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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의 뷰스] 우정은 무얼 먹고 자라나?

친구는 제 2의 자아

  • 기사입력 2024.07.23 14:17
  • 기자명 신아연 객원기자

더피알=신아연 객원기자 | 물과 불처럼 없어서는 안 될 삶의 필수품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공기? 아니면 건강? 돈?

셋 다, 또는 그 밖에 다른 어떤 대답도 틀린 것은 아닐 수 있지만 질문이 요구하는 답은 ‘우정’이다.

고대 철학자 키케로(B.C.106~B.C.43)가 그의 저서 ‘우정에 대하여’에서 의미심장하게 한 말이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에겐 뜬금없이 들릴 수도 있겠다. 솔직히 우리 시대에 우정이란 말처럼 빛바래고 심드렁해진 의미도 없지 싶기에.

“우정이란 미덕을 바탕으로, 서로 안정적 조화를 이루며 신뢰를 가질 때만 가능한 것”이라고 한 키케로의 우정에 대한 의미부여는 마치 박물관의 박제품처럼 고대에나 통용되던 추상적 금과옥조처럼 들리기에.

무엇보다 진정한 우정은 노력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더 외면된다.

살면서 노력하여 성취해야 할 것들은 너무나 많다. 실상 하루하루의 일상 자체를 영위하기 위한 크고 작은 일들 전부가 노력을 요하는 것들 아닌가.

오늘 아침 지각하지 않고 학교나 일터에 당도했다면 그 자체가 노력의 결과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우정을 가꾸기 위해 ‘노력씩이나’ 해야 한다면 그만한 여력도 없을뿐더러 과연 그럴 가치가 있을까 하고 계산기를 두드리게 되는 것이 오늘날엔 되레 자연스럽다.

우정, 친구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하는 수 없다는 생각이 대부분을 지배한다면 나를 즐겁게 하고 이로움을 주는 관계면 만나고 아니면 말고 식이 될 수밖에.

핏줄끼리는 노력이 필요 없다. 특별히 애정을 쏟지 않아도 그 관계가 지속된다는 의미에서. 그러나 우정은 다르다. 의지적인 애정을 쏟아야 유지가 가능하다. 그 애정을 키케로의 말로 바꿔 하자면 ‘선의’다. 즉, 선의 빠진 우정은 앙꼬 없는 찐빵이다.

선의란 사랑과 같은 의미다. 사랑의 깊이와 넓이는 좀체 가늠할 수 없다. 선의도 마찬가지다.

곰삭은 장처럼, 농익은 술처럼 선의가 중첩되고 공명되는 과정에서 우정의 진정한 의미가 점차점차 드러나고 그 빛이 발휘된다.

친구로 인해, 진정한 우정으로 인해 미덕이 닦고 닦여 내 안의 빛이 광채를 뿜기 시작하면 반대쪽에서 나의 빛을 알아본 똑같은 빛이 달려오기 마련이다.

두 빛이 만나 서로의 빛을 뿜어낼 때 우정도, 사랑도 그 형태를 이뤄가는 것이다. 무엇보다 진정한 친구란 나 자신이다. 친구는 제 2의 자아다. 친구 안에 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혼자서 존재하는 사람은 없으며, 존재로 완성되기 위해서 우정은 필수품이다. 그 우정은 선의를 먹고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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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우정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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