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오승호 편집인 |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5의 최대 화두는 인공지능(AI)이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지난 7~10일 열린 이 행사에는 160여개국에서 1400개 스타트업을 포함해 4500여개 업체가 참여했다. 14만 1000여명이 방문하고, 6000곳 이상의 전 세계 미디어 가 참여해 CES에서 발표되는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를 시시각각 전달하는 등 국제 행사의 위상을 보여줬다.
이번 CES의 관전 포인트는 인공지능 로봇이었다. 8년 만에 CES 기조연설에 나선 엔비디아 최고 경영자 젠슨 황은 개막에 앞서 진행한 기조연설에서 “로봇의 챗GPT 모멘트가 오고 있다”면서 AI의 궁극적 미래를 ‘피지컬(Physical)AI’로 정의했다. 이는 휴머노이드 로봇·자율주행차와 같은 물리적 기기에 탑재되는 인공지능을 말하는 것으로, 추후 AI 두뇌를 가진 로봇 개발 각축전을 예고했다.

CES 2025 전시회에서 뽐낸 수많은 혁신 기술들이 제품화·상용화되면 일자리는 어떻게 변할까. 그동안 AI와 일자리 변화에 대한 연구가 산발적으로 소개되기는 했지만 기술 혁신 속도가 워낙 빠른 상황이라 대형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궁금증을 자아낸다.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새로운 직업도 필요하다. 새로운 기술로 기존 일자리를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18세기 제1차 산업혁명 때는 증기기관 기반의 기계화 혁명이 일어났는데, 증기기관을 제작할 엔지니어가 필요했다. 전기 에너지 기반의 대량생산이 이뤄진 2차 산업혁명기(19~20세기 초)에는 전기기사가, 컴퓨터와 인터넷 기반의 3차 산업 혁명기인 20세기 후반에는 마이크로칩을 관리할 컴퓨터 운영자가 각각 필요했다.
제2차 정보혁명이라할 21세기 초반부터 시작된 4차 산업혁명에서는 빅데이터와 AI, IoT 등 정보기술 기반의 초연결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시기에는 AI를 작동할 수 있는 인력 수요가 생겨나기 마련이라고 진단한다.
지난 12월 앱·리테일 분석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 굿즈 조사에 따르면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들 가운데 682만명은 생성형 AI앱 챗GPT를 이용하고 있다. 챗GPT가 생활 속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렇듯 AI기술이 상상 이상으로 발전하면서 AI와 일자리의 함수 관계는 어떤지, 다시 조명을 받을 법 하다. 기존 취업자들에겐 일자리가 얼마나 줄어들지, 취업 전선에서 뛰고 있는 청년층에게는 어떤 일자리가 얼마나 생겨날 지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전 세계 수백 개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고용주의 41%는 인력 감축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AI를 통해 특정 업무가 자동화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WEF는 이달 말 열리는 연례회의를 앞두고 미리 내놓은 ‘미래 일자리 보고서’ 보도자료에서 “그래픽 디자이너와 비서가 가장 빠르게 감소하는 상위 10개 직종 바로 밖에 있다는 것은 이전 버전의 일자리 보고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예측”이라고 했다. 생성형 AI의 지식 업무 수행 능력이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WEF는 보고서를 통해 우편 서비스 직원, 비서, 급여 담당 직원 등은 AI 확산이나 다른 추세로 인해 앞으로 몇 년 동안 인력 감소가 가장 빠르게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직업군에 속한다고 했다.
앞서 지난해 1월 국제통화기금(IMF)은 다보스포럼을 앞두고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 AI로 인해 전 세계 일자리 40%가 영향을 받는 것은 물론 국가별 불평등이 심화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같은 달 14일(현지시간)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선진국의 일자리 중 60%가 AI의 영향을 받고, 그 가운데 절반은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되지만 나머지는 임금에 영향을 미치거나 심지어는 일자리가 없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적인 투자 은행 골드만삭스는 특히 유럽연합(EU)과 미국에선 자동화로 인해 일자리 3억 개가 사라질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AI로 대체 가능성이 가장 큰 일자리로 그래픽디자인이나 시각예술 관련 직업 등을 꼽는 곳도 있다. AI는 기본적인 알고리즘으로 이미 수백만장을 간단히 분석할 수 있고, 미학 관련 지식을 누구보다도 빨리 통달할 수 있기 때문에 고위험군에 속한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암울한 소식만 있는 건 아니다. AI가 일자리를 대체하더라도 AI가 할 수 없는 일들은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감정을 잘 다루는 능력을 말하는 정서 지능이나 틀을 벗어난 사고와 같이 인간의 능력이 필요한 업무는 AI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을 낮출 수도 있다. 간호사, 비즈니스 컨설턴트, 사건을 취재하는 언론인 등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한 직업이 안전한 부문으로 꼽힌다.
항상 예측할 수 없는 환경에서 새로운 상황에 대처해야 하는 전기 기술자, 배관공, 용접공과 같은 직업도 안전한 부문의 예로 들곤 한다.
비즈니스 세계는 새로운 AI 기술을 어떻게 수용하고 있을까.
미국 스탠포드대학 인간중심 AI연구소(HAI)의 2024 AI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AI를 도입하는 기업이 실질적인 수익 증가와 실질적인 비용 감소를 경험한다는 데이터가 있다.
AI가 비즈니스에 실제로 좋은 일을 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매우 설득력 있는 데이터가 많이 있다고 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AI가 향후 3년 동안 조직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는 지에 대한 데이터를 보면 일자리 수가 늘어나는 것 보다는 감소를 예상하는 관리자가 훨씬 많다.
보고서는 또 소득이 높은 사람들은 소득이 낮은 사람들보다 AI에 대해 훨씬 더 낙관적이고,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들도 훨씬 더 흥분한다는 시장조사업체 입소스(Ipsos)의 흥미로운 설문조사 결과도 소개했다.
보고서는 많은 사람들이 AI와 관련해 두려움을 갖거나 긴장하는 이유는 AI가 잠재적으로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라면서 저숙련 근로자에 대한 절대적인 개선을 통해 고숙련자와 저숙련자 사이의 기술 격차를 메울 수 있다고 진단했다.
AI 기술 발전으로 인간 관계는 어떻게 변할까. AI가 진정으로 인간과 관계를 구축하기 까지 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AI는 감정 인식 기술 등으로 인간의 공감 능력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한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노인이나 장애인, 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들의 사회 참여를 적극 도울 수 있는 AI 기술 개발이 많이 이뤄졌으면 한다.
기술 개발과 기획 단계에서부터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 문제를 예방하는데 관심을 가지면 ‘착한 AI’도 많이 탄생할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 등 인간 중심의 AI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질 때 우리의 삶의 질은 더 높아지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