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 매거진

디자인한 화장실

[ESG 소통] ‘모두를 위한 이동성’ 이니셔티브

현장에서 파악한 문제에 기반한 포용적 디자인
모빌리티의 본질, 이동수단을 넘어 인간의 기본적 욕구와 존엄 지키는 것

  • 기사입력 2025.11.19 08:00
  • 기자명 박주범 기자

더피알=박주범 기자 |매년 11월 19일은 ‘세계 화장실의 날(World Toilet Day)’이다. 유엔은 이 날을 통해 약 34억 명이 여전히 ‘안전하게 관리되는 위생 설비(safely managed sanitation)’를 이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우리는 모든 곳에, 모든 사람을 위한 화장실이 필요하다. (사진 = UN.org)
우리는 모든 곳에, 모든 사람을 위한 화장실이 필요하다. (사진 = UN.org)

2025년의 공식 주제는 기후위기, 도시화, 사회인프라 격차 등 “변화하는 세상에서도 안전한 화장실이 모두에게 필요하다(Sanitation in a Changing World)”는 메시지다.

토요타 자동차는 이 주제를 현실에서 실천하고 있다. 자동차 기업의 시야를 넘어, <모두를 위한 이동성(Mobility for All)>이라는 철학을 인간의 가장 기본적 공간인 화장실로 확장했다. 

현지현물 원칙과 협업을 통한 지속가능한 혁신

2019년, 토요타 비전디자인부가 받은 낯선 요청에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이동식 화장실을 만들어 달라는 사회공헌 부서의 요청이었지만 출발은 ‘장애가 있어도 다양한 곳을 방문하고 싶다’는 한 장애인의 바람이었다.

바닥재에 대해 논의 중인 색상 디자이너와 휠체어 사용자 직원 (사진 = toyotatimes.jp)
바닥재에 대해 논의 중인 색상 디자이너와 휠체어 사용자 직원 (사진 = toyotatimes.jp)

이동식 화장실 프로젝트에 토요타의 제품 철학인 ‘겐지겐부츠(現地現物, 현장에서 관찰과 피드백을 통해 배우는 원칙)’가 그대로 적용됐다. 디자이너들은 휠체어 사용자의 이동을 관찰하며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프로토타입을 실험했다.

그 과정에서 뜻밖의 피드백이 쏟아졌다. 밝은 회색 바닥은 깨끗해 보이지만 타이어 자국이 쉽게 남았고, 질감 없는 표면은 감각이 제한된 사용자에게 위험했다. 미학이라 여긴 기준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이었다는 깨달음에서 진짜 디자인이 시작됐다. 

토요타의 미디어 플랫폼 토요타타임스의 2023년 6월 9일 기사에서 프로젝트 총괄 매니저 이나가키 노리요는 “프로젝트의 목표는 화장실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어떤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지를 탐구하는 것이었다”면서 이러한 심층적인 탐구가 진정한 디자인이라고 설명했다.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 진화한 이동식 화장실(사진 = totyotatimes.jp)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 진화한 이동식 화장실(사진 = totyotatimes.jp)

따라서 팀은 기술보다 ‘경험’을 우선했다. 변기 높이를 3cm 높인 이유도 단순한 인체공학 때문이 아니라, 전동 휠체어 사용자가 스스로 이동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복지차량처럼 보이지 않고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절제된 외관은 멋진 디자인을 요구한 젊은 사용자들의 피드백을 반영한 것이다.

그 결과, 이동식 화장실은 ‘장애인을 위한 설비’가 아닌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 진화했다. 

프로젝트는 또한, 외부 파트너십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겠다는 의지를 바탕으로 진행되었다. 테스트 무대였던 2020 도쿄 패럴림픽 현장에서 화장실의 물 사용량이 예상보다 두 배 많다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 외부 기업의 놀라운 기술들이 진가를 발휘했다.

