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 매거진

파월 의장과 ‘시끄러운 한은’

[시선안에 있슈⑥] 불확실성의 시대, 중앙은행의 역할은

  • 기사입력 2025.02.03 10:21
  • 기자명 오승호 기자

더피알=오승호 편집인|미국과 우리나라 중앙은행 수장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1월 29일(현지 시간) 기준금리를 연 4.25~4.5%에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첫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금리를 동결함으로써 지난해 3회 연속 이뤄졌던 금리 인하 행진은 일단 멈췄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세계 최대의 미국 경제가 여전히 견고하다”면서 “정책 입장을 조정하는 데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평가했다. 연준이 금리 인하를 서두르지 않겠다는 방침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지난해 경제 성장률은 2.8%로 집계됐고, 올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2.7%로 예상되고 있다.

파월의 통화 정책 속도 조절에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이 은행 규제와 관련해 형편없었다”고 비난하는 등 화가 잔뜩 났다. 금리를 계속 낮춰야 한다는 압박에 연준이 맞장구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파월 의장의 소신에 박수를 보낸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이 지난해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기자회견하고 있다. AP/뉴시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이 지난해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기자회견하고 있다. AP/뉴시스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 성장과 기업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저금리 정책을 선호한다. 그는 연준이 지난 2018년과 2019년 초 금리를 인상했을 당시 공개적으로 파월 의장을 비난하면서 금리 인하를 강하게 요구한 적도 있다. 파월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 집권 1기 때인 2017년 11월 임명됐다.

파월 의장의 임기는 내년 5월까지이다. 그는 임기가 끝나기 이전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연준의 충돌은 연준의 독립성 문제와도 관련돼 있기에 트럼프가 파월 의장의 해임을 시도할지 여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와 최상목 대통령 권한 대행 간 좋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어 보기가 좋다.

이 총재는 지난해 9월 정부 세종청사에 있는 기획재정부를 방문해 두 기관의 정책 공조 방안 등을 논의하기도 했다. 한은 총재가 기재부를 찾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한은과 기재부는 과거 통화정책과 관련해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곤 했다. 1990년대 후반 한은을 출입할 당시 어쩌다가 경제부총리 입에서 금리 얘기가 나오기라도 하면 한은에서는 통화정책은 한은 고유 업무라면서 발끈해 하는 장면을 여러 차례 목도한 적이 있다. 한은법 개정 문제를 둘러싸고 두 기관 간 마찰은 극에 달했었다.

지금은 옛말이 됐지만 한은 임직원들은 한은을 재무부의 남대문 출장소쯤으로 여긴다고 못마땅해 했다. 기싸움에서 지지 않으려고 기재부 관리들과 저녁 약속이라도 있을 땐 덜 취하려고 미리 약을 먹었던 일화를 들은 적도 있다. 맨 파워 면에서 한은이 기재부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한은과 재정당국인 기재부는 거시경제정책을 펴는 양축이다. 한은은 정부와 독립적이지만 긴밀한 협력 파트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1월 2일 최상목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에 반발했던 국무위원을 향해 “고민 좀 하고 말하라”고 작심발언을 했다. 같은 달 16일에는 “성장률이 예상보다 0.2%포인트 정도 떨어졌다면 그 정도를 보완하는 규모로 추경을 하는 게 좋지 않으냐, 한 15조에서 20조원 정도”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은 총재의 파격 행보와 관련해 평가가 엇갈릴 수 있지만 왜 소신 발언을 하는 지 곱씹어 봤으면 한다. 그의 발언들을 종합해 보면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으로 인한 정치적 불확실성이 지속될 경우 우리나라의 대외 신인도가 하락하지는 않을 지 적잖이 염려하고 있다. 미국 신정부의 보호무역 정책까지 더해지면서 통화 정책만으로 우리 경제를 안정시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도 향후 있을 글로벌 신용평가사의 연례협의를 앞두고 2월 중 국제금융협력대사 주관 한국투자설명회(IR)를 열어 우리 경제의 양호한 펀더멘털을 국제 사회에 적극 설명할 예정이라고 한다. 대외신인도를 의식한 행사다.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이 강등되는 일이 없도록 정부와 정치권이 혼연일체가 되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월 30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F4 회의)에서 참석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최 권한대행, 김병환 금융위원회 위원장. 사진=기획재정부 제공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월 30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F4 회의)에서 참석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최 권한대행, 김병환 금융위원회 위원장. 사진=기획재정부 제공

이창용 총재의 올해 신년사에서 눈길이 가는 표현이 있다.

그는 요즘 직원들이 자유롭게 토론하고 연구 결과를 외부에 발표하는 등 ‘시끄러운 한은’으로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알기 쉬운 경제지표해설’, ‘BOK 마켓브리핑’ 등 시각화 콘텐츠를 통해 대국민 소통에 힘쓴 결과 유튜브 구독자 수가 9만명 가까이 증가하는 등 많은 관심을 받고 있어 자랑스럽다는 것이다.

1997년 외환 위기가 발생했을 때 한은의 역할과 관련해 많은 연구 자료들을 갖고 있으면서도 적극적으로 대외에 알리지 않아 위기 대응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지적한 이들도 있었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한다.

정부가 제시한 올해 경제 성장률은 1.8%로, 잠재성장률 2%를 밑돌기는 하지만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 26개 국의 평균치와 같다는 점에서 위안해 본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전인 지난해 9월 연준이 금리를 인하했을 때 “정치적 이유로 큰 폭의 금리를 인하한 것”이라고 비판했지만 최근엔 금리를 낮추지 않았다고 맹비난했다. 다분히 중앙은행에 대한 정치적 공격이다.

이창용 총재의 표현대로 시끄러운 한은을 유지했으면 한다. 그럴 때 통화정책을 포함한 경제시스템이 정치적 프로세스와 독립적·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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