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정용민 | 조금 단언적인 이야기 같지만, 준비 없는 기업은 위기관리에 무조건 실패한다. 평상시 위기관리에 관심을 두지 않고, 적절한 위기관리 조직을 교육하고 훈련하지 않은 기업은 위기와 마주하면 항상 쓰러진다.
이는 아무 준비나 훈련을 하지 않은 일반인이 숙련된 복싱 챔피언과 싸우러 링에 올라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승패는 아주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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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커뮤니케이션’ 준비 안 된 기업을 위한 응급조치 가이드라인(上)에서 이어집니다.

여섯째, 상황이 변화해간다고 전선을 넓히지 말 것
일단 아무 준비도 되어 있지 않고 별 대응 자산이나 네트워크도 없으니, 커뮤니케이션 창구와 전선(Frontline)은 한두 개로 집중해야 한다. 이를 늘리면 꼭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늘린다고 해서 효과가 배가되지도 않는다. 아무 준비 없는 기업이 창구를 늘리면 그에 대한 효과는 오히려 반감된다. 선택해서 집중한다고 생각하자.
일반적으로 이러한 기업은 언론을 선택해 집중한다. 일부 스타트업이나 셀럽들은 소셜미디어나 온라인 채널을 활용하지만, 일반 기업은 언론이 우선이다. 신뢰와 제3자 인증이라는 여러 가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곱째, 초기 대응 과정과 동시에 실행을 준비할 것
앞에서 이야기한 조치들이 배턴 달리기 식으로 한 줄로 이어진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의사결정자들이 앞 단계를 바라보면서 하나씩 의사결정 해나가는 것이 아니다.
마치 8명이 단체로 배턴 달리기를 하듯 언론 문의를 접수하는 팀은 그 팀대로, 상황 분석에 참여하는 팀은 그 팀대로, 대변인과 대변인을 지원하는 팀은 그 팀대로, 동시에 상호 지원하면서 움직여나가는 것이다.
앞의 프로세스들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특정 팀은 어떤 실행을 해야 할 것인지 의사결정하고 준비해야 한다. 앞의 프로세스는 그 진짜 실행 준비를 지원하기 위해 시간을 벌어주는 활동이라 생각해야 한다.
여기에서 진짜 실행이란 위기 상황과 관련된 기자회견이 될 수 있다. 해명문이나 반박문, 사과문을 게시하거나 공유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법적으로 준비해 대응하는 것 역시 실행이다. 그 외에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일사불란한 실행을 준비하는 것 또한 포함된다.
대응 주체는 CEO가 될 수도 있고, 홍보실이나 (홍보실 부재 시) 관련 부서, 법무부서, 인사부서, 영업부서, 생산부서, 마케팅부서 등도 될 수 있다. 이 단계에서 핵심은 동시 실행이 이루어져 실행 개시까지의 시간 소모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덟째, 만약 어떤 실행이 효과적일지 의문이라면 전략적 침묵으로 갈 것
초기에 핵심 메시지를 정해 기자들과 커뮤니케이션했다면, 그것으로 초기 대응을 마무리하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다.
상황이 상당히 복잡하고 자주 변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자사가 제대로 스탠스를 취하기 어렵다면, 일단 정리될 때까지 전략적 침묵을 선택하면서 시간을 벌어보는 것이다. 이는 링 위에 올라간 선수가 상대측 역량을 떠본 뒤, 풋워크를 통해 계속 빠지면서 아웃복싱을 하는 상황에 비유할 수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 전략적 침묵 기간에도 기본적 대응 방안에 대한 정리와 실행 준비를 다양하게 완료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략적 침묵은 단순하게 입을 닫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된 대응을 위해 시간을 벌며 노리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창구 관리와 통제는 필수다.
아홉째, 가능한 한 정보 라인을 확보해 관리할 것
기억하자. 자사는 평소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다. 담당 기자들에 대한 개념도 없었을 것이다. CEO나 임원이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기자들이 전부일 수도 있다. 갑자기 친한 기자를 만들 수도 없고,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도 의문일 것이다.
