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 매거진

‘옷이 나를 말한다’ 급진적으로 세련된 럭셔리 행동주의

[브리핑G] 럭셔리 패션에 ‘표현의 자유’ 더해 급진적 세련미 추구한다

가격에 어울리지 않는 평등과 포용 메시지에 부정적 반응도
지루한 패션 타파하고, 지속가능한 맞춤형 기쁨 부여가 관건

  • 기사입력 2024.10.04 08:00
  • 기자명 박주범, 김병주 기자

더피알=박주범 기자 | 당신이 지금 옹호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그것이 쓰인 옷을 입어 깨어있는 나를 표현하고, 수준이 맞는 사람들과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정말 멋지지 않을까? 단, 그 옷은 럭셔리 제품이어야 한다.

‘럭셔리 행동주의(luxury activism)’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패션 아이템에 진보적 메시지를 주입하는 관행이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We should all be feminists)"고 쓰인 디올 티셔츠를 입고 있는 리한나(왼쪽)와 나탈리 포트먼(오른쪽). 사진=RiHANNA·Natalie Portman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 캡처.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We should all be feminists)"고 쓰인 디올 티셔츠를 입고 있는 리한나(왼쪽)와 나탈리 포트먼(오른쪽). 사진=RiHANNA·Natalie Portman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 캡처.

2016년 디올은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쓰인 티셔츠를 만들어 성평등과 임금 평등을 옹호했고, 리한나, 에이셉 라키 등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1000달러(약 135만원)를 지불했다.

2018년 버버리가 선보인 1200달러(약 160만원)짜리 무지개 체크 트렌치코트는 LGBTQ+ 권리 기구인 트레버 프로젝트(The Trevor Project)를 위한 것이었다.

2019년에는 구찌의 4300달러(약 570만원)짜리 블레이저가 “내 몸은 내 선택”이라는 슬로건을 달고 런웨이에 등장했고, 발렌시아가도 790달러(약 104만원)짜리 세계 식량 계획 티셔츠를 선보였다.

BBC는 이들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진보적 이슈에 대한 구호를 끊임없이 외치는 브랜드 ‘링구아 프랑카(Lingua Franca)’의 창립자 레이첼 흐루스카 맥퍼슨(Rachelle Hruska MacPherson)과의 인터뷰를 통해 럭셔리 행동주의를 살펴보았다.  9월 25일 보도.

링구아 프랑카 창립자 레이첼 흐루스카 맥퍼슨. 사진=Rachelle Hruska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캡처.
링구아 프랑카 창립자 레이첼 흐루스카 맥퍼슨. 사진=Rachelle Hruska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캡처.

링구아 프랑카의 부드러운 캐시미어 스웨터 가슴 부분에는 섬세하고 다정한 느낌의 글씨체로 “나는 금지된 책을 읽는다”, “여성들을 교육해 세상을 바꿔라”와 같은 문구가 수놓아져 있다.

맥퍼슨은 2017년 산후우울증 극복을 위해 스웨터에 자수를 놓기 시작했다. “못자고 못 먹었지만 바느질은 할 수 있었죠”라는 설명이다.

‘야호(Booyah)’라고 수놓은 스웨터는 작지만 세련된 해변 마을인 뉴욕 몬탁에서 열성적인 팬덤을 형성했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같은 유명인이 옷을 싹쓸이했다.

2018년 오바마를 의미한 “나는 버락이 그립다(I Miss Barack)”라는 문구의 스웨터가 인스타그램에서 바이럴이 된 후, 맥퍼슨은 사업의 상당 부분을 정치적 성향이 강한 캐시미어로 전환했다. 대담한 메시지를 담은 캐시미어는 개당 보통 400달러(약 53만 원)에 달한다.

슬로건 중에는 “우리는 게이라고 말한다(We say gay)”, “파우치 박사 팬 클럽(Dr. Fauci fan club)”, 미 연방대법원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Ruth Bader Ginsburg)가 2015년 여성의 사법 제도 운영에 대해 증언한 일 관련해 “9명이 있으면(When there are nine)” 등도 있다.

스웨터는 판매 가격의 10%인 38달러(약 5만 원)를 성평등 NGO인 ‘쉬 슈드 런’(She Should Run)과 바다의 플라스틱 양을 줄이기 위해 싸우는 서프라이더재단(Surfrider Foundation) 등에 기부한다. 두 비영리 단체 모두 이 브랜드의 공식 파트너다.

링구아 프랑카가 진행하는 프로젝트 중 하나인 'Extraordinary Women' 참여자들. 사진=Lingua Franca 홈페이지 캡처.
링구아 프랑카가 진행하는 프로젝트 중 하나인 'Extraordinary Women' 참여자들. 사진=Lingua Franca 홈페이지 캡처.

