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피알=김경탁 기자 | 한 달 전쯤, 일론 머스크가 칸 라이언즈 무대에서 광고주들의 유해콘텐츠 불매를 ‘검열 시도’라고 주장해 엑스닷컴(이전 트위터)의 곤궁한 처지를 더 수렁으로 빠뜨렸다는 소식을 전한 바 있는데, 유사한 이슈가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도 발생했다.
올림픽 개막식의 일부 연출이 기독교 신앙을 모욕하는 것으로 해석되면서 일부 광고주의 광고철회까지 이어지자, 파리 올림픽 조직위원회와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공식 사과와 함께 개막식 동영상을 삭제하는 조치를 취했다.
개막식에서 드래그 퀸과 트랜스젠더 모델, 반나체로 등장한 가수들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연상시키는 장면을 연출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최후의 만찬’은 예수가 체포되기 전날 밤 열두 제자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가진 장면을 묘사한 작품으로,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신성한 의미를 갖고 있다.

가톨릭교회와 기독교 단체들은 이번 공연이 기독교를 조롱하고 성경을 모욕하는 행위라 받아들이며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술과 욕망의 신 ‘디오니소스’로 분한 프랑스 가수 필리프 카트린느의 퍼포먼스가 논란을 키웠고, 관련자들의 반박 입장이 반발을 더욱 가중시켰다.
이 사건 이후 미국의 한 통신·기술회사는 “조롱에 충격을 받았다”면서 올림픽 광고 철회를 선언했다. 이에 대해 이 회사가 있는 미시시피 지역의 테이트 리브스 주지사는 “미시시피의 민간 부문이 발을 내디딘 것을 보니 자랑스럽다”며 지지의 뜻을 전했다.
프랑스 극우 정치인 마리옹 마레샬은 엑스 게시물에서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한 이 드랙퀸으로 전 세계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모욕감을 준 것은 프랑스의 입장이 아니라 어떤 도발에도 준비된 좌파 소수”라고 지적해 많은 공감을 얻었다.
개막식 예술 감독을 맡은 토마스 졸리는 “우리의 아이디어는 포용(inclusion)이었다”고 해명했다.
“우리는 결코 전복적이고 싶지 않았고,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주장한 그는 “다양성은 함께하는 것을 의미한다. 프랑스에서는 창조의 자유와 예술의 자유가 있다. 자유로운 나라에서 프랑스에서 사는 것은 행운”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파리 2024 올림픽 조직위원회 토니 에스탕게트 회장은 “우리는 우리의 가치와 원칙을 보여주는 의식을 상상해서 매우 헌신적인 메시지를 보냈고, 이는 반성을 촉발하는 것이었다”며 “가능한 한 강한 메시지를 갖고 싶었다”고 말했다. 프랑스가 추구하는 표현의 자유를 강조한 것이다.
앞서 파리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엑스닷컴 게시물 등을 통해 해당 퍼포먼스가 “그리스 신화 속 술의 신 디오니소스를 통해 인간 사이에 발생하는 폭력의 부조리를 해석한 것”이라는 설명을 내놓기도 했다.

해명과 사과에도 불구하고 비판이 계속 이어지자 파리 올림픽 조직위원회 앤 데스캉스 대변인은 28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통해 “특정 종교 단체를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며 “올림픽 개막식 연출에 불쾌함을 느끼셨다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결국 IOC는 공식 유튜브 채널에 게시했던 파리 올림픽 개막식 하이라이트 영상의 댓글 사용을 중지시키고, 영상을 삭제했다.
개막식에는 이 외에도 프랑스의 마지막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머리 잘린 모습으로 무대에 등장한 것도 논란을 빚는가 하면, 한국 선수단을 영어와 프랑스어로 북한이라고 소개하고, 올림픽 오륜기를 뒤집어 게양하는 등 세밀하지 못한 진행이 많은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부주의한 표현 자유의 위험성
이번 사건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과 다양성 추구가 오히려 특정 그룹에게 폭력적이고 모욕적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프랑스의 예술적 자유와 포용성을 지지하는 입장과 이를 모욕적이고 신성 모독적인 행위로 받아들이는 입장 간의 갈등은 현대 사회의 중요한 이슈이기도 하다.
문제는 다양성과 포용성이 가진 복잡성이라는 측면에서 어떤 선의는 오히려 다양성과 포용성을 해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 사려 깊지 않은 표현의 자유 활용이 오히려 포용성을 옥죄는 반발 작용인 백래시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다.
원래 권력자나 지배적인 사회적 그룹을 풍자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패러디가 사회적 약자를 소재로 사용할 때 그 사회적 폐해는 너무나 심각해질 수 있다.
드래그 퀸 퍼포먼스는 기독교 신앙의 신성한 순간을 패러디함으로써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자신들의 신앙이 모욕당했다는 느낌을 안겨줬다.
이번 사건은 지금 이 시점, 글로벌 스탠다드에서 기독교 신앙이 권력을 갖고 있거나 지배적 힘을 가진 사회적 그룹이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점을 간과한 탓에 벌어진 일로 보인다.
표현의 자유는 무소불위가 아니다. 표현의 자유가 다양성과 포용성 증진이라는 의도에 부응하려면, 어떤 표현의 자유가 오히려 특정 그룹에게는 폭력적이고 모욕적으로 다가갈 수 있음을 고민하고 사려 깊은 표현을 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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