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박주범 기자|2014년작 영화 '스틸 앨리스(Still Alice)'는 조발성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은 언어학 교수의 이야기다.
성공적인 일과 가정생활로 인생의 황금기를 살던 50세 주인공의 일상에 어느 날부터 단어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조깅을 하다 길을 잃고, 방금 전 인사했던 아들의 여자친구에게 다시 똑같은 인사를 건네는 등 균열이 찾아온다.
학생들의 부정적인 강의 평가로 결국 학교에도 진단 사실을 알릴 수 밖에 없게 되고, 신체적 죽음보다 사회적 죽음을 먼저 맞닥뜨리면서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음을 느낀다.
많은 영화에서 질병이 주로 관계나 드라마의 배경으로 사용되지만 이 영화는 알츠하이머라는 병 자체, 즉 초기 증상, 진행과정, 그리고 가족과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에 초점을 맞추고, 정체성이 어떻게 변하는지까지 살핀다.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기억과 함께 자신이 사라져 더 이상 세상 혹은 사회의 일부가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나를 정의하던 것들이 사라져도 여전히 나일까? (기억이 남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내가 나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야.”
배우 줄리앤 무어(Julianne Moore)는 조금이라도 더 ‘나 자신’으로 남아 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앨리스를 연기해 큰 공감을 얻으며 아카데미 등 그 해 수많은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녀가 이제 일라이 릴리(Eli Lilly)의 새 캠페인 [브레인 헬스 매터스(Brain Health Matters)]에 참여해 뇌 건강을 위한 조기 대응의 필요성을 알린다. 캠페인은 특히 알츠하이머 진단 환자의 약 2/3에 해당하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다.
일라이 릴리는 9월 ‘세계 알츠하이머 달(World Alzheimer's Month)’을 맞아 시작한 이번 캠페인을 통해 35년간의 뇌 건강 연구를 바탕으로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편견을 깨고, 55세 이상 성인을 위한 조기 개입 및 선제적 인지 건강에 대한 인식을 제고해 뇌 건강 전반에 대한 예방적 치료를 장기적 웰빙 계획의 일부로 정착시키고자 한다.

알츠하이머병은 증상이 나타나기 20년 전부터 시작될 수 있다. 신체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단백질인 아밀로이드가 뇌에 플라크 형태로 비정상적으로 축적되기 때문이다. 개인이 뇌 건강을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기 위해서는 위험 요인과 생활 습관 변화를 통해 개선 가능한 요인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줄리앤 무어는 지난 9일 보도된 피플(People)지와의 인터뷰에서 "나이들수록 신체 건강 관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예방 관리와 조기 발견이 효과적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신체 전체의 기능을 통제하는 뇌 건강은 우리가 충분히 이야기하지 않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무어는 "뇌 건강은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지키는 데 필수적"이라면서 "뇌가 건강검진의 일부가 아닌 이유는 무엇일까?"라고 묻는다.
그녀는 "의사와 함께 알츠하이머병 위험 요인과 그것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생활 습관 변화에 대해 상담하고, 인지기능 평가를 요청하는 것이 중요하다” 면서 인지 기능검사가 정기검진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알츠하이머병은 여러 원인들이 얽혀 나타나는 복합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에 따르면 알츠하이머병 발병에 가장 큰 요인은 나이다. 65세 이후 발병률이 급격히 오르고, 85세 이상에서는 3명 중 1명이 앓는다.
유전적 요인도 중요한 변수지만 유전만으로 병의 발병 여부가 결정되지는 않는다. 뇌 속에서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 플라크와 타우 단백질 엉킴이 비정상적으로 축적되면서 신경세포가 손상되는 병리적 과정이 핵심적이다.
여기에 혈관 건강과 생활 습관이 결합한다. 고혈압, 당뇨, 비만 같은 만성질환은 뇌 혈류를 악화시키고, 운동 부족, 수면 장애, 사회적 고립 등은 신경 보호 작용을 약화시킨다. 반대로 균형 잡힌 식사, 규칙적인 운동, 적극적인 사회 활동은 발병을 늦추거나 위험을 완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알츠하이머병은 ‘피할 수 없는 노화’와 ‘조절 가능한 생활 습관’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할 수 있다.
이번 캠페인은 개인이 조기 발견과 생활 습관 관리를 통해 뇌 건강을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며, 뇌 건강이 곧 삶의 자유와 의미를 지키는 일임을 강조한다. 기존 알츠하이머 캠페인들과 달리 증상이 나타나기 전 예방을 하자는 메시지가 핵심이다.

알츠하이머병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환자가 늘어나면 사회의 의료비 부담은 크게 증가하고, 돌봄의 책임은 가족에게 전가된다. 뇌 건강이 공공의 건강이며, 국가적 과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브레인 헬스 매터스는 ‘뇌 건강은 곧 삶의 질’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고자 한다.
뇌 건강을 심장 건강·체중 관리처럼 일상적인 건강 관리의 영역으로 끌어와 ‘뇌 건강도 관리할 수 있다’는 관점을 대중화하기 위해 릴리는 이번 캠페인을 자사 치료제 홍보보다 공중 보건형 캠페인으로 전개해 회사 이미지를 제고하고 사회적 신뢰를 얻는 전략을 택했다.
캠페인 사이트(brainhealthmatters.com)에서 환자와 간병인을 위한 교육 자료를 제공하며, 무어가 출연한 광고를 포함한 세 편의 광고, 소셜미디어 콘텐츠, 대면 이벤트, 강연 등의 활동이 진행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