측 경험을 갖춘 윤 후보자는 국정 운영의 허리를 책임지는 조정 기능을 수행할 적임자로 꼽힌다.
강 비서실장은 "국무조정실 1·2차장 및 사회수석을 역임하며 균형 잡힌 시각으로 정책 집행에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다"며 "무너진 행정부 시스템을 복원하고 나아가 대한민국 복합 위기를 해결해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어려운 통상 환경에서 통상전문가의 역할이 막중하다"며 "윤창렬 국무조정실장 지명자가 직전 기업에서 활동한 만큼 대통령과 기업들 간 가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LG는 이재명 정부에서 '조 단위' 첫 투자를 결정한 것도 눈길을 끈다. LG디스플레이는 국내 대기업 중 처음으로 지난 17일 올레드(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신기술을 위해 1조26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으며, 이중 7000억원을 경기 파주 사업장에 투입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