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허원순|오르는 물가는 국민 경제에서 달갑지 않은 불청객이다. 다수 가계에 가장 크게 와닿는 실감형 경제 변수다. 소득이 웬만큼 오르지 않는 한, 특히 수입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다수 개인과 가계 입장에서 고물가는 실질적으로 소득감소를 의미한다. 정부로서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경제정책이라고 하지만 고용지표와 함께 물가 상승률이 무엇보다 중요한 정책 성패의 2가지 잣대다. 일자리 창출과 물가안정, 즉 돈 가치 안정은 그만큼 중요하다.
문제는 물가가 왜 오르냐는 것이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원자재 가격의 변동도 큰 요소인데, 한국의 경우 해외 요인이 크다. 원유를 비롯한 산업 원자재, 밀가루·육류 등 식량 자원 등 수입품은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

가격이 급등하면 적게 쓰고 줄여 먹는 게 더 효과적 대책일 텐데, 정부로서는 언급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다른 요인은 정부가 원인 제공자다. 가격 구성 요소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건비에서 한국은 정부가 앞장서 최저임금을 다락같이 올려 왔다.
최저임금은 한번 올려놓으면 그 윗단의 급여까지 줄줄이 연쇄적으로 오르게 돼 있다. ‘임금의 승수 효과’다. 과도한 규제도 물가를 오르게 한다. 이른바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안전 기준을 단기간에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놓으니 건설 단가가 급상승한 것이 그런 사례다. 건설현장을 얼어붙게 해 새집 공급이 줄어드는 이면이다. 과잉의 제도가 물가를 끌어올리는 사례는 얼마든지 더 있다.

또 다른 하나는 과도한 유동성 문제다.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면 물가는 오르기 마련이다. 언제나 어디서나 경계해야 할 철칙이다. 물론 돈은 정부 주도로 풀려나간다. 지금까지 확장 일변도의 통화량 증발 추이를 보면 물가 상승은 쉽게 확인된다. 올해보다 8.1%나 늘린 728조원 규모의 내년도 ‘슈퍼 확장 예산안’도 돈 풀기로 인한 인플레 차원에서 보면 걱정이다.
그래놓고 정부는 물가를 잡겠다며 온갖 무리수를 쓴다. 이 문제에서는 진보좌파도 보수우파도 따로 없다. 우직한 곰과 쇠 주먹을 휘두르는 돈키호테만 크게 보인다.
역대 정부가 대개 그렇다. 고물가로, 인플레이션이라는 말이 신문 지면에 오르내리고, 생필품 가격 급등 생활 물가로 서민 고충이라는 표현이 방송에라도 나오면 정부는 바로 안절부절 못한다. 뭔가라도 하는 흉내라도 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
여론이 그렇게 정부를 압박해대고, 정치권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선거라도 앞두면 바로 정쟁거리로 비화한다. 무리수가 뒤따른다. 여론이라는 것이 이런 상황에서는 제멋대로인 것도 사실이다. 고물가는 그렇게 보면 경제 문제가 아니라 휘발성이 아주 강한 정치적 이슈다.
집값도 그런 아젠다다. 한국에서 집값 담론은 오랫동안 상당히 비정상적이다. 자극적 공세가 난무하고 선동이 넘친다. 수요와 공급 위주로 보면서 중장기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를 징벌적 과세와 극단적 수요억제를 대책이라고 내놓는다.
국가 전체 가구의 1%도 안 되는 서울 강남 3구의 특정 지역 집값을 두고 온 나라가 시끄럽다. 이성과 상식, 냉정과 합리는 스며들 여지가 없다. 서민 주거 안정과는 완전히 따로다. 문재인 정부 때 서울 특정 지역을 정밀 타격하는 스무 번이 넘는 온갖 무리한 방안까지 정책이라고 내놨지만, 정부가 시장에 완패한 것도 그런 까닭에서다.
아파트 가격도 당연히 하나의 물가다. 물가대책에서 대응하는 정부를 보면 때로는 돈키호테 같고 때로는 우직한 곰 같다. 우직한 곰은 주인을 너무도 사랑한다. 사랑스러운 주인이 낮잠을 자는 데 파리라는 녀석이 코끝을 맴돌면서 주인의 오수를 방해 놓자 미련한 곰은 억센 앞발로 코끝의 파리를 내리치고 만다. 아니면 시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을 상대로 손 좀 봐주겠다며 나대는 돈키호테가 된다.

커피값·빵값이 오르면 그에 맞춰, 집값이 뛰면 그것을 겨냥해 그렇게 허둥댄다. 겁을 주고, 공포를 조성하고, 한 시대 전 방식의 완장 부대들을 아직도 동원한다.
오죽하면 시장 경제를 지향한다고 장담했던, 현장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성공한 기업인 출신이라고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도 그랬다. “기름값이 묘하다”는 대통령의 말로 정부 기관들이 휘발유 경유 가격을 단속했지만 그게 몇 개월이나 갔나. 문재인 정부 때 거창한 회의를 열어가며 대통령이 나서 “집값만큼은 잡겠다”고 호언장담 했지만, 결과는 어떠했나.
공무원들은 이런 것이 돈키호테 아니면 우직한 곰의 행태라는 사실을 과연 모를까.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 때인 2023년 초반 정부 경제팀장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은 “세금 조금 올렸다고 주류 가격 올리나”며 소주 회사를 닦달한 적 있다.
그해 연말 소비자 물가가 급등했을 때는 ‘가공식품 부분’이 5% 이상으로 오름세가 두드러지자 농림축산식품부가 칼을 뽑았다. 농림부가 통제성 가격 감시에 나서면서 ‘빵 사무관’‘우유 사무관’이라는 희한한 말이 나돌았다. 정부도 조롱이라는 것을 알았을 테지만 여당 등 정치권의 유무형 압박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시장의 가격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을 대상으로 큰 칼을 뽑아 드는 돈키호테도,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라는 더 없이 귀한 존재를 보호하려는 우직한 곰도 여전히 살아 있다. 하지만 덤벙대는 그들은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상대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정부의 실패가 있듯이 시장의 실패도 있지만, 대응법은 그런 식이 아니다. 시일이 다소 걸려도 고물가 대책은 정공법 원칙대로 가야 한다. 수급을 맞추고, 유통망을 현대화하며, 합리적 세제를 통한 자원의 적절한 배분이다. ‘설탕 사무관’‘밀가루 과장’은 이런 ‘정공법 3종 세트’와는 거리가 멀다.
징벌적 세금 폭탄도 선동적이고 감성적인 대응일 뿐이다.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검경을 내세우는 정부의 공포 분위기 조성 역시 시장의 저항 내성만 키울 수 있다. 근본적으로는 경제의 체질 개선 구조개혁으로 모든 가격 물가가 안정적으로 예측 가능한 선에서 움직인다면 더욱 바람직하다.
요컨대 물가를 경제 문제로 보고 그렇게 접근하는 게 중요하다. 사회 문제라며, 정치적 이슈라며 그렇게 돈키호테로 접근하면 백전백패다. 이재명 정부는 돈키호테에서 벗어날까. 다가올 추석 물가에 어떻게 대응할지 미리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