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최현준 기자|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잇따른 반도체 호재로 ‘Made in Korea’ 반도체 경쟁력에 다시 불을 지피고 있다.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인 고성능 반도체 분야에서 두 기업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며 한국경제의 새로운 성장축의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삼성전자, 23조 초대형 계약 수주...파운드리 반등 청신호
삼성전자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서 23조원에 가까운 초대형 계약을 수주한 가운데, 주요 고객사 중 어떤 곳과 협력에 나선 것인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건은 규모가 큰 계약인 만큼 엔비디아, 퀄컴, 테슬라, AMD 등 미국 주요 빅테크 중 한 곳과 손을 잡았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대형기업과 22조7648억 원 규모의 반도체 위탁생산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28일 밝혔다. 해당 부문의 최근 매출액은 300조8709억 원으로 매출액 대비 7.6%에 해당하는 대형 계약이다.
삼성전자는 이번 계약의 고객사명을 공개하지 않았다. 회사는 "계약상대방의 영업비밀 보호 요청에 따라 체결계약명, 계약상대, 주요 계약조건은 유보기한일의 다음 영업일에 공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우선 가장 유력한 수주처는 퀄컴과 테슬라가 꼽힌다. 퀄컴은 삼성 갤럭시용 차세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삼성 파운드리 2나노 공정에 맡기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삼성전자가 2나노 공정에서 수율(양품비율)이 40%대까지 올라오는 등 공정 안정화가 조금씩 이뤄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테슬라의 경우 자율주행 칩(FSD)을 2나노 공정을 거쳐 생산할 것으로 알려졌다. 테슬라는 그 동안 TSMC와 주로 협력했지만, 공급망 다변화 차원에서 삼성전자와 협력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삼성전자는 아직 초기로 평가받는 자율주행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최근 고객사 확보에 나서고 있다. 앞서 미국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인 '암바렐라'에 5나노 자율주행 차량용 반도체를 공급한 바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크리스티아노 아몬 퀄컴 최고경영자(CEO) 및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를 각각 만나면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글로벌 팹리스(반도체 설계기업) AMD는 삼성 파운드리의 가격 경쟁력, TSMC의 부족한 생산능력 등을 감안해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 생산을 삼성전자에 맡길 것으로 점쳐진 바 있다.
아울러 삼성 파운드리는 지난달 일본의 게임기업 닌텐도의 새 콘솔 게임 '닌텐도 스위치2'에 탑재되는 메인칩을 8나노 공정으로 생산하기로 하며, 고객사 확보에 재시동을 걸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주요 빅테크들이 TSMC로 옮겨가던 상황에서 이번 대형 계약을 따낸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며 "이번 계약을 계기로 삼성 파운드리의 신뢰도를 얼마나 높일 지가 관건"이라고 기대했다.

미국 현지 생산 역시 속도가 붙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가 글로벌 빅테크로부터 23조원에 가까운 대규모 계약을 따내면서 미국 현지에 준공 중인 테일러 공장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내년 말 가동을 목표로 2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용 양산 설비 도입 작업 중인 삼성전자 테일러 팹(공장)에도 속도가 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021년 미국 오스틴 파운드리 1공장 인근 테일러를 신규 공장 후보 지역으로 정하고, 170억 달러(23조원) 규모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투자 규모를 440억 달러(59조5000억원)로 2배 이상 늘리며 미국 시장 공략에 칼을 빼들었다. 하지만 고객 수요와 현지 전문 인력 확보 등 각종 변수로 인해 계획에 차질을 빚었다. 당초 양산 예정 시기는 지난해 하반기였으나 올해 말로, 다시 내년 말로 연기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대 변수인 '현지 고객 확보'가 해결된 만큼 현지 양산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전영현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전자 반도체 최고 임원들은 올해 들어 수차례 미국을 찾으며 고객사들과 협상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TSMC 출신 임원을 미국 파운드리 부문 총괄 부사장급 임원으로 영입하는 등 미 고객사 접점 확대에 공을 들여왔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빅테크 대규모 계약 수주는 그간 부진했던 삼성 파운드리의 저력을 확인한 것"이라며 "계약 자체도 의미가 있지만 성능이나 수율 면에서도 경쟁력을 확인받은 셈이라 추후 다른 빅테크 확대로도 기대가 된다"고 전했다.

한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삼성전자의 텍사스 신규 반도체 공장에서 테슬라의 차세대 AI6 칩을 생산될 것이라고 밝혔다.
머스크는 27일(현지 시간) X(엑스·옛 트위터)에 "삼성의 대형 텍사스 반도체 공장은 테슬라의 차세대 AI6 칩 제조에 전념할 예정"이며 "이 전략적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했다.
이어 "현재 삼성은 AI4 칩을 생산하고 있다"며 "최근 설계를 마친 AI5 칩은 TSMC가 초기에는 대만에서, 이후 애리조나 공장에서 생산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연이은 게시글에서도 "삼성은 테슬라가 제조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데 참여하는 것을 허락했다"며 "이는 매우 중요한 결정이며 나는 직접 생산 라인을 점검해 진척 속도를 가속화할 것"을 강조했다.
SK하이닉스, HBM 독주...AI 시대 핵심 동력
SK하이닉스가 인공지능(AI) 반도체 성장세에 힘입어 연이어 신기록을 세우고 있다. 특히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가 다가오는 3분기 '분기 영업이익 10조 클럽'에 입성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SK하이닉스가 올해 2분기 역대 처음으로 분기 영업이익 9조원 대를 기록한지 불과 3개월 만에 역사를 새로 쓸 것이라는 관측이다.
에프앤가이드(FnGuide)에 따르면 28일 기준 SK하이닉스의 올해 3분기 실적 추정치는 매출액 22조2320억 원, 영업이익은 10조2379억 원이다. 이는 전년대비 각각 32.6%, 45.6%씩 증가한 수준이다.