공간 제약으로 더 큰 물탱크 설치가 불가능해지자 신칸센 고속열차의 절수형 화장실을 연구하면서 수처리 전문기업, 냉장 트럭 제조사, 지자체의 기술 부서까지 다양한 파트너들에게 도움을 구했다.

모빌리티의 본질은 이동이 아니라 존엄이다 (사진 = toyotatimes.jp)
모빌리티의 본질은 이동이 아니라 존엄이다 (사진 = toyotatimes.jp)

얇은 금속판 사이에 경량 발포 소재를 삽입한 ‘샌드위치 구조’는 냉장 트럭 단열 기술에서 착안된 결과다. 덕분에 일반 운전면허로도 견인 가능한 가벼운 구조가 완성됐다. 기술을 독점하지 않고 협력으로 해법을 찾아낸 것이다.   

또, 화장실의 경사로는 차량 뒤가 아니라 측면으로 확장된다. 도로 공간을 적게 차지하면서도 프라이버시를 확보하기 위함이다. 난간은 휠체어가 360도 회전할 수 있도록 바깥쪽으로 구부렸고 틴티드 채광창 천장으로 자연광을 끌어들였다. 

진정한 '모두를 위한 이동성'을 구현하는 이동식 변기는 회사 안팎에서 축적된 집단적 혁신과 기술력으로 탄생했다. 보편적인 접근이 가능한 변기를 만드는 것은 사회의 다양한 가치를 발견하고 존중하는 여정으로, 기술보다 앞선 배려를 통해 가능했다.  

실용화 단계로 나아가는 이동의 권리

2022년, 완성된 이동식 화장실은 WRC 랠리 재팬에서 첫선을 보였다. 휠체어 사용자들이 처음으로 현장의 열기 속에서 경주를 즐길 수 있었다.

"해변에 가거나, 캠핑을 하거나, 사람이 꽉 찬 콘서트에 참석하는 등 이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시도해 보고 싶어졌다”는 휠체어 사용자들의 피드백은 디자인이 바꾼 ‘이동의 권리’ 를 증명했다.

2024년 일본 국제복지기기전(H.C.R.)에서는 완성형 모델이 공개되었다. 내부 회전 직경 1.5m, 경사각 5도의 저상 램프, 절수형 진공 변기, 손잡이 개선 등 세부 스펙이 확정됐다. 전력은 발전기·일반 콘센트·견인차 전력까지 다양하게 공급 가능하다.

같은 해, 아이치현 도요타시와 우츠노미야시가 공공차량으로 도입을 결정했다. 도요타시는 모든 시민이 사용할 수 있는 공공 인프라의 모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는 사용자의 제안으로 자동문 시스템과 내부 잠금장치 개선이 진행 중이다. ‘버튼 하나로 여닫는 화장실’이라는 피드백이 현실이 되고 있다.

이동식 화장실 프로젝트는 접근 가능한 화장실의 부족으로 목적지의 범위를 좁히거나 이동의 권리를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시작되었다.  (사진 = toyota.co.jp)
이동식 화장실 프로젝트는 접근 가능한 화장실의 부족으로 목적지의 범위를 좁히거나 이동의 권리를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시작되었다.  (사진 = toyota.co.jp)

사람은 하루에 6~7회 화장실을 찾는다. 너무나 평범한 이 행위가 누군가에게는 외출을 포기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면, 그것은 단순한 불편의 문제를 넘어 인간의 기본적 욕구이자 존엄의 문제가 된다.

토요타는 '모두를 위한 이동성'을 제약 없이 이동할 수 있는 자유로 정의하고, 이동수단으로서의 차량의 개념에서 벗어나 기본적 필요를 위한 포괄적인 솔루션으로 제시한다.  이동식 화장실은 장애인만을 위한 장비가 아니다. 아기를 둔 부모, 노약자, 그리고 야외 행사 참가자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기술은 결국 사람을 향해야 한다. 그 진실은 화려한 자동차가 아닌 조용한 화장실 안에서 증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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