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 매거진

“중국에 반도체 기초역량 전부 추월당해…인재 유출 막아라”

KISTEP “韓, 메모리 포함 5개 핵심기술 中에 밀려”
핵심 인력 유출, 미·중 견제, 공급망 현지화 악재
산업계 “주52시간제 완화 늦어지면 보조금 지원이라도”

  • 기사입력 2025.02.24 11:39
  • 최종수정 2025.02.24 15:54
  • 기자명 김병주 기자

더피알=김병주 기자 | 한국 반도체 분야 기술 기초역량이 중국에 모두 추월당했다는 국내 전문가들의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지난해 중국이 첨단 패키징을 제외한 모든 기술 분야 기초역량에서 우리나라를 앞서고 있다는 진단에 최대 수출 품목이자 주력산업이 벼랑 끝에 몰렸다.

업계에서는 “한국 경제의 성장엔진을 살릴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핵심 기술인재 유출 방지와 더불어 국회에서 논의 중인 반도체 특별법에 주52시간제 예외 조항이 반드시 추가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지난해 11월 2일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열린  '2024 중국자동화대회' 전시구역을 방문한 관람객이 중국산 반도체 칩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신화통신
지난해 11월 2일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열린 '2024 중국자동화대회' 전시구역을 방문한 관람객이 중국산 반도체 칩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신화통신/뉴시스

지난 23일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의 ‘3대 게임체인저 분야 기술 수준 심층 분석’ 브리프에서 국내 전문가 39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한국이 전통적으로 강점이 있는 메모리 기술에서도 중국이 기초 역량 부문은 추월했다고 평가됐다.

기초역량은 원천연구 규모, 인력, 관련 논문·특허 등으로 평가한다.

이번 평가에서는 지난 2022년 기술 수준 평가에 참여했던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6개국(한국, 미국, 중국, 일본, 유럽연합, 대만)의 5개 핵심 기술 수준을 파악했다. 당시 한국은 △메모리 △패키징 △차세대 고성능 센싱기술에서 중국을 앞선 것으로 평가됐다.

한국은 고집적·저항기반 메모리, 고성능·저전력 인공지능(AI) 반도체 분야에서 각각 미국, 중국에 이은 3위를 차지했다. 차세대 고성능 센싱 기술은 대만을 뒤에 둔 5위를 기록했고, 전력 반도체 기술은 꼴찌였다. 첨단 반도체 패키징 분야는 중국과 공동 4위를 기록하며 사실상 모든 기초역량이 2년 만에 역전됐다.

반도체 분야 전체를 대상으로 한 기술 생애주기에 따른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중국은 공정과 양산에선 우리나라보다 낮은 순위를 보였지만, 기초·원천, 설계에선 우위에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나라의 기초·원천, 설계 부문 기술 수준은 비교국 가운데 최하위로 평가됐다.

기초역량, 사업화 등 관점에 따른 2024 기술수준평가 결과. 사진=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제공
기초역량, 사업화 등 관점에 따른 2024 기술수준평가 결과. 사진=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제공

전문가들은 향후 한국의 반도체 기술 수준에 영향을 미칠 이슈로 핵심 인력 유출, AI 반도체 기술, 미·중 견제, 자국 중심 정책, 공급망 현지화 등을 꼽았으며, 이 가운데 AI 반도체 기술만 한국의 기술 수준에 유리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진단했다.

국내 반도체 관련 기술 수준 향상을 위해서는 인재 양성과 기존 핵심 인재 유출 방지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덧붙였다. 기업의 R&D 열정을 유지, 자극하고 정부의 제도적 경제적 지원 등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10년 공들인 중국…R&D 주52시간 근로제 완화 촉구 이어져

보고서에선 "중국이 반도체의 높은 대외 의존도에 경각심을 갖고 2014년부터 반도체를 국가 전략 산업으로 지정하고 국산화를 위한 정책 추진과 대규모 투자에 나선 결과"라고 보았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10년(2014∼2024년)간 정부 주도 투자로 기금 3429억위안(64조6000억원), 사회자본 9883억위안(186조8000억원)을 투입했다.

지난해엔 향후 10년간 반도체 산업에 직·간접적으로 1조5000억위안(284조원)을 투자하는 ‘제3기 반도체 투자기금’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중국의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푸젠진화(JHICC),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등은 저가 물량 공세를 퍼부으며 한국 업체와의 점유율을 줄이고 있다.

여기에 미국도 다음 달 수입 반도체에 25% 이상의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고, 미국 내 설비 투자 보조금의 재협상을 시사하며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보고서는 트럼프 행정부와 EU의 에너지 정책, R&D 투자 등을 고려했을 때 우리나라 반도체 시장의 미래가 어둡다고 전망했다.

대만 신추에 있는 대만 반도체 제조 회사 TSMC 본사. 사진=AP/뉴시스
대만 신추에 있는 대만 반도체 제조 회사 TSMC 본사. 사진=AP/뉴시스

재계에서는 “예고된 재앙”이라는 반응이다. 류진 풍산그룹 회장은 지난주 한국경제인협회장 취임사에서 “올해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10년 전 그대로인 반면 엔비디아는 280배 늘었고 TSMC는 1조 달러를 넘어 세계 10위에 올랐다”며 “한국의 AI 투자규모는 중국의 5분의 1에 불과하고 반도체 생산라인의 증설 허가를 받는 데만 2∼3년 걸린다”고 지적했다.

산업계는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 앞에 반도체산업 R&D인력만큼은 주52시간 근무제를 완화시켜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여야 대립으로 반도체특별법이 2월 임시국회 내 처리 가능성이 요원해지면서,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김용석 가천대 반도체대학 석좌교수는 "반도체 연구원들의 총 노동시간을 늘리자는 게 아니라 이들이 더 집중해서 일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주자는 이야기"라며 "52시간 완화 논의가 늦어질 것이라면, 보조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특별법부터 통과시킬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대만의 TSMC는 10년 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공정 기술 R&D을 하루 24시간 3교대로 가동하는 ‘나이트호크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세계 1위로 올라섰다. 업계에 따르면 중국의 테크 업계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일하는 '996' 문화를 넘어 '007(24시간, 주 7일)' 근무까지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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