SK하이닉스는 올해 2분기 실적에서 분기 영업이익 9조원 시대를 열었다. 지난 24일 공개한 실적발표를 살펴보면 SK하이닉스는 올해 2분기 매출액 22조2320억 원, 영업이익 9조2129억 원을 기록했다. 매출액은 전년대비 35%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68% 늘어났다. 2분기 영업이익률은 41%에 달성했다.
그 결과 올해 2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기존 최고 기록이었던 지난해 4분기 성적도 뛰어넘으며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을 갈아치웠다. 이는 AI용 메모리 수요 성장 덕이 컸다. 그중에서도 AI 반도체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 SK하이닉스가 지닌 경쟁력이 빛을 발휘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글로벌 HBM 시장점유율 약 50%를 차지하고 있으며, 최신 제품인 HBM3E(HBM 5세대)에서는 점유율 70%에 달한다. 이는 HBM 시장에서만큼은 SK하이닉스가 독보적인 경쟁력을 보유함이 드러난다.
또한 SK하이닉스가 올해 3분기 10조원 대 영업이익을 거둘 것이라 내다보는 이유로도 들 수 있다. SK하이닉스가 시장 지위를 당분간 이어갈 것이라는 관측이다. 분기 영업이익 9조원 시대를 연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재차 신기록을 세울 것이라는 예상이다.
증권가에서는 SK하이닉스에 대한 실적 눈높이를 높여나가고 있다. SK하이닉스의 올해 3분기 시장 컨센서스는 6개월 전 8조6490억 원, 3개월 전 9조7064억 원, 1개월 전 9조7869억원으로 올랐고, 27일 기준 10조2379억 원으로 상향 조정됐다.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가 3분기뿐만 아니라 4분기도 10조원 대 영업이익을 거둘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시장은 SK하이닉스의 4분기 영업이익이 2분기 보다 소폭 많은 10조3505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둘 것이라 추정한다.
SK하이닉스도 하반기 실적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우수한 제품력과 양산성을 토대로 HBM을 전년대비 약 2배 성장시킨다는 구상이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앞으로도 HBM 수요 성장성에 대해선 의심할 여지가 없다"며 "AI 시장은 AI 에이전트와 피지컬 AI 등으로 영역을 넓혀가면서 폭발적으로 연산량이 증가할 것이고 이는 HBM 시장 수요 성장을 견인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메모리 시장이 역대 최고를 기록중이지만 메모리 업체들 중 2018년 실적을 상회한 기업은 SK하이닉스가 유일하다"며 "그만큼 AI와 HBM으로 메모리 시장의 특성은 과거와 달라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고영민 다올투자증권 연구원도 "최근 여타 메모리 생산업체들의 HBM4(HBM 6세대) 진입 가능성이 제기되며 SK하이닉스의 점유율 축소 우려가 대두됐다"면서도 "그러나 공급사 중 유일하게 HBM4에서 MR-MUF와 TSMC 로직다이 조합의 기술 우위가 가능하며 확실한 수요 확인 후 집행하는 설비투자(Capex) 상향 발표가 확인됐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더불어 주 고객사의 중국향 공급 재개 제품에도 진입이 유력한 단계라는 점에서 업사이드 수요 효과까지 기대하기 충분하다"며 "2026년에도 기존의 공급 우위 구도가 지속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반도체는 산업 전체의 엔진...정부 ‘빅프레임’ 지원 필요
반도체는 단일 산업을 넘어 대한민국 전략산업 전반을 지탱하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AI, 모빌리티, 로봇, 국방 등 고부가가치 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기반이자, 국가 경제의 생존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글로벌 경쟁력 재점화 행보속에서 한국 경제의 선봉장 역할을 기대하는 바 업계 안팎에서는 정부의 보다 과감한 ‘빅프레임’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반도체 산업 전문가인 상명대 이종환 교수는 AI시대를 맞이해 한국경제 성장을 견인할 정부 차원의 지원책 필요성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현재 정부에서 키워드로 삼고 있는 게 AI와 반도체인데, 이들의 공통분모가 바로 AI 반도체다. 반도체는 자율주행차를 포함해 응용 분야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정부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정부는 전체적으로 산업을 이끌어갈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하고, AI와 반도체를 접목했을 때의 시너지 효과를 위한 상세한 산업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한국 반도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인재 양성 전략에 대한 기자의 물음에 “반도체뿐만 아니라 모든 산업 기술의 핵심은 결국 인재 양성인데, 요즘은 우수한 학생들이 의대로 많이 진학하는 경향이 있어 우수 인재 확보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석·박사급의 고급 인력 양성이 필수인 만큼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계획이 필요하고 궁극적으로 엔지니어에 대한 처우개선을 위해 기업뿐 아니라 정부의 노력도 반드시 뒷받침 되어야한다”고 밝혔다.
그는 AI 반도체 시장 급성장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지속가능성에 대해 “AI 반도체는 응용 분야가 무궁무진하며 응용 범위가 넓기 때문에 집중적인 투자와 산업 육성 및 인재 양성이 병행해야 하는 시점”이며 “한국 경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이를 지속가능하게 이끌어갈 핵심이 AI 반도체 분야다. 앞으로도 응용 분야를 확장하고, 인재와 산업 경쟁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계속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쏘아올린 ‘Made in Korea’ 반도체의 반등 신호는 단순히 호재나 특화 산업이란 인식에서 벗어나 국가 안보와 연관 지어 한국경제 전체의 방향성을 가늠할 중대한 분기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