“패션좌파냐” 지적에 “풀뿌리 행동주의”라 응수…“지속가능성 핵심은 ‘기쁨’”

사실 신분을 과시할 정도의 지출에다가 패션이라는 이름으로 평등과 포용의 메시지를 결합하는 것은 사람들을 화나게 한다. 값비싼 디올의 페미니스트 티셔츠와 젊고 마른 모델들이 넘쳐나는 런웨이를 보고 저널리스트들은 "슬로건을 휘두르는 것 말고 무엇을 책임지는가?"라고 묻는다.

배우 코니 브리튼(Connie Britton)이 2018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 “빈곤은 성차별적이다”라고 쓴 380달러(약 50만원)짜리 링구아 프랑카의 캐시미어 탑을 입고 등장했을 때, 전문가들은 할 말을 잃었다.

저널리스트 킴 켈리(Kim Kelly)는 “그 돈이면 식료품 배급 구호 단체인 시티 하베스트(City Harvest)가 배고픈 사람들에게 1524톤의 식량을 제공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칼럼니스트인 조나 골드버그(Jonah Goldberg)는 링구아 프랑카의 보송보송한 페미니즘을 “어리석다”고 비난했다.

'빈곤은 성차별적이다(Poverty is Sexist)'라고 쓰인 링구아 프랑카 옷을 입은 배우 코니 브리튼. 사진=Connie Britton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 캡처.
'빈곤은 성차별적이다(Poverty is Sexist)'라고 쓰인 링구아 프랑카 옷을 입은 배우 코니 브리튼. 사진=Connie Britton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 캡처.

이에 대해 브리튼은 X(구 트위터)에서 골든글로브에 참석한 거의 모든 여성이 380달러가 훨씬 넘는 옷을 입었는데, 적어도 자신의 스웨터는 의미 있고 즉각적인 방식으로 대화에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재활용 티셔츠에 같은 방식으로 메시지를 수놓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뜻이다.

맥퍼슨은 여성들이 진보적 슬로건을 더한 옷을 입음으로써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 화제를 만들고, 변화에 도움이 될 만한 정치적, 경제적 자본을 가진 부유한 커뮤니티 내부에서의 문제를 중심으로 일종의 풀뿌리 행동주의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한다.

리즈 위더스푼, 오프라 윈프리, 메릴 스트립, 제니퍼 로페즈 같은 유명인은 모두 링구아 프랑카의 정신을 받아들였다. 맥퍼슨은 포용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1년 저렴한 가격대의 자수된 스웨트 셔츠를 출시했다.

2020년 패션 매거진 더 컷(The Cut) 기사에서 작가 마리사 멜처(Marissa Meltzer)는 맥퍼슨을 ‘저항적인 사교계 명사’라고 명명했지만 사업에 대해서는 ‘급진적 세련미’의 이행이라고 설명했다. 럭셔리 스타일을 추구할 때 모든 것을 다하거나 아예 안하는 양자택일적 접근 방식은 비합리적이고, 패션의 관점에서 지루하다는 것이다.

맥퍼슨은 활발한 맞춤형 사업을 통해 수익원을 다각화하고 있다.

그는 “사람들은 사적인 농담, 좋아하는 노래 가사, 자녀의 이름을 원한다”면서 “맞춤 제작하면 그것이 개인에게 의미가 있어 버려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기쁨을 주는 것은 계속 갖고 있는데, 그동안 패션이 지속가능성의 핵심 요소인 기쁨을 무시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이키델릭한 블룸즈버리 그룹의 패션을 떠올리게 하는 링구아 프랑카 2025 봄 시즌 컬렉션. 사진=링구아 프랑카 제공.
사이키델릭한 블룸즈버리 그룹의 패션을 떠올리게 하는 링구아 프랑카 2025 봄 시즌 컬렉션. 사진=링구아 프랑카 제공.

또한 트위드 블레이저, 메탈릭 니트 캐미솔, 블룸스버리 그룹(Bloomsbury group)의 사이키델릭한 버전을 표현하는 애시드 그린 줄무늬 드레스로 구성된 신상 기성복 라인도 비슷한 기쁨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녀는 링구아 프랑카의 모든 기부금을 직접 냈고, 인스타그램에 전 과정을 올렸다.

그는 “친구들이 그걸 보고 민망하다면서 제가 부르주아처럼 보인다고 한다. 그냥 기부하고 뜨개질하던 때로 돌아가라는 말이다”라고 설명하면서도, “스웨터도 할 말 하는데,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지 않느냐”며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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