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허원순 | ‘장기투자냐, 시장 흐름을 타는 유연한 단타냐.’ 증권 투자에서 흔히 오가는 논쟁거리다. 물론 단기 투자를 공개적으로 부추기거나 찬양하는 사례는 드물다. 하지만 이른바 선수들, ‘꾼’들의 세계는 조금 다르다.
아파트와 주식 투자에 대한 자칭 전문가들 비교를 보면, 장기투자를 전제로 수익률을 설명하다면서 결국 자신이 하고픈 주장을 던진다. 이때 말하는 장기투자란 최소 10년, 길게는 수십 년을 가정한다. 실제로 블로그, 신문 칼럼, 유튜브 등에서 장기투자를 권하는 메시지는 흔하다.

전통적으로, 신문 같은 레거시 미디어, 학계 이론가, 정부 정책 방향 역시 장기투자에 방점을 두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코스피 5000’을 기치로 내건 이재명 정부는 어떨까. 장기투자를 유도하고 정책적 인센티브도 제시할까.
전임 정부 때 제기된 이른바 증시 밸류업 주창이 살아남아 있는 것 보면 그럴 가능성이 있다. 요컨대 ‘코스피 5000 달성-밸류업 전략-투자 저변 확대–장기투자 유도 정책’이라는 구호와 아젠다는 시장 상황과 맞물려 계속 이어질 것이다.
증시를 돌파구 삼아 ‘부동산 블루(문재인 정권 때 아파트 우울증)’의 트라우마를 이 정부가 잘 어루만지며 치유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그렇다면 장기투자란 무엇인가. 기준은 있나.
#사례 1 언론계 후배 L은 1990년대 후반, 초년 기자 때 유력 신문사를 떠나 전업 투자자가 됐다. 당시만 해도 흔치 않았던 프로그램 매매를 연구하며 집에서 모니터 두 대를 들여다보면서 매일 주식을 전문 거래하는 그가 당시만 해도 신기해 보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개 장기투자를 권했는데, 얼마나 오래 보유하는 게 장기투자인지가 필자의 호기심 관심사였다. 독립 선언한 지 좀 지나 만난 그에 물었다. 그의 대답이 아직도 기억난다. “장기투자요? 글쎄, 주식 사서 10분 이상 갖고 있으면 장기라고 봐야죠.”
#사례 2 동문 후배 K는 스스로 판사직을 박차고 나와 변호사로 전향했다. 하지만 주변머리 없고, 전관예우를 기대하기에는 경력이 짧아 사무실은 늘 한산했다. 2000년대 초반이었다. 소일거리로 시작한 주식 투자가 곧 주업이 됐다. “그래서 돈은 좀 벌었나? 장기투자해야 성공한다던데?”라는 질문에 그는 단호했다. “장기요? 저는 주식 사서 집에 들고 가지는 않습니다.” 그날 산 주식은 오르든 내리든 무조건 당일 처분하는 게 원칙이라는 것이었다.
#사례 3 반면 필자는 이른바 주식과 결혼한 경우다. 오래전에 산 주식을 여전히 들고 있다. 사는 건 쉬웠지만 팔기는 쉽지 않았다. 본전 생각에서 벗어나지는 못하는 전형적인 ‘하수’의 모습이다. 말이 좋아 배당 투자지만, 하락장을 겪다보니 차곡차곡 배당에도 도움 되지 않았다. 남들이 하는 말대로 ‘이 회사 망하면 대한민국도 망한다’는 자기 위안으로 그냥 버티고 있을 뿐이다. ‘매도가 예술’이니 ‘살 때와 팔 때’가 어떠니 하는 자칭 전문가들 얘기를 들어봐도 뾰족한 수가 없다.
글로벌 IB가 서울에서 묻는 질문: 장기투자는 가능한가
이재명 장부가 내세운 ‘코스피 5000’전략이 장기투자를 유도할지에 따라 대중의 시각은 달라질 수 있다. 이는 단순히 공약의 달성 여부를 넘어 정권의 지지율에도 적잖게 영향을 줄 사안이다. 부동산으로 쏠린 자금을 증시로 제대로 끌어들인다면 그 자체만으로 의미 있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에 흥미로운 소식도 들렸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간부급 관계자들이 9월에 대거 방한한다는 큼직한 기사가 나왔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JP모건 모건스탠리 등 유수의 글로벌 IB 관계자 수십 명이 국내 4대 시중은행, 주요 보험사, 손해보험사의 최고경영자와 최고재무책임자들과 회동할 예정이라고 한다. 금융감독당국과의 만남도 예고했다.
이들의 대규모 방한에 금융업계가 촉각을 세우고 주목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글로벌 IB들의 정례적 방문은 보통 연초에 이뤄지는데 이번 9월 방한은 새 정부의 정책 행보와 맞물려 ‘신(新)관치금융’ 논란을 직접 확인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게 중요 포인트다. 실제로 최근 이런 내용으로 유선상의 문의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한국 금융·자산시장에 글로벌 IB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외국인 지분율 때문이다. KB금융 77%, 하나금융 67%, 신한금융 60%, 우리금융 47% 등 국내 주요 금융지주 상당수가 외국인 주주 비중이 높다. 회사의 주인 개념이 관점에 따라 다양하고 주주나 회사관계자(stakeholder 혹은 shareholder)에 대한 법적 사회적 정의가 엇갈리고 있지만, 이런 보유자는 주인이다.
누가 뭐래도 가장 강력한 연고권, 소유권을 가진 게 분명하다. 이들 IB들은 주주로서 시장과 업계 상황 점검에 나섰다면 당연히 재산권 보호 차원일 수 있다.
이들의 관심사는 구체적이고 각론에 이르는 것이며, 새 정부의 최근 정책 관련 사항이 많다는 게 업계 전언이다. 가령 금융권의 우려와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은행 수익에 대해 교육세를 기습 인상하겠다는 것, 정부가 일방적으로 발표한 장기 연체자 사면과 이로 인한 4000억 원 가량의 금융회사 부담, 정부 주도의 국민성장펀드 150조 원 조성 때 은행 출연 몫으로 예상되는 30조 원에 대한 강제성 여부, 은행권의 ELS 불완전 판매에 따른 7조 원 대의 공정거래위원회 과징금이 그런 이슈다.
실제로 이런 일들로 은행 주가가 급락하기도 했다. 이들은 주주로서 투자금에 대한 수익률을 따지며 리스크 관리에 나선 것이다. 장기투자 여부를 결정하려 할 것이다. 강력한 한국형 관치금융이 글로벌 투자업계에서는 적어도 금융에서는 비선진국 한국의 ‘정책 리스크’가 된 셈이다.
세금만 그런 게 아니다. 금융도 한국만의, 국내 이슈가 아니다. 글로벌 스탠다드와 따로 가면 금융도 성장 발전과는 다른 반대의 길로 가는 것이다. 글로벌 IB 현장 점검단이 직접 서울로 와서 확인하려는 게 무엇인가. “코스피 5000 달성은 진정성 있는 공약 내지는 목표인가. 정부의 밸류업 의지는 믿을 만한가. 정책도 과연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이걸 물으려는 것이다.
덧붙여 “한국은 장기투자를 유도하는 나라인가”를 직접 살피고 묻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과연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