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허원순|정부 산하의 공기업과 공공기관이 최근 연도에 급증하고 있다. 사건 터질 때마다, 큰 사고라도 발생하면 크고 작은 관변 기관이나 기구가 생겨난 탓이다. 자칫 퇴직 공무원 낙하산 자리나 만들고, 정부 부처들이 우회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통로로 전락한 기관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는 비효율이나 공공의 비대화 문제는 외면하며 거꾸로 가고 있다. 현 정부는 어떻게 다룰까. 다를까?

공직자윤리법에 따른 공직 유관단체는 1507곳(7월 말)에 달한다. 1227개였던 5년 전과 비교하면 280개나 늘었다. 윤석열 정부 거치면서 근래 연평균 56곳씩 생겨났다.
이중 ‘공공기관운영에 관한 법’으로 정부가 엄격하게 관리 감독하는 공기업, 준정부 기관, 기타 공공기관은 331개다. 이 세 종류 중에도 비중이 덜 한 기타 공공기관은 각 부처 장관에게 감독이 맡겨져 기획재정부가 주도하는 정부 차원의 경영평가에서는 제외된다.
기타 공공기관 외에도 정원 30인 미만의 공공기관은 아예 이 법의 적용 대상도 아니다. 각종 군소 공공기관이 1000개도 훨씬 넘는다. 이들의 기능과 역할은 무엇인가, 설립 취지에 따른 성과는 과연 어떤가, 언필칭 주인이라는 국민은 실상을 제대로 알고 있나.
난립 양상이다 보니 기관과 단체의 중복 과잉도 만만찮다. 가령 공익을 내세운 대한법률구조공단이 버젓이 있는데 양육비이행관리원이라는 기관을 뒀다. 학교폭력이 사회 이슈가 됐을 때는 관련 대책 기구를 새로 만들었다.
시범 운영 수준인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만 해도 이제 겨우 부분 운영 중인 A노선의 대표 외에 B C노선 운영 대표(기구)를 따로 둔다고 하고, 예정 노선인 D~H까지 8개 노선 대표도 또 별도로 두는 방안이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식이 한국적 행정으로 굳어지고 있다. 도무지 공공의 비대화를 겁내고 경계하지 않는다.
이런 풍토는 왜 생겼고, 계속되고 있나. 공공기관의 끝없는 확대, 공공의 비대화는 소관 행정 부처와 국회의 담합 위에 관련 관변 학계와 정당 안팎 정치 낭인들이 가세한 결과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조직의 경유 경력이 선거용 이력이 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선거 후 낙선 인사가 자리 잡는 관변의 생계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일도 빚어진다. 원자력발전의 수출권 문제를 놓고 원래 한 회사였던 한국전력공사와 자회사인 한국수력원자력 한수원이 수백억 대 소송까지 벌이고 있다. 발전 자회사들을 분리하기 전 한 뿌리 한 회사였던 발전 공기업들의 사업 영역이 겹쳐 혼선이 빚어지고 서로 간에 ‘집안싸움’을 불사하는 것이다.
한전과 자회사인 한수원은 아랍에미리트(UAE) 바카라 원전 추가 공사비 정산을 놓고 소송비만 최소 수백 억원 대에 달하는 법적 다툼을 그렇게 벌이고 있다. 공기업 모기업과 그 자회사가 자율로 타협하지 못한 채 국제 소송을 벌이는 것도 모양새 사납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감독 부처는 도대체 뭘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번에 정부조직 개편에 따라 원자력발전 산업의 관할권도 하나의 문제로 대두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하지만 어떻게 결론 날지 아직 알 수가 없다. 나아가 잘게 쪼개어진 발전회사들의 합리적인 통폐합도 결코 무시 못 할 과제다.
신설되는 기후에너지환경부는 국내 원전 사업 정책을 맡고 기존 산업통상자원부는 원전 수출 업무를 담당키로 하면서 6개로 나뉜 발전 자회사의 효율적 감독 방안이 나와야 한다.
한국수력원자력을 제외한 5개 발전 자회사들은 사실상 각 지역의 화력발전소를 중심으로 비슷비슷한 규모로 단순히 쪼개 놓은 것이다. 실상 사업 내용도 유사하다. 덩치만 키운 채 경쟁도 하지 않는 구조이니 ‘붕어빵 경영’을 한다는 비판을 받을 뿐이다.
2016년 정부는 한전과 한수원 양사에 원전수출권을 줬지만, 발전 공기업 간 사업 영역 혼선은 계속됐다. 결국, 한국형 원전을 그대로 수출하면 한전이, 설계 변경이 필요하면 한수원 담당으로 봉합됐으나 업무의 혼란과 혼선은 이어졌다.
소송전을 불사하는 발전 공기업 간의 알력과 다툼은 정부조직이 개편돼도 계속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분할 24년간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점검부터 해야 한다. 가장 큰 이유였던 효율적인 경쟁 효과가 있었나가 핵심이다.

경쟁은커녕 국제 에너지 시장에서 제각각 원료를 사들이느라 구매력을 우리 스스로 줄여버리지 않았는지, 수급과 가격 동향에 정보 공유는 있었는지, 국내외 저장 시설은 공유해왔는지, 해외 개발과 신기술 연구를 제각각 추진하면서 이중지출과 낭비는 없었는지, 살필 게 적지 않다.
모기업 한전의 전력 매입 방식도 다시 살펴봐야 한다. 창구일원화 이상의 개혁이 필요하다. 이대로 가면 ‘K원전’의 미래도 없다.
한전과 한수원의 갈등은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궁극적으로 공기업과 공공기관이 안고 있는 기본 문제는 비효율성이다. 일차적으로 비용과 재무건전성 문제가 있지만, 나아가 의사결정이 느려지고 시장의 자율 기능을 침범하는 폐단도 있다.
민간에서 보면 또 하나의 규제기관인 곳도 적지 않다. 정부의 행정 데이터를 관리하는 곳은 숫자를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로 많고, 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처럼 뚜렷한 이유도 없이 이원화된 기관도 있다.
유사 업무의 한국주택금융공사와 주택도시보증공사도 불필요한 경쟁을 벌이고,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도 감독 부처만 다를 뿐 업무가 중복된다는 지적을 받는다. 업무 중복, 공기관 간의 불필요한 경쟁으로 인한 폐단도 하나둘이 아니다.
이런데도 공공기관의 통폐합은 모두 국회의 사전 승인을 받으라는 법안이 더불어민주당 쪽에서 나와 있다. 공공에서 군살 빼기를 원천적으로 막는 것은 아닌가.
나라 곳간이 비어가는 판에 공공의 비대화는 미래세대에도 큰 부담이다. 경각심을 키우고, 즉각 군살 빼기에 나서야 한다. 현 정부가 공공 개혁의 의지나 역량이 있는지가 관건이다. 고위간부급 자리만 늘리는 금융감독 기구 개편은 하나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