그렇다 해도 가능한 한 상호 신뢰할 수 있는 기자를 몇 명 정도 확보해 접촉하는 것이 좋다. 전문가의 지원을 받아도 되고, 어떤 접근을 해서라도 유의미한 커뮤니케이션 라인을 확보하는 것은 도움이 된다.
이 경우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신뢰다. 해당 라인을 통해 전달하는 정보는 정확하고 절대 거짓이 없어야 한다. 만약 그런 정보 선별과 정리가 어렵다면, 이런 접근 방식도 포기하는 것이 낫다.
불완전하고 부정확한 정보 전달은 회사를 그로기 상태로 몰 수도 있다. 여기저기 신뢰할 수 없는 기자들을 찾아다니면서 불완전한 정보를 흘리고 뿌리면 아주 크게 실패한다.
열 번째, 한숨 돌렸다면 이때라도 조직을 제대로 갖출 것
대응 조직을 빨리 제대로 갖추는 것이 좋다는 의미다. 위기관리는 하루이틀 싸움이 아니다. 길게는 수개월에서 한 해 동안 지속되기도 한다.
초기에는 뭐든 빨리빨리 하다가도 시간이 며칠 지나면 구성원의 긴장감이 풀어진다.
그럴수록 빨리 위기관리에 필요한 전문가들(로펌, 위기관리 회사, 커뮤니케이션 회사, 각종 자문사)을 사내 의사결정 그룹과 한 팀으로 공식화해야 한다. 창구 대변인을 재훈련시키고, 내외부 커뮤니케이션 메시지를 함께 다듬어야 한다.
법적 대응과 커뮤니케이션 대응은 하나로 조정되어야 하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회사와 로펌 및 자문사들이 모여 정보와 의견, 실행 조율을 상의해나가야 한다. 경험상 이런 대응팀의 안정화는 위기 발생 후 최소 1~2주 정도 시간이 걸린다. 빨리 시작할수록 결과가 좋다.

앞의 열 가지 응급조치는 아무 준비도 없었던 기업에 적용되는 가이드라인이다. 대부분 당연하고 간단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도입부에서 언급한 대로 그조차 절대 쉽지 않다.
현실에서는 위기가 발생하면 상황 파악도 제대로 못 하며 시시각각 구성원의 감정만 오르락내리락 반복한다. 한자리에 모이는 것을 어려워한다. 특히 최고 의사결정자가 첫 미팅에 참석하지 않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가장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되는 주원인이다.
외부 전문가들을 콜드콜로 모아 한자리에 앉힌다는 것도 사실 상당히 어렵다. 그리고 처음 본 그들을 어떻게 믿고 이해할 것인가? 반대로 그 전문가들은 회사 사람들을 어떻게 보고 적응할 것인가?
언론 창구도 쉽게 보아서는 안 된다. 초기 창구가 여기저기 뚫려서 정리되지 않은 메시지들이 흘러나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 때문에 공분을 더욱 자극하는 케이스도 수없이 많다. 창구 단속이 쉽다면 왜 그 회사들이 고통 받았을까?
그 와중에 훈련받지 못한 채 투입된 대변인은 어떨까? 노련한 기자들의 압박성 질문을 끝까지 견뎌내면서 준비된 커뮤니케이션만 해낼 수 있을까? 그 외에 상당수 의사결정과 실행 준비는 팀별로 잘 배분되어 진행될까? 그에 대한 컨트롤타워 형식의 감독은 어떻게 하고?
앞의 열 가지 조치는 말 그대로 응급조치일 뿐이다. 초기 상처를 악화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관리하며 시간을 벌어 제대로 된 치료를 기대하기 위한 조치라는 의미다.
그조차 하나하나가 쉽지 않다. 그리고 이런 응급조치는 한 번이면 족하다. 매번 위기 때마다 응급조치로만 대응하는 기업이 되지는 